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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김어준·진중권·서민처럼 ‘센놈’들의 민낯을 보여주고 싶었다

등록 2021-04-18 08:56수정 2021-04-27 10:56

[토요판] 인터뷰
<프로보커터> 지은이 김내훈씨

화제의 책 &lt;프로보커터&gt; 지은이 미디어문화 연구자 김내훈씨. 14일 경기 고양시 일산호수공원에서 만난 그는 “프로보커터가 쓰는 혐오의 말이 일상의 말과 섞여 ‘나쁜 관종의 시대’가 올까 염려된다”고 말했다. 장철규 선임기자 chang21@hani.co.kr
화제의 책 <프로보커터> 지은이 미디어문화 연구자 김내훈씨. 14일 경기 고양시 일산호수공원에서 만난 그는 “프로보커터가 쓰는 혐오의 말이 일상의 말과 섞여 ‘나쁜 관종의 시대’가 올까 염려된다”고 말했다. 장철규 선임기자 chang21@hani.co.kr

▶김내훈씨는 미디어문화 분야를 전공하는 박사과정 연구자다.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영화이론을 공부하다 , 정치·문화·사회를 두루 배우고 싶어 연세대 커뮤니케이션대학원에 들어갔다 . 좌파 포퓰리즘 , 정치 유튜브 , 밈 (문화전달 매개 )과 소통 같은 것에 관심이 많다 . 첫 책 <프로보커터 >의 분석 대상이 김어준 , 진중권 , 서민처럼 ‘센 놈 ’들이다 . 그는 인터뷰 내내 ‘나쁜 관종 ’의 문제를 주저없이 풀어냈다 .

▶[책과 생각] 진중권·김어준은 어떻게 공론장 휘저었나 - 프로보커터
https://www.hani.co.kr/arti/culture/book/990303.html

“제가 아니까요.”(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

풋! 건너편에 앉았던 패널 정준희 교수(한양대)가 참지 못하고 헛웃음을 뱉어냈다. 지난해 1월1일 <제이티비시>(JTBC) 신년토론회에서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가 정경심 동양대 교수의 딸 표창장 위조 의혹 수사와 관련해 “(재판을 통해 확인할) 판결의 문제가 아니”라며 ‘왜냐면, 내가 아니까’라는 식으로 답하면서 벌어진 일이다. 당시 진중권의 발언은 누리꾼 사이에서 ‘역대급 짤이 생겼다’는 조롱 섞인 반응을 받았다. 별다른 근거 없이 사회적 담론이나 특정 집단을 상대로 도발을 위해 도발하는 ‘프로보커터’의 단면을 보여준 장면이다.

프로보커터는 우리말로 도발자, 선동가 정도로 번역이 가능하지만 엄밀히는 극단적 도발로 이익을 챙기는 ‘나쁜 관종’(남의 관심을 병적으로 갈구하는 사람)이란 뜻에 가깝다. 비슷한 부류들이 어그로, 인터넷 트롤, 사이버렉카로 불려왔다. 주목받으면 살아남을 수 있는 ‘주목경제’ 시대가 만든 신종 직업 도발자 같은 것이다. 프로보커터는 우선 사회적으로 관심이 큰 현안이나 정치권 같은 특정 그룹을 도발해 적을 만든다. 이어 적의 대척점에 선 이들을 ‘우리 편’으로 만들어 그 틈에서 생기는 이익을 챙긴다. 지향하는 바가 없어도, 가짜뉴스나 엉터리 논리를 동원해도 별 상관이 없다.

이달 초 출간된 책 <프로보커터>는 ‘그들을 도발해 우리를 결집하는 자들’에 관한 이야기다. 미디어문화 연구자로 이 책을 쓴 김내훈(29)씨는 “주목과 관심을 위해 무슨 짓이든 불사하는 관종의 멘탈리티가 정치 담론장에서 왜곡과 소란을 일으키며 막대한 사회적 비용을 초래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김씨는 국내 대표적인 프로보커터로 진중권, 김어준, 서민 그리고 우파 유튜버들을 소개했다. 다른 듯 닮은 저들은 누굴까? 이들은 왜 사회적 오염 영역을 확대해가는 걸까? 김씨를 14일 경기 고양시 한 카페에서 만났다.

특정 정치권에 도발해 적 만들고
적의 적을 우리 편으로 끌어들여
틈새서 이익 챙기는 신종 직업인

진중권 ‘막말과 도발이 생계수단’
김어준 ‘독특하지만 성공한 관종’
서민 ‘게으르거나, 무능하거나’

기성언론도 프로보커터 방식 따라
“이들로부터 공론장 오염 막아야”

‘신종 직업 도발자’ 진중권·김어준·서민

―진중권부터 얘기해보자. ‘막말과 도발을 생계수단으로 삼는 프로보커터 가운데 프로보커터’라고 평가했다.

“싱가포르 출신의 ‘아모스 이’라는 인물이 있다. 한때 재능 넘치는 젊은이였지만, 도발과 어그로(자극적인 인터넷 글로 문제를 일으키는 행위)에 빠져 ‘관심받지 못하느니 주목받는 소아성애자가 되겠다’며 범죄자로 몰락한 프로보커터다. 한국의 대표적 프로보커터로 진중권이 떠올랐다. 그는 과거 <조선일보> 반대 운동 과정에서 ‘원조 키보드 워리어’로 불렸고, 한때 젊은 미학 연구자로서 상징자본을 가졌다. 지금은 논객, 지식인으로서 소멸시효가 끝난 사람이다. 최근 행보를 보면 오히려 프로보커터로서 완전히 궤도에 오른 것으로 보인다. 전매특허인 ‘모두까기’로 정부·여당에 맹폭을 퍼붓고 보수진영에 ‘우리 편’이라는 착각을 심은 뒤, 그들 토론회에 초청받아 “(이쪽도) 뇌가 없다”는 식의 ‘돌려까기’로 중간층에 우리 편을 만드는 것이다. 비평가로서의 역량이나 메시지가 아닌, 적을 도발해 주목받는 프로보커터의 퍼포먼스만 남은 것 같다.”

―프로보커터로서 진중권만의 특징이 있을까?

“진중권은 ①싸가지 없는 발언으로 상대를 도발한다 ②화난 상대를 적으로 만든다 ③적의 적은 나의 친구니까 자연스럽게 우리 편 추종자를 확보한다는 전략을 쓴다. 토론 때 적을 자극하거나, 모욕적인 언사를 던져도 되는 상대를 고르는 능력이 탁월하다. <조선일보>로 대표되는 보수 성향 언론사들이 자기 발언을 인용하는 것도 즐기는 것 같다. 하지만 최근 <중앙일보>에 쓴 칼럼에서 잘못된 정보로 여당을 ‘모두까기’하다 정정보도를 낸 것은 흥에서 망으로 가는 프로보커터의 조짐 같은 것으로 읽힌다. 주목도가 낮아지는데, 달리 관심을 끌 대안을 찾지 못하자 악과 억지가 남게 되는 거다. 프로보커터 말기 증상이다.”

―김어준을 ‘가장 성공한 프로보커터’라고 평가했다. ‘나쁜 관종’치고 평가가 후한 것 같다.

“김어준은 프로보커터로서 조금 독특한 유형이다. ‘음모론 분쇄기’로 시작해 지금은 ‘음모론 제작자’가 됐다. 그런데도 여당의 최고 스피커 가운데 하나이자, 2017년 이후 ‘한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언론인’ 부문에서 손석희 <제이티비시> 사장에 이어 수년째 2위를 유지하고 있다. 국내 프로보커터들의 최대 상품이라고 할 만한 인터넷 팟캐스트 방송 <나는 꼼수다>에서 이명박 전 대통령을 공격하면서 ‘레지스탕스 언론’이란 이미지를 만들었다. 언론 신뢰도가 크게 낮아진 틈새시장을 잘 공략하는 프로보커터인 것이다.”

―책에서 김어준이 ‘선을 넘었다’고 했다.

“김어준의 태도는 한마디로 ‘정치 종족주의’로 설명할 수 있다. 김어준은 이념성향으로 적과 아군을 나눈 뒤 적에 해당하는 보수성향 진영을 완벽히 배제한다. 적을 도발하고, 우리 편을 결집할 때 음모론을 활용했다. “절대 그러실 분이 아니지만”, “~라는 소설을 써본다”는 김어준 특유의 기믹(gimmick·관심끌기 전략)도 잘 먹혀들었다. 문제가 될 만한 일에 대해서는 “유머를 다큐로 받는다”는 투로 교묘하게 책임을 피한다. 반면 자신이 납득 못하거나 설명하지 못하는 건 음모론으로 몰아간다. 개표 조작설, 세월호 고의 침몰설, 위안부 피해 할머니 배후조종설, 성폭력 피해 고발운동(미투운동) 정치공작설 등이 모두 같은 맥락이다. 다만, 김어준이 프로보커터로서 쉽게 영향력을 잃어버릴 것 같지는 않다. 정부·여당 쪽에서 그를 ‘야당의 도발을 제압하는 도발자’로 활용하고, 비판을 해도 욕먹으면서 성장하는 프로보커터 특성상 오히려 체급을 높여주는 효과가 있는 것 같다.”

―서민의 경우 ‘프로보커터 3인방’으로 뽑혔는데, 비중이 적다.

“이 판도 경쟁이 있다고 봐야 한다. 서민은 처음 등장할 때 박근혜 정부를 상대로 한 위트있는 도발로 유명해졌다. 하지만 이후 앵무새처럼 했던 얘기를 또 하는 수준이다. 도발하는 행위에 대한 본인만의 어젠다가 없다. 게으르거나, (프로보커터로서) 원래 무능했기 때문일 텐데, 그래서 타격감도 약하다.”

―가로세로연구소(가세연) 같은 우파 유튜버들을 싸잡아 ‘조잡한 프로보커터’, ‘사이버렉카의 끝판왕’, ‘대범 악랄하다’고 잘라 말했다.

“개별 인물들을 따로 소개할 수준이 아니다. 너무 노골적이고 뻔한 망동이어서 사회적 현상으로 분석할 가치가 없다. 특히 가세연은 선거부정을 주장하기 위해 여성 아이돌 사진을 가져다 쓰고, 개그우먼 박지선의 죽음을 또 다른 조회수 장사에 써먹었다. 그런데도 이들은 지난해 슈퍼챗(유튜브를 보는 대가로 시청자가 후원금을 내는 플랫폼) 최고 수익을 냈다. 이익이 생기니까 더 대범하고 악랄한 일을 서슴지 않는다. 나쁜 관종들 중에서도 하급이다.”

‘나쁜 관종’ 배경엔 주목경제, 유튜브, 언론

지난해 김씨는 계간지 <황해문화>(통권 108호)에서 “(진중권은) 그가 비난하는 대상이 최대한 기분 나쁘도록 최선의 노력을 기울인다. 그렇게 함으로써 비판 대상으로부터 반응을 유도하고, 그것이 미디어를 통해 대중에 노출되면서 이른바 ‘사이다’ 같은 청량감을 느끼는 사람들의 지지를 얻는다”고 분석했다. 실제 프로보커터들이 주로 정치판에서 활약하지만, 이들에게 정치적 대의는 중요치 않다는 것이다. 이들이 파는 상품은 분노와 혐오이기 때문이다.

―프로보커터에 주목한 까닭이 있나?

“프로보커터는 영미권에서 이미 큰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2016년 미국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에도 프로보커터들이 한몫했다는 평가가 있다. 제도권 정치와 언론에 대한 불신이 심해지면서, 특정 집단의 분노와 혐오만 자극해도 내 편이 생기는 노림수가 먹힌 것이다. 국내에도 프로보커터들의 영향력이 꽤 커졌다는 사실이 눈에 들어왔다. 진중권, 김어준, 서민, 가세연은 다른 듯 분명 닮은 꼴인데, 기존 ‘관종’이나 ‘트롤’ 같은 말로는 하나로 설명이 잘 안된다. 이들을 프로보커터로 정의하고, 민낯을 보여주고 싶었다.”

―프로보커터의 영향력이 커지는 까닭을 ‘주목경제’로 설명했다.

“프로보커터들은 이념이나 신념을 따르는 정치가, 운동가들이 아니다. 통장에 ‘입금’이 안 되면 그 동력이 오래가기 어렵지 않겠나? 그런데 때마침 사람들의 눈길을 끄는 것 자체가 돈이 되는 주목경제 시대가 온 것이다. 유튜브가 촉매제가 됐을 거다.”

―프로보커터에 대한 언론의 태도를 ‘언제든 인용 저널리즘’으로 표현한 것도 눈에 띈다.

“언론이 프로보커터 뒤에 숨어서 무책임한 얘기들을 퍼뜨린다. 더 큰 문제는 기성 언론사들이 프로보커터들의 행태를 따라하기 시작했다는 거다. 예를 들어 지난해 ‘인국공 사태’(인천국제공항공사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논란) 때 한 카톡방의 가짜정보를 기존 언론들이 사실 확인 없이 보도 퍼포먼스를 벌였다. 대형 보수언론들이 프로보커터를 이용해 여론을 호도하고, 힘없는 언론사들은 조회수를 위해 이들 발언을 재생산한다. 언론과 프로보커터들의 악순환 고리가 이어지고 있다.”

―그래도 아직 한국은 형편이 낫다고 평가했다.

“한국 상황이 좋다는 뜻은 아니다. 더 나쁜 외국 사례들도 있다는 것이다. 미국에선 코로나19 예방을 위해 ‘마스크를 쓰라’는 조처가 정파적인 행위로 취급되는 경우들이 있다. 영국에선 5세대 이동통신(5G)망이 바이러스를 퍼트린다는 터무니없는 주장이 실제 통신기 파손으로 이어진 사례도 있다. 한국은 국가 차원 방역조처에 대해 프로보커터들이 ‘저항하라’고 도발해도, 이를 받아들일 만큼 극단적인 상황까지 온 건 아닌 것 같다.”

프로보커터는 어떻게 사회현상으로 자리잡게 됐을까? 김씨는 소통수단의 발달로 누구나, 언제, 어디서든 소통이 가능하게 된 ‘초연결성 시대’에서 원인을 찾았다. 기성 정치권이나 주류 사회에 반항적이던 이들이 일부 연예인급 프로보커터를 중심으로 초연결을 통해 집단화했다는 것이다. 문제는 프로보커터들이 나쁜 방식으로 사회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이다.

―이들이 ‘나쁜 관종’ 취급을 받지만, 한켠에는 그들에게 열광하는 이들이 있다.

“미국의 기술·문화 연구자 클레이 셔키의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미트업’이란 소셜미디어(SNS)에서 가장 활발하게 활동했던 게 마녀 숭배자나 이교도 같은 것이었다. 통념적으로 수용받기 어려운 이들 집단이 특정 공간에서 더 유대감이 끈끈해지는 사례를 보여준 것이다. 사회적으로 승인받지 못한 집단의 세력화인데, 개인 간 소통수단이 발달하면서 생긴 초연결성 시대(hyperconnectivity)의 그늘로 봐야 할 것 같다.”

―시민들이 프로보커터 문제를 이해하고, 공론장 오염을 경계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프로보커터들을 통해 일베(극우 성향 인터넷사이트 ‘일간베스트저장소’) 용어라든가 혐오의 언어가 사회 전반에 이미 많이 틈입했다. 일례로 ‘착짱죽짱’이란 말이 있다. ‘착한 중국인은 죽은 중국인이다’라는 뜻인데, 끔찍한 인종차별 용어다. 프로보커터들이 확산시키는 말들인데 언어유희의 하나처럼 일상에서 쓰이고 있다. 미국에선 이미 인종과 난민 차별, 홀로코스트 같은 망언을 풍자와 구별하지 못한 채 킥킥거리는 일이 넓게 퍼지고 있다. 프로보커터가 쓰는 혐오의 말이 일상의 말과 섞여, 우리도 이들이 사회담론을 주도하는 ‘나쁜 관종의 시대’가 올까 염려된다.”

홍석재 기자 forchi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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