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사회 사회일반

음주운전 사망사고, 고작 ‘징역 8년’…“얼마나 죽여야 무기징역?”

등록 2021-04-20 04:59수정 2021-04-20 07:36

[뉴스AS]
‘윤창호법’ 무색…법원 반복되는 ‘징역 8년형’
지난 14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음주 운전 차량에 치여 숨진 대만인 유학생 쩡이린씨의 친구들이 재판 결과에 관련해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14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음주 운전 차량에 치여 숨진 대만인 유학생 쩡이린씨의 친구들이 재판 결과에 관련해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음주 운전자가) 우리의 아름답고 귀중한 딸을 살해했다는 사실을 스스로 자각하길 바랍니다. 이번 판결이 한국에서의 음주운전 범죄를 줄이고 가족의 파괴를 막는 데 보탬이 되길 희망합니다.”

지난해 대학원 지도 교수를 만나고 집으로 가던 중 횡단보도를 건너다가 음주 운전차에 치여 숨진 대만 유학생 쩡이린(당시 28살)의 부모는 최근 한국 변호인을 통해 보내온 영상편지에서 이렇게 호소했다. 딸을 잃은 비극적인 사고 앞에서 이들은 한국의 음주운전 범죄가 줄어들기를 희망했다.

쩡이린은 지난해 11월6일 밤 1140분께 서울 강남구의 한 횡단보도에서 회사원 ㄱ씨가 몰던 차에 치어 숨졌다. 당시 ㄱ씨의 혈중알코올농도는 0.079%로 운전면허 취소 수치(0.08%) 수준이었다. 쩡이린은 과다 출혈 등으로 현장에서 숨을 거뒀다.

ㄱ씨는 음주운전으로 2012년 3월과 2017년 4월에도 각각 벌금 300만원, 100만원의 약식명령을 받은 바 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26단독 민수연 판사는 지난 14일 ㄱ씨에게 검찰 구형(징역 6년)보다 높은 징역 8년을 선고했다.

음주운전을 막기위해 음주운전으로 사망사고를 내면 최고 무기징역까지 선고할 수 있는 ‘윤창호법’(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상 위험운전치사죄)이 2018년 12월부터 시행됐지만, 사실상 권고형의 최고형인 ‘징역 8년’ 선고가 되풀이되고 있다. 법원이 법 적용과정에서 권고 형량을 기계적으로 적용하면서 음주운전을 사실상 방기하는 게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윤창호법에 따라 음주운전으로 사람을 숨지게 하면 무기 또는 3년 이상의 징역형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대법원 양형위원회가 권고한 기본 형량은 2년 이상∼5년 이하에 불과하다. 그나마 가중처벌할 수 있는 요인이 있을 때, 양형기준은 징역 4년 이상∼8년 이하다. 쩡이린 사건의 경우, ㄱ씨가 과거 음주운전으로 2차례 처벌받고도 다시 음주운전을 한 점 등이 특별양형인자 가중요소로 반영돼, 권고형의 최고형인 징역 8년이 선고된 것이다. 숨진 쩡이린의 친구들이 선고 뒤 기자들을 만나 “검찰 구형량보단 무겁지만, 국내법상 무기징역까지 가능한데도 징역 8년을 선고한 것은 미흡하다”고 지적한 이유다.

비슷한 사례는 또 있다. 서울서부지법 형사11단독 권경선 판사는 지난 1월12일 위험운전치사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ㄴ씨에게 징역 8년을 선고했다. ㄴ씨는 지난해 9월6일 오후 3시34분께 서울 서대문구의 한 편도 1차로 도로에서 혈중알코올농도 0.144%의 만취 상태로 운전하다가 가장자리에 주차된 오토바이와 가로등을 들이받았다. 이 사고로 패스트푸드점에 햄버거를 사러 간 어머니를 코로나19 탓에 매장 밖에서 기다리던 6살 남자아이가 쓰러지던 가로등에 머리를 부딪쳐 숨졌다. 당시 9살이던 형과 어머니는 아이의 사고를 직접 목격했다. 사건 당일 ㄴ씨는 조기 축구를 마치고 회원들과 술을 마신 뒤 운전대를 잡은 것으로 드러났다.

숨진 아이의 어머니는 지난해 10월6일 청와대 누리집 국민청원 게시판에 ‘가해자의 강력한 처벌을 청원합니다’라는 글을 올렸다. 그는 이 글에서 “‘윤창호법’의 최고형벌이 무기징역까지 있음에도, 아직 5년 이상 판결이 없다고 한다. 도대체 무기징역은 얼마나 술을 마시고,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어야 하느냐”고 비통해했다. 이 청원 글에는 15만여명이 동참했다. 그러나 ㄴ씨도 권고형의 최고형인 징역 8년을 선고받았다.

부산에서도 유사한 판결이 있었다. ㄷ씨는 2019년 11월16일 오전 11시20분께 부산 해운대구의 한 아파트 앞 교차로에서 음주 운전하다가 반대편 차로를 넘어 횡단보도를 건너려고 신호를 기다리던 보행자 4명을 들이받았다. 이 사고로 60대 여성은 현장에서 숨졌다. 조사 결과 ㄷ씨는 사고 전날 저녁부터 당일 새벽까지 소주를 3병이나 마신 뒤 혈중알코올농도 0.195%의 만취 상태로 운전대를 잡은 것으로 드러났다.

이에 부산지법 동부지원 형사5단독 박성준 판사는 “아직 피해자 쪽으로부터 용서를 받지 못한 ㄷ씨에 대한 응보의 차원에서 죄책에 상응하는 엄중한 처벌을 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면서도 “사회적 비난이 살인죄와 비견될 정도에 이르기는 하나 살인죄는 고의범죄인 반면 위험운전 치사상죄는 과실범죄로 성격을 달리하고 법정형도 살인죄보다는 낮게 규정돼 있는 점 등은 고려돼야 한다”며 징역 8년을 선고했다. 특히, ㄴ씨와 ㄷ씨는 자동차 종합보험에 가입돼 있다는 점 등이 일반양형인자 가운데 감경요소로 작용하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법원의 선고 관행을 바로잡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윤혜성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위험운전치사죄는 살인죄에 준하면서도 과실로 사람을 치어 죽였다는 점에서 살인죄보다는 법정형이 낮은 것은 맞다”면서도 “법원이 권고형의 최고형을 선고하는 등의 관행을 고치지 않으면, 음주운전을 막기 위한 법정형을 강화하더라도 법 시행 효과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고 짚었다. 그는 이어 “보험 가입 등을 감경요소로 고려하는 교통사고처리 특례법 등을 폐지하고, 특정범죄가중법 법정형 상향 취지에 맞게 음주운전에 대한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조윤영 기자 jyy@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사회 많이 보는 기사

[3월27일 뉴스뷰리핑] 여야 판세 전망, ‘국민의힘 위기론’ 어느 정도인가? 1.

[3월27일 뉴스뷰리핑] 여야 판세 전망, ‘국민의힘 위기론’ 어느 정도인가?

[단독] ‘윤석열 검증보도’ 수사 검찰, 기자 휴대전화 ‘통째 촬영’ 논란 2.

[단독] ‘윤석열 검증보도’ 수사 검찰, 기자 휴대전화 ‘통째 촬영’ 논란

검찰의 불법 자백? ‘윤석열 검증’ 압수폰 촬영본 “삭제하겠다” 3.

검찰의 불법 자백? ‘윤석열 검증’ 압수폰 촬영본 “삭제하겠다”

‘선 넘는’ 선방위…사법농단·이태원 특별법 ‘선거방송’으로 징계 4.

‘선 넘는’ 선방위…사법농단·이태원 특별법 ‘선거방송’으로 징계

입 닫은 이종섭, 질문하는 취재진 쳐다도 안 본 채 회의장으로 5.

입 닫은 이종섭, 질문하는 취재진 쳐다도 안 본 채 회의장으로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