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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정부 식량위기 핵심 대책이 ‘해외 곡물 반입명령’?

등록 2020-09-26 10:37수정 2020-09-26 10:39

[토요판] 그린뉴딜보다 생존뉴딜
② 식량위기 보지 않는 그린뉴딜

감염병·기후위기 겹치며 농가 비명
“농사를 시작한 뒤로 올해가 최악”
물가 오르고 도시 소비자까지 영향
곡물 수출국들 수출 제한조처 발동

정부의 식량확보 서류상 가상훈련
국회 입법조사처도 실효성에 의문
주요 곡물인 밀 자급률은 고작 1%
식량자급 대책 그린뉴딜 포함돼야
국립식량과학원이 우수 종자를 연구·개발하기 위해 파종한 우리밀이 시험포장에서 자라고 있다. 국립식량과학원 제공
국립식량과학원이 우수 종자를 연구·개발하기 위해 파종한 우리밀이 시험포장에서 자라고 있다. 국립식량과학원 제공

▶ 2020년 여름 한국에 닥친 유례없는 장마는 기후위기의 심각성을 깨닫게 했다. 호평받는 ‘케이(K)-방역’과 달리 ‘케이-안전’과 ‘케이-생존’은 앞날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전 지구적 감염병과 기후위기 시대를 맞아서 정부도 ‘그린뉴딜’을 추진하고 있지만, 사태의 심각성에 대한 인식 부족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혁명적인 전환이 있어야 최소한의 미래가 보장될 수 있다’는 취지의 글을 녹색전환연구소가 5회에 걸쳐 연재(격주)한다.

회사를 다니다 14년 전 충북 단양으로 귀농해서 유기농 농사를 짓는 유문철(47)씨는 “농사짓기 시작한 뒤 올해가 가장 힘든 해”라고 말한다. 그는 자신의 농사 상황을 “초토화”라고 표현했다.

유문철씨는 논, 밭, 과일 농사를 골고루 짓는다. 그런데 올해 사과 농사는 봄에 냉해를 입은 뒤 여름철 긴 장마와 태풍을 거치며 거듭 심각한 피해를 입었다. 밭 500평에 심은 고추도 집에서 먹을 양밖에 건지지 못했다. 감자는 수확해서 친환경학교급식에 공급할 계획이었지만 코로나 때문에 학교급식이 중단되면서 아예 무산됐다. 다행히 벼는 피해가 덜한 편이라고 했다.

‘멘탈’이 무너지는 것을 느낀 그는 마음을 다스리는 데만 한달이 걸렸다고 한다. 작년에 땅을 담보로 농협에서 대출을 받았는데, 그로 인한 마음의 부담도 크다. 농민회 활동을 하는 유문철씨는 “그나마 충북도의회에서 농민수당 조례가 통과돼 다행”이라고 말한다.

유문철씨의 이야기는 단지 한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지금 전국 곳곳의 농민들이 겪고 있는 일이다. 그리고 그들의 현실은 도시 소비자들의 장바구니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지난 22일 한국은행이 발표한 8월 생산자물가지수에 따르면, 농림수산품 물가가 작년 같은 달 대비 15.6% 올랐다. 사과는 149.7%, 배추는 132.4%, 무는 106.6% 급등했다.

기후위기가 낳을 식량위기

지금의 상황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농민들은 기후위기가 더 심각해지면 농사짓기가 더 어려워질 것을 걱정한다. 현재 대한민국의 식량자급률은 46.7%에 불과하다. 이 수치는 사람이 먹는 식량만 계산한 것이다. 가축들이 먹는 사료까지 포함한 곡물자급률은 21.7%에 지나지 않는다.(2018년 기준)

더 큰 문제는 자급률이 계속 떨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1999년에 54.2%였으니 9년 사이 식량자급률이 7.5%포인트 하락했다. 그렇지 않아도 식량자급률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최하위권 수준인데, 점점 더 심각해지고 있는 것이다. 식량자급이 되고도 남는 미국, 프랑스 등의 국가들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상황이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에 따르면, 2029년에는 42.6%까지 더 떨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농산물시장 개방, 농지면적 감소, 농민의 고령화 등이 모두 식량자급률을 악화시키는 쪽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이래도 괜찮을까, 라는 질문이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게다가 코로나19 사태를 맞아 식량 수출국들이 보인 행태가 이런 우려를 더욱 키우고 있다. 전세계적으로 코로나19가 심각해지던 지난 3~4월 식량 수출국들은 자국의 곡물 수출을 제한하는 조치를 취했다. 베트남은 쌀 수출을 금지했고, 러시아, 카자흐스탄 등도 같은 움직임을 보였다. 다행히 국제 곡물시장에 큰 충격은 없었고 수출제한 조치는 해제됐지만, 이번 사태가 시사하는 것은 크다. 자기 나라의 식량 사정에 문제가 생길 가능성이 발생하면 식량 수출국은 언제든지 수출 규제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일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07~2008년 이상기후 등으로 농산물 생산에 차질이 생겼을 때도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등 주요 식량 수출국이 수출을 규제한 적이 있었다. 여기에 국제 투기자본까지 개입하면서 국제 곡물가격이 급등했다. 그 결과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여러 나라에서 식량 폭동이 일어났다. 우리나라도 수입 밀, 콩, 옥수수 가격이 대폭 올랐고, 그에 따라 국수나 라면 등의 면류와 새우깡 같은 과자류 등의 가격까지 동반 상승했다.

앞으로는 더 심각한 상황이 올 수 있다. 감염병과 기후위기 등이 악화되면 곡물 수출을 제한하는 일도 더 자주 일어날 수 있다. 그렇다면 식량자급률이 낮은 대한민국은 과연 어떤 대책을 갖고 있을까?

지난 5월18일 농림축산식품부는 ‘비상시 해외곡물 확보 가상훈련’을 실시한다는 보도자료를 냈다. 코로나19로 일부 국가가 주요 곡물 수출을 제한하는 상황에 대비한 훈련을 한 것이다. 그러나 훈련은 서류상으로만 실시됐다. 훈련 내용도, 비상상황이 발생했을 때 농림축산식품부와 관련 기관, 협회, 기업 등이 ‘반입협의체’를 구성해 해외에 농장을 확보하고 있는 국내 사업자들에게 ‘반입 명령’을 내리는 것이 전부였다. 현재 69개 국내 사업자들이 러시아, 캄보디아, 중국, 베트남, 인도네시아 등에서 농장을 운영하고 있는데, 이들에게 해당 국가에서 재배한 곡물을 한국으로 가져오게 한다는 것이다. 현재 수립되어 있는 ‘비상시 해외농업자원 반입 매뉴얼’ 내용도 이게 전부다.

그러나 입장을 바꿔 생각해보자. 식량 수출국이 자기 나라 먹을 것이 부족한 비상상황에서 외국 기업이 곡물을 반출하도록 놔둘 리 없다. 2018년 국회 입법조사처도 “자국의 식량 확보, 가격안정 등을 이유로 곡물수출 규제 조치가 단행될 경우 현실적으로 정부의 반입 명령은 실효를 거두기 어렵다”고 지적한 바 있다. 결국 대한민국은 식량위기에 대해 ‘무대책’이나 다름없는 상황이다.

국립식량과학원이 우수 종자를 연구·개발하기 위해 시험포장에 파종한 우리밀을 수확하고 있다. 국립식량과학원 제공
국립식량과학원이 우수 종자를 연구·개발하기 위해 시험포장에 파종한 우리밀을 수확하고 있다. 국립식량과학원 제공

그러면 어떤 대책이 필요할까? 지금 국내에서 소비되는 주요 곡물 중에서 쌀은 자급이 거의 가능하다고 하지만, 여기에도 함정이 있다. 1인당 연간 쌀 소비량이 2000년 93.6㎏에서 2018년 61.0㎏으로 계속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줄어든 쌀 소비 대신 늘어난 것이 육류와 오렌지, 열대과일 소비다. 이들은 수입 의존도가 높으니, 쌀 자급이 된다고 해서 괜찮은 것이 아니다. 결국 전체 먹거리 자급률은 떨어지기 때문이다.

쌀 이외의 다른 곡물 자급률은 심각할 정도로 낮다. 콩 자급률은 25.4%, 보리쌀은 32.6%, 옥수수는 3.3%에 불과한데, 특히 밀이 심각하다. 밀의 자급률은 1%대에 불과하다. 그러나 밀은 한국인의 식탁을 책임지는 주요 곡물이다. 현재 한국인의 1인당 연간 밀 소비량은 32.2㎏으로 쌀 소비량의 절반을 넘는다. 그만큼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 곡물의 자급률이 바닥인 것이다.

국내 식량자급률을 높이려면 밀의 자급률을 높여야 하지만 현실은 정반대다. 우리밀 자급률은 2016년 1.8%, 2017년 1.7%에서 2018년 1.2%로 오히려 계속 떨어지고 있다. 우리밀 재배면적도 2016년 1만440㏊에서 2020년 5224㏊로 4년 만에 절반 수준으로 감소했다. 정부는 2022년까지 밀 자급률을 9.9%로 늘리겠다고 하는데, 지금 상황을 보면 어림도 없는 목표다.

밀 자급률이 떨어지는 이유는 수요처 확보가 안 되는 데 있다. 농민들이 우리밀을 적극적으로 생산해보려고 해도, 안정적인 수요처를 확보하기가 어렵다. 일본은 전체 식량자급률이 40%에 못 미칠 정도로 심각하지만, 밀 자급률만은 12%를 넘어섰다. 1970년대에 4%대까지 떨어지자 일본 정부가 의지를 갖고 자급률을 끌어올린 것이다. 밀을 주곡으로 생각하고, 공공급식에서 국산 밀을 사용하게 하는 등 최대한 장려한 결과다.

부실한 식량위기 대책

농림축산식품부도 2019년 ‘밀산업육성법’을 제정하며 체계적으로 정책을 펴겠다고 한다. 그러나 이 문제를 한 부처에만 맡기는 것은 무책임한 일이다. 식량은 곧 국민의 생존이 걸린 문제다. 그야말로 범정부 차원의 대책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공공급식에서 우리밀 등 우리 농산물 사용을 확대하려면, 교육부, 교육청 등 관계 부처와 긴밀한 협조가 필요하고 기획재정부도 예산확보에 걸림돌이 되지 말아야 한다.

그런데 지난 7월 발표된 ‘한국판 뉴딜 종합계획’에 농업과 관련된 내용은 ‘농어촌 디지털 접근성 강화’ ‘공공급식 식자재 거래·관리 통합 플랫폼’ ‘농촌 태양광 융자’ 정도밖에 없었다. 눈을 씻고 봐도 식량위기 대책은 없었다. 여전히 ‘외국에서 사서 먹으면 된다’는 생각에 빠져 있는 듯하다. 하지만 진짜 식량위기가 닥쳤을 때 필요한 만큼의 식량을 살 수 있을까? 너무 사고 싶어도 살 수가 없으면 어떻게 할 것인가?

그때는 이미 늦었다. 소 잃고 외양간은 고칠 수도 있지만, 먹을 게 없을 때는 외양간을 고칠 힘도 없을 것이다. 마스크는 단기간에 증산할 수 있지만, 농산물은 그렇게 할 수가 없다. 정부의 존재 의미가 있으려면 국민의 먹거리부터 챙겨야 한다. 그린뉴딜의 핵심에 식량자급률을 높일 수 있는 정책이 포함되어야 한다.

하승수 녹색전환연구소 기획이사

_____________________
[인터뷰] 유재흠 부안군 우리밀 영농조합법인 대표

“식량자급률 높이려면 우리밀 지원부터”

―전북 부안군에서는 우리밀 농사를 얼마나 짓고 있는지?

“연간 400~500㏊(1㏊는 약 3천평) 정도를 짓고 있고, 생산량은 1500t 정도 된다. 부안의 경우 대부분 우리 법인 조합원들이 밀농사를 짓는데, 조합원 수는 320명 정도 된다. 그동안 많이 힘들었고 시행착오도 겪었지만, 이제는 많이 안정됐다. 5년 안에 생산량을 3천t까지 늘려보려고 한다.”

―우리밀 농사의 장점은?

“지역에 따라 다를 수 있지만, 농민들 입장에서는 수요처만 확보되면 지을 만한 농사다. 국산밀산업협회에 의해 가격이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가을에 파종하고 봄에 수확하기 때문에 벼와 이모작이 가능하다는 것도 장점이다.”

―그런데 우리밀은 왜 이렇게 자급률이 낮은가?

“생산의 문제보다는 수요처 확보의 어려움 때문이다. 재작년에도 생산한 밀이 판매처가 없어서 어려움을 겪었다. 우리 법인의 경우에는 전량 생협에 공급하고 계약재배를 하는데, 이렇게 수요처가 확보되는 것이 중요하다. 수입밀이 장악한 일반 시장에서 유통이 어렵기 때문이다.”

―맛 등 품질은 어떤가?

“품질은 많이 좋아졌다. 종자, 재배기술, 저장 등의 문제가 해결되고 있다. 전문가들도 ‘우리밀 맛이 이렇게 좋았냐’고 한다. 얼마 전 부안의 한 중국집에서 하루 동안 우리밀 밀가루로 음식을 만들어서 제공해 봤는데, 사람들 반응이 좋았다. 자기 돈 내고 먹게 했는데도 말이다. 일부 학교에서는 통밀쌀을 급식(식이섬유, 비타민, 무기질 등이 풍부한 통밀을 10~20% 정도 쌀과 섞어서 잡곡밥처럼 제공)에 시범적으로 사용했는데 반응이 좋았다고 한다. 가격이 수입밀에 비해 비싼 것이 문제인데, 공공급식에서부터 우리밀을 사용하는 등의 방식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부안에선 ‘우리밀 자급’을 추진한다고 들었는데?

“지금까지는 부안에서 생산된 우리밀을 외부에만 공급했다. 부안에서 생산되는 밀을 부안 사람들은 못 먹은 것이다. 내년에는 부안군의 예산 지원을 받아서 지역의 중국집, 빵집, 만두집 등에 우리밀을 공급하려고 한다. 5년 안에 부안의 우리밀 자급률을 30%로 높이는 것이 목표다.”

―정부에 바라는 것이 있다면?

“지금까지 우리밀은 생산자, 생협 등 민간에서 지키고 키워왔다. 이제는 정부가 나서야 할 때다. 일본은 수입밀을 국가가 국영무역 형태로 수입하고, 2배가량 가격으로 민간에 판다. 그로부터 나오는 이익으로 국산밀 재배농가를 지원한다. 그렇게 밀 자급률을 끌어올린 것이다. 반면 우리는 1984년에 밀 정부 수매제가 폐지됐다가 2020년 부활했다. 밀 자급률을 높이려는 목표가 달성되려면 정부가 충분한 예산을 확보해서 우리밀 소비가 확대되도록 획기적인 지원책을 마련해야 한다.”

하승수 녹색전환연구소 기획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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