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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리얼돌 체험방…” 간판을 읽는 아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등록 2021-06-11 20:45수정 2021-06-12 14:19

[토요판] 친절한 기자들
지난 7일 경기 의정부시에 있는 한 리얼돌 체험방의 간판이 철거되고 있다. 김현규 청소년위해업소반대 비대위원장 제공
지난 7일 경기 의정부시에 있는 한 리얼돌 체험방의 간판이 철거되고 있다. 김현규 청소년위해업소반대 비대위원장 제공

“의정부시에 리얼돌 체험방 영업을 중단시켜주세요!”

지난달 31일 청와대 국민청원에 올라온 한 청원의 제목입니다. 경기도 의정부시 한 상업지구 한복판에서 24시간 운영되는 무인 리얼돌 체험방이 ‘영업 중’이라는 내용이었습니다. 리얼돌 체험방은 사람과 크기가 비슷하게 제작된 실리콘 인형인 리얼돌을 두고 유사 성행위를 할 수 있는 업소입니다. 청원인은 인근에 아파트단지와 학교도 있는데 이제 막 한글을 깨친 아이가 간판을 보다가 리얼돌 체험방이란 단어를 읽어야겠느냐는 하소연을 했습니다. ‘정말 아이들이 많이 다니는 곳일까.’ 반신반의하며 지난 6일 의정부로 향했습니다.

안녕하세요. 사회부 사건팀의 이우연입니다. 사회부는 이름 그대로 어떤 사회현상이든 취재하는 부서입니다. 누군가에게 낯선 사회 변화를 빠르게 독자들께 잘 정리해 전달해야 하죠.

리얼돌을 처음 본 건 2019년 국회 국정감사에서였습니다. 이용주 당시 무소속 의원이 자기 옆에 리얼돌을 앉히고 산업적으로 활용해야 한다는 취지의 주장을 폈죠. 당시 국감장에 있던 한 보좌진은 “남성 보좌관이 리얼돌을 어깨에 짐짝처럼 거꾸로 둘러메고 의원 옆으로 옮기는데, 리얼돌이 입은 옷이 다 뒤집혀 있었다. 인형이지만 사람과 너무 비슷하게 생겨 그 모습이 충격적으로 다가왔다”고 말했습니다. 리얼돌을 그저 인형으로 볼 수만은 없을 듯싶습니다. 130~160㎝ 정도 되는 키에 관절이 움직입니다. 심지어 성기와 항문까지 만들어져 있고, 여성 연예인의 얼굴을 본뜬 리얼돌도 제작됩니다. 현실 속 여성을 성적으로 대상화한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그런데도 대법원은 2019년 리얼돌 수입금지 처분이 부당하다는 취지의 판결로 수입과 판매 모두 합법화했습니다. 다만 관세청은 대법원 판결에서 수입을 허용한 해당 개별 제품 외에는 리얼돌 통관 신청을 받아들이지 않는 상태입니다. 대신 국내에 리얼돌 제작업체가 생기면서 신산업으로 자리잡는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리얼돌 체험방이 생겨나기 시작한 것도 최근 일입니다. 무엇보다 체험방은 자유업종인 성인용품 판매점으로 분류돼 허가 없이 신고만으로 운영이 가능합니다. 학교 경계로부터 200m 이내에만 운영하지 않으면 제재를 받지 않고요. 전국 어디에 체험방이 있는지는 쉽게 알아낼 수 있습니다. 인터넷 검색창을 한번만 거치면 최근 세를 확장하고 있는 한 리얼돌 체험방 프랜차이즈 업체의 누리집에 접속할 수 있습니다. 성인 인증도 필요 없습니다. 리얼돌 관련 정보를 공유하는 여러 인터넷 카페에서는 체험방 이용 후기와 창업 정보를 볼 수 있습니다. “아가씨 2명 입고됐다”며 새로운 리얼돌이 들어왔음을 알리는 광고글, 체험방에서 옷을 입지 않은 채로 기괴한 자세를 하고 있거나 기구에 옷처럼 매달려 있는 리얼돌의 사진까지. 보는 것이 힘들어 인터넷 창을 잠시 끄기도 했습니다.

다시 의정부로 돌아가 보죠. 현장 모습은 예상보다 더욱 황당했습니다. 상업지구에 들어서자마자 16m 크기의 ‘리얼돌 체험방 24’라는 간판이 한눈에 들어왔고요, 바로 맞은편 건물 두 곳에 있는 키즈카페와 스터디카페에서도 해당 간판이 잘 보였습니다. 인근에 주택가와 학교, 유치원이 있어 아동과 청소년이 정말 많이 오가는 곳이었고요. 지하 1층 주차장에서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던 도중, 유치원생으로 보이는 아이가 승강기 옆에 쓰인 입점업체 가운데 ‘리얼돌 체험방’이라는 글자를 소리내 읽었습니다. 앞서 소개했던 청와대 청원의 우려가 현실로 다가왔습니다. 아이들 역시 인터넷에 ‘리얼돌’을 치면 제가 봤던 게시글들을 그대로 볼 수 있을 것입니다.

해당 업소는 〈한겨레〉 보도가 나간 지 하루 만인 지난 7일 영업을 포기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전날 의정부를 떠나며 ‘밤에도 반짝여서 참 잘 보이네’라고 생각한 간판도 떼어졌습니다. 그러나 리얼돌 체험방의 창업을 문의하는 글은 오늘도 인터넷 공간에 올라오고 있습니다. 최근 리얼돌 체험방 프랜차이즈에서는 코로나19 국면이 길어지면서 영업이 어려워진 유흥업소를 상대로 리얼돌 체험방으로 재창업하라고 권유한다고 합니다.

논란이 된 의정부 리얼돌 체험방 역시 이전에는 마사지 업소였다가 불법 유사 성행위 영업이 적발돼 두 차례 영업을 중단한 뒤, 리얼돌 체험방으로 업종을 변경했다고 하는군요. 의정부시의 경우, 인근 상인과 시민의 공론화로 폐업했지만 여전히 체험방은 오피스텔과 주택가 상가 곳곳을 파고들고 있습니다. 경찰청은 여성가족부, 지방자치단체와 합동으로 다음달까지 체험방 단속을 하기로 했는데요, 체험방 자체가 불법은 아니어서 온·오프라인 불법 광고와 위락시설로 용도 미변경 등 다른 불법 행위를 적발하는 식으로 우회단속하기로 했습니다. 규제 공백을 막기 위해 좀 더 구체적인 규정 마련이 필요한 때입니다. 적어도 아이들이 다니는 곳에서 요란스럽게 운영할 만한 곳은 아니지 않나요.

이우연 기자 aza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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