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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20대 여성의 고통은 사회적이라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등록 2020-12-03 10:27수정 2020-12-04 00:02

[조용한 학살을 멈추자]
20대 여성의 위기를 가리키는 통계와 수치들
전문가들 “20대 여성 강해서 그나마 이정도인 것”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수년간 이어진 고용시장 침체에 올해는 코로나19라는 재난이 겹쳤다. 숫자들은 위기에 내몰리는 20대 여성을 가리켰지만 사회는 주목하지 않았다. 보이지 않는 20대 여성들은 사회에서 설 자리를 조용히 잃어갔다. 누구도 관심 갖지 않는 20대 여성의 위기를 임윤옥 한국여성노동자회 자문위원은 ‘조용한 학살’이라고 했다.

“생활비를 벌어야 해서 (더 나은 일자리를 위한) 공부를 미루게 되고, 일을 하다 보면 공부를 놓게 되고, 그럼 안정적 일자리를 위한 공부는 못하게 되고…, 그럼 또 아무 일이나 하게 되고, 그럼 몸이 상하고, 그럼 병원에 가고, 병원에 가려면 일을 해서 생활비(병원비)를 벌어야 하고…, 이런 식으로 계속 반복이 되고 있어요.”(91년생 ㅇ씨)

“경제적 기회를 이들에게 줬으면 달랐을 텐데 이런 생각을 해요. 지금은 몇 안 되는 불안정한 일자리를 놓고 같은 20대 여성들끼리 경쟁하고 있거든요.”(97년생 송)

7명의 20대 여성이 <한겨레>에 꺼내놓은 이야기는 개인적이지만 개인적이지 않다. 그들이 겪고 있는 정신건강 위기의 뿌리는 한국 사회의 구조와 맞닿아 있다. 이 구조에 손을 대지 않고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고 전문가들은 진단한다. 20대 여성이 일터와 일상에서 어떤 구조 안에 놓여있는가를 확인하는 과정이 꼭 필요한 이유다. <한겨레>는 여러 통계와 자료로 20대 여성이 어떤 문제에 직면해 있는지 살펴보고, 전문가들에겐 조용한 학살을 멈추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물었다.

▶바로가기 : “우리 같이 열심히 살아남아요”… 댓글을 읽었습니다

https://www.hani.co.kr/arti/society/women/972470.html

지난달 항공사에서 일하던 20대 여성이 숨졌다. 그는 코로나19로 사실상 강제 휴직 상태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같은 달 서울의 한 야산에서도 20대 여성 3명이 구조됐다. 고통받는 20대 여성들의 극단적 선택 소식이 잇따르고 있다. 전문가들은 “코로나19는 20대 여성들의 극단적 선택에 불을 댕겼을 뿐이다. 이들은 계속 힘들었다”고 말한다.

20대 여성 모든 수치는 위험을 가리켰다

9월21일 통계청이 발표한 2019년 사망원인통계를 보면, 지난해 20대 여성 자살률(10만명당 자살사망자 수)은 전년 대비 25.5% 늘었다. 올해는 더 심각했다. 신동근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보건복지부로부터 제출받은 ‘2019~20년 상반기 자살 현황’을 보면, 올해 상반기 20대 여성 자살사망자 수는 전년보다 43% 늘었다. 지난해 자살한 20대 여성은 207명, 올해 자살한 20대 여성은 296명이었다.

우울증으로 병원을 찾는 20대 여성도 급증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신동근 의원실에 제출한 ‘여성 연령별 우울증 진료인원 현황’을 보면, 20대 여성 우울증 진료는 같은 기간 12만4538건에서 17만2677건으로 38.7% 증가했다. 극단적 선택 시도도 증가했다. 남인순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보건복지부로부터 제출받은 ‘응급실 기반 자살시도자 사후관리사업 현황’을 보면, 올해 1~8월 자살을 시도한 20대 여성은 전체 자살시도자의 19.9%로 전 세대와 성별을 통틀어 가장 많았다.

20대 여성을 연구하는 이현정 서울대 교수(인류학과)는 “20대 여성을 정신질환 여부나 자해, 자살 기도 여부와 상관없이 무작위로 모집해 인터뷰해도 기본적으로 우울, 강박, 공황장애 등 정신질환 경험 비율이 굉장히 높다. 이들은 지금 사회에 대해 디스토피아적 관점을 갖고 있다.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하고 겨우겨우 살아가는 모습이 발견된다”고 말했다.

설명되지 않는 차별, 여전한 유리천장, 저임금 불안정 노동

전문가들은 20대 여성이 극단적 선택을 하는 가장 큰 요인으로 경제적 문제를 꼽는다. 김현수 서울시 자살예방센터장(명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은 “40·50대가 당하는 해고와 20대가 당하는 해고는 차원이 다르다. 한 달 벌어서 한 달 사는 20대가 많기 때문에, 그게 중단됐을 때 더욱 버티기가 힘들다. ‘겨우 한두 달 갖고’ 라고 말하는 건 20대 특성을 이해하지 못한 결과”라고 말했다. 그중 여성은 불안정 일자리에 몰려있어 더 심각한 위기를 겪는다. 이 교수는 “20대 여성들이 사실 갈 곳(일자리)이 별로 없다. 그들 대부분이 저임금을 받고 불안한 서비스직 노동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통계청이 발표한 ‘2020 통계로 보는 여성의 삶’을 보면, 지난해 여성 임금근로자의 시간당 임금은 1만3417원으로 남성 근로자 임금(2만3566원)의 69.4% 수준이었다. 여성 임금근로자가 저임금 비정규직 일자리에서 일하는 비율이 높은 것 등이 영향을 끼쳤다. 2019년 8월 기준 여성 임금근로자 가운데 약 45%가 비정규직이었다. 이 비중은 2014년 이후 5년째 높아졌다.

과거보다 노동시장에서의 성차별이 개선됐다는 인식이 있지만 전문가 의견은 다르다. 김난주 한국여성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이 2017년 작성한 ‘한국의 성별임금격차 현황 및 과제’를 보면, 전 연령 중 15~29살 남녀의 임금 격차가 가장 적었다. 하지만 이 연령대 여성은 교육연수, 직업교육훈련 기간, 근속연수 등이 남성보다 길어 더 많은 임금을 받아야 하는데도 남성보다 더 적은 임금을 받고 있다고 분석했다. 김 부연구위원은 이런 임금 격차를 “설명되지 않는 차별”이라고 규정했다. “청년 여성이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로 인한 차별에 놓여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했다.

20대 여성 서울시민 10명 중 8명은 범죄 불안감 느껴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달 25일 국내 첫 ‘여성폭력추방주간’을 맞아 “모든 폭력이 범죄이지만, 특히 여성폭력은 더욱 심각한 범죄다. 정부는 가정폭력, 데이트폭력, 스토킹, 디지털 성범죄 같은 여성 대상 범죄에 단호히 대응하며 피해자를 빈틈없이 보호할 것”이라고 SNS에 밝혔다.

20대 여성은 현실이 전혀 안전하지 않다고 여긴다. 서울시와 서울시 여성가족재단이 지난해 발표한 ‘2018년 서울시 성인지 통계’를 보면, ‘범죄에 대한 두려움이 크다’고 느끼는 20대 여성의 비율은 79.6%였다. 10명 중 8명은 범죄에 대한 두려움을 안고 있었다. 반면, 20대 남성은 30.2%가 범죄에 대한 두려움을 느낀다고 답했다. 성별 간 불안감 격차는 20대에서 가장 컸다. 이현정 교수는 “2016년 강남역 살인사건도 있었고 2019년 n번방 사건도 있었다. 20대 여성들에게 이 사회가 안전하지 않고 암울하고 끔찍한 폭력 사회라는 게 인지된 상황이다. 그런데도 크게 사회가 변하지 않는다는 느낌을 받으니 이 사회를 살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들의 불안감에는 근거가 있다. 정춘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경찰청으로부터 제출받은 ‘2015년 이후 여성 대상 폭행·살인 사건 통계’를 보면, 여성을 대상으로 한 폭행·살인은 증가하고 있다. 2019년 5만3200건으로 지난 2015년 4만5696건보다 16.4% 증가했다. 통계청 <통계플러스> 가을호에 실린 ‘데이트폭력의 현실, 새롭게 읽기’ 보고서를 보면, 2019년 데이트폭력 신고 건수는 2017년보다 41.1% 늘었다.

페미니즘 외쳐도 사회는 남성 중심

우리 사회에 뿌리 깊은 가부장제는 20대 여성의 정신건강을 해치는 원인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사회건강연구소가 2019년 펴낸 ‘청년여성의 자살 문제’는 청년 여성이 처한 현실 이렇게 분석한다.

“가정에서는 남녀 차별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고 교육환경에서도 남녀가 똑같이 경쟁하면서 학창시절을 겪게 되지만, 대학 문을 나서는 순간 여성들은 여전히 남성 중심으로 흐르고 있는 사회와 맞닥뜨리게 된다. 취업, 승진, 결혼, 육아, 모든 것에서부터 남녀가 서 있는 땅은 기울어져 있었다. 결혼하고 자녀 출산과 양육 과정에서 겪는 경력단절의 두려움은 아주 흔한 일이다. 아슬아슬하게 유지하고 있던 부실한 희망의 조각들은 작은 바람에도 무너진다.”

지난달 14일 한국여성학회에서 사회학 연구자인 류한소씨 등이 발표한 ‘무엇이 우울한 여성을 더 우울하게 하는가’를 보면, 정신건강이 좋지 않은 여성에게 엄격한 성 역할 규범은 우울을 심화시키는 요인인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자들은 “최근 청년 여성들의 악화한 정신건강, 높은 자살률이 한국 사회의 가부장제적 규범과 관련 있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여기에 불씨를 댕긴 코로나19

코로나19는 20대 여성의 경제적∙심리적 고통을 가중하고 있다. 취약한 여건이나마 일하던 20대 여성들이 그 일자리에서도 밀려나고 있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분석한 ‘9월 여성 고용 동향 자료’를 보면, 여성 실업률은 지난해 같은 달보다 0.6%포인트 높아졌는데, 15~29살 청년 여성의 실업률은 0.8%포인트 높았다. 한국건강증진개발원이 신동근 의원실에 제출한 ‘2020 건강투자 인식조사’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20대 여성 56.7%가 코로나 블루(코로나로 인한 우울증세)를 경험했다.

장재열 청춘상담소 좀놀아본언니들 대표는 “우리 사회가 이미 내포했던 위험성이 폭증하고 있다”고 했다. 장 대표는 “코로나19 이전에는 상담하는 20대 여성들이 ‘어떻게 해야 할 지 모르겠다’는 말을 많이 썼다. 결국 이 말은 어떻게 해 나가야 할지 방향성을 알게 되면 더 나아갈 의지가 있다는 말이다. 하지만 요즘은 ‘뭘 해야겠다는 생각도 안 든다’는 식의 말이 많아졌다. 삶의 방향성을 잃어 고민인 것과 정서 자체가 저활력 상태에 접어들어 무언가를 시도할 여지조차 잃은 건 대단히 큰 차이”라고 했다.

“20대 여성은 약하지 않다. 강해서 이만큼 버틴 것이다”

20대 여성들은 자신들의 고통이 개인적이지 않음을 잘 알고 있다. 이들은 SNS 등을 통해 자신들의 괴로움을 공유한다. 지난 6월 여성학 연구자인 장윤원씨가 쓴 ‘20-30대 여성 우울증과 페미니스트 대항서사의 가능성’ 논문을 보면, 2016년 강남역 살인사건 이후 우울증의 고통과 함께 사는 청년 여성들은 온라인 플랫폼을 중심으로 자신의 감정을 발화하고 있다고 짚는다. 그러면서 이러한 행동들이 “여성들이 더는 환자라는 낙인화된 위치로만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을 보여”주며 “자신의 고통이 사회적으로 만들어진 것임을 명확히 인지하고 고발하고 있다”고 진단한다.

전문가들은 20대 여성의 고통을 다룰 때 주의해야 할 점이 있다고 지적한다. 20대 여성 자살률이 높아지는 원인은 이들이 정서적으로 취약하기 때문이라고 단정해선 안 된다는 것이다. 이현정 교수는 “아직 이 정도 자살률이 유지되고 있는 것도 놀랍다. 20대 여성들이 심리적으로 약한 게 아니라 강하기 때문에 이만큼이라도 버티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장재열 대표는 “20대 여성들의 높은 자살률 대책은 이를 개인의 문제로 바라보지 않고 ‘사회적 현상’임을 인지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한다”고 했다. “20대 여성이 사회적 안전망으로부터 가장 보호받지 못한 결과로 봐야 한다. 우리 사회는 그들의 안전망 구축을 고민하면서 이런 안전망이 보편적으로 확산할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부의 적극적 개입을 주문하기도 했다. 현진희 한국트라우마스트레스학회장은 “20대 여성들이 필요한 것을 적극적으로 지원해야 한다. 이들이 많이 찾는 노동·고용·경제 관련 창구에서 정신건강 상태를 면밀히 봐 줄 필요가 있다. 또한 분야별로 분절해 접근하기보다 여러 분야를 연결한 서비스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했다.

이주빈 기자 ye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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