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사회 사회일반

헤겔이 하이힐을 신어야 했다면 ‘철학자의 길’은 탄생했을까

등록 2021-06-12 08:44수정 2021-06-12 18:05

[토요판] 이유리의 그림 속 권력
⑨‘걷기’조차 제한당한 여성들
핀투리키오, <페넬로페와 구혼자들>, 1509년께, 프레스코(벽에서 떼어내어 캔버스에 붙임), 영국 내셔널갤러리.
핀투리키오, <페넬로페와 구혼자들>, 1509년께, 프레스코(벽에서 떼어내어 캔버스에 붙임), 영국 내셔널갤러리.

2019년에 독일 하이델베르크로 여행을 갔다. 그곳의 대표적 관광지는 헤겔이 걸었다던 ‘철학자의 길’. 어렵게 온 김에 철학자의 길도 경험하고 싶어, 지도를 따라 걷기 시작했다. 그런데 막상 길에 들어서자 코스가 예상과 너무 달랐다. 거의 작은 산을 오르는 하이킹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철학자의 길은 단출한 옷에 편한 신발을 신은 사람만 환영하는 곳이었다. 경사진 길을 낑낑대며 걷다가 자연스레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과연 헤겔이 하이힐을 신어야 하는 여자였다면, 이 길이 탄생할 수 있었을까.’

하이델베르크뿐 아니라 독일 쾨니히스베르크(현재 러시아 칼리닌그라드), 덴마크 코펜하겐, 일본 교토에도 철학자의 길이 있다. 철학자들은 길을 걸으면서 사색했고 그 과정에서 머릿속에 부유하는 생각을 정돈할 수 있었다. 비단 철학자뿐이랴. 평범한 우리들도 종종 거리를 걸으며 활기를 얻고 영감을 수집하곤 한다. 그런 의미에서 ‘철학자의 길’이라는 명칭은 ‘걷기’에 대한 예찬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옛 여성들은 이 걷기의 혜택을 제대로 누릴 수 없었다. 철학자의 길이 탄생하던 시절 여성들은 폭이 좁고 굽 높은 구두를 신어야 했다. 그런 조건에서 남성처럼 발길 닿는 대로 걸으며 사색하고, 활력을 얻을 수는 없었으리라. 물론, 하이힐 탓만은 아니었다. <걷기의 인문학>의 작가 리베카 솔닛은 페미니즘을 처음 생각한 계기로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만큼 맘껏 걷고 싶은데, 여성인 자신은 그러기 어렵다는 걸 느꼈던 때”라고 언급했다. 그렇다면 여자의 걷기를 방해하는 것은 또 무엇이 있었을까.

거리, 남성들만의 공간

김수영 시인은 시 ‘거대한 뿌리’에서 이렇게 읊었다. “그녀는 인경전의 종소리가 울리면 장안의/ 남자들이 모조리 사라지고 갑자기 부녀자의 세계로/ 화하는 극적인 서울을 보았다 이 아름다운 시간에는/ 남자로서 거리를 무단통행할 수 있는 것은 교군꾼,/ 내시, 외국인의 종놈, 관리들뿐이었다 그리고/ 심야에는 여자는 사라지고 남자가 다시 오입을 하러/ 활보하고 나선다고 이런 기이한 습관을 가진 나라를/ 세계 다른 곳에서는 본 일이 없다고”.

이 시에 등장하는 ‘그녀’는 1894~1897년에 조선을 방문한 영국인 이사벨라 버드 비숍(1831~1904)이다. 비숍은 1898년에 펴낸 <한국과 그 이웃 나라들>에서 조선의 이 ‘기이한 습관’에 대해 다음과 같이 증언했다. “저녁 8시경이 되면 대종(大鐘)이 울리는데 이것은 남자들에게 귀가할 시간이라는 것을 알려주는 신호이며 여자들에게는 외출하여 산책을 즐기며 친지들을 방문할 수 있는 시간이라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다. (중략) 자정이 되면 다시 종이 울리는데 이때면 부인은 집으로 돌아가야 하고 남자들은 다시 외출하는 자유를 갖게 된다.” 그리고 비숍은 더 놀라운 사실이 남아 있다는 듯, 마지막에 이렇게 덧붙인다. “한 양반가의 귀부인은 아직 한 번도 한낮의 서울 거리를 구경하지 못했다고 나에게 말하였다.”

김수영과 비숍의 글에 따르면 조선 말 존재했던 한밤중 ‘부녀자의 세계’는 잠깐이나마 여성들이 집 밖에 나올 수 있었던, 숨통 틔워주기 풍습이었던 셈이다. 하지만 마냥 자유로웠던 것은 아니었다. 어둠의 힘을 빌려 겨우 거리로 나올 수 있었지만, 그마저도 장옷을 뒤집어써야 하는 등 여성들은 거리에서 철저하게 ‘보이지 않는 존재’가 되어야 했다. 애초부터 길거리는 여성이 침입하면 안 되는, 남성들만의 공간이었기 때문이다.

온 세계 누빈 오디세우스 부재에
‘빈집’ 몰려든 남자들 물리치고
현명함 칭송받은 아내 페넬로페
‘자기 자리’인 집 벗어났다면
성매매 여성으로 인식됐을 수도

고대 그리스 시인 호메로스의 대서사시 <오디세이아>에서도 오디세우스는 온 세계를 자신의 안방처럼 돌아다닌다. 그가 자의 반 타의 반 여성들의 유혹에 빠지고 자식까지 낳으며 영웅적 모험을 하는 동안 아내 페넬로페는 꿋꿋하게 집에서 남편을 기다릴 뿐이다. 이탈리아의 화가 핀투리키오(1454~1513)의 그림 <페넬로페와 구혼자들>을 보자. 그림 속 페넬로페는 남편 없는 집에서 베틀로 옷을 짜고 있다. 그런데 오른쪽을 보면 외간 남자들이 다짜고짜 집 안으로 들이닥치고 있다. 이 집은 다른 남자들 입장에서는 빈집과 마찬가지다. 집주인은 오디세우스이지 페넬로페가 아니기 때문이다. 오디세우스가 먼 여행을 떠나자, 이들은 빈집과 그 집의 가구나 다름없는 아내 페넬로페를 차지하기 위해 몰려든 것이다. 하지만 페넬로페는 “아버지에게 바칠 옷을 완성하면 결혼하겠다”는 핑계를 대고는, 낮에는 옷을 만들고 밤에는 그 옷을 다시 풀어버리는 식으로 시간을 끌며 청혼을 물리쳤다.

그런데 이런 지략도 한두번이어야 통하는 법. 그림 속 구혼자들은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보인다. 그러나 표정에 한 치 미동도 없는 그녀는 곧 자신의 처신에 대한 보상을 받을 것이다. 왜냐하면 창밖에 오디세우스를 태운 배가 도착하고 있기 때문이다. 20년 만에 돌아온 오디세우스는 마치 어제 떠난 듯 모든 게 제자리에 있는 집과 아내를 되찾는다. 이 이야기를 통해 호메로스는 페넬로페의 현명함을 칭송한다. 페넬로페는 자신의 자리가 어디인지 잘 알았고, 그 규칙을 지켰다는 것이다. 그러나 만약 페넬로페가 20년이라는 세월에 지쳐 자신의 자리인 집을 이탈했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여성의 몸까지 변형시킨 ‘제자리’

인류학자 메리 더글러스는 저서 <순수와 위험>에서 더러움을 자리(place)에 대한 관념과 연결시켰다. 더럽다는 것은 제자리에 있지 않은 것을 뜻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신발은 그 자체로는 더럽지 않지만 식탁 위에 두기에는 더럽다. 마찬가지로 여자가 남성을 위한 공간에 들어가는 것은 더러운 것이기에, 거리에 보이는 여자는 ‘더러운 창녀’였다. 이 같은 관념은 단어에도 그 흔적을 남겼다. 거리의 남자(man of the streets)는 거리의 규칙을 따르는 남자일 뿐이지만, 거리의 여자(woman of the streets)는 성매매 여성(street walker)을 뜻한다. 만약 페넬로페가 집 밖에 나와 오디세우스처럼 돌아다녔으면 성매매 여성으로 인식되지 않았을까. 이 같은 사회의 시선은 여성들이 집밖에서 마음껏 거닐 수 없게 한 족쇄였다.

여성을 향해 집 안에서 인형처럼 ‘가만히 있으라’는 사회의 명령은 여성의 복장 형태로 나타나기도 했다. 남성복을 입었던 프랑스의 소설가 조르주 상드(1804~1876)는 회고록에서 처음 남장을 했을 때 느낀 해방감을 이렇게 표현했다. “작은 뒤축에 쇠를 박아서 발을 보도 위에 단단하게 디딜 수 있었다. 나는 파리를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종횡무진 돌아다녔다. 세계 일주를 떠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내가 입은 옷도 똑같이 튼튼했다. 나는 날씨에 상관없이 외출했고, 시간에 상관없이 귀가했다.”

그렇다면 남장 전의 상드는 어땠을까. “내 다리는 튼튼하고 베리 지방에서 험한 길 위를 두꺼운 나막신을 신고 걸으며 단련된 발도 믿음직했다. 그런데 파리의 보도 위에서는 내 발이 얼음 위의 배 같았다. 섬세한 신발은 이틀 만에 망가졌고 덧신을 신자니 걷기가 불편한 데다 나는 치맛자락을 들어 올리며 걷는 것에 익숙하지 않았다. 돌아다니다 보면 진흙투성이가 되고 지쳐서 콧물이 흐르고 신발과 옷, 작은 벨벳 모자에까지 시궁창 물이 튀었고 옷이 무시무시한 속도로 엉망진창이 되었다.” 보통 여성의 남장은 전복적인 의미를 띠는 사회적 행위로 그려지곤 하지만 상드는 자신이 남장을 선호하는 이유를 실용성으로 설명했던 것이다.

동시대 중국의 경우는 복장도 모자라 아예 신체를 변형시켜 여성의 바깥 이동을 막았다. 중국에는 여성의 발을 천으로 동여매고 작은 신발을 신겼던 전족 문화가 있었다. 4살이 된 여자아이는 엄지를 제외한 네 발가락을 발바닥 쪽으로 꺾어 붙여 꽁꽁 싸매야 했다. 이는 발의 정상적 발육을 억제했고 그 결과 천천히 발의 뼈가 구부러지며 기형이 되었다. 이 때문에 전족을 한 여성은 제대로 걸을 수 없었고 무릎으로 기어 다녔다. 여성에게 큰 고통을 안겨주는 이 악습은 왜 오랫동안 지속됐던 걸까. 여성을 교육할 목적으로 쓴 <여아경>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다. “어째서 발을 싸매는가? 활처럼 구부러진 모양이 보기 좋아서가 아니라 쉽게 출입하지 못하도록 수없이 싸매어 구속하려는 것이다.”

원나라 사람 이세진이 쓴 <랑환기>에도 “듣자하니 여자가 가볍게 행동하지 않도록 그 발을 싸매어 거주하는 규방 밖으로 벗어나지 못하게 한다. 나갈 일이 있어도 장막을 친 가마를 타야 하므로 발을 쓸 필요가 없다”라는 구절이 있다. 즉 전족은 여성들의 활동 범위를 엄격히 제한하고, 규방에 가두기 용이하다는 이유로 실시된 것이다.

스스로 자물쇠를 풀었지만…

이처럼 가부장제는 집요하게 ‘밖에 나다니는 여자는 창녀’라고 세뇌하며 갖은 방법으로 여성의 신체를 집 안에 매어놓으려 했다. 하지만 끊임없이 발목을 잡는 가부장제의 손길을 뿌리치고, 용감히 집 밖으로 나간 여성들은 늘 있었다. 미국의 화가 메리 커샛(1844~1926)도 그중 하나였다. 11살 때 커샛은 파리국제박람회에서 본 그림에 깊은 감동을 받아 일찌감치 화가가 되리라 마음먹었다. 하지만 가부장적인 아버지의 거센 반대에 부딪쳤다.

커샛은 집 밖으로 걸어 나오기까지 험난했던 과정을 훗날 이렇게 회고했다. “여자아이의 첫 번째 의무는 예쁘게 행동하는 것이었고, 부모들은 자기 아이가 예쁘지 않은 행동을 하면 금방 알아차리곤 한다. 내 잘못은 아니었지만, 어쨌든 우리 아버지도 그런 느낌을 가지고 계셨을 것이다.”

“유럽 가느니 네가 죽는 게 낫다”
아버지 반대 무릅쓴 미국화가 커샛
마차 운전하는 여성 그림 통해서
삶 능숙하게 운전하는 자신 투영
지금 길거리 여성한테 편한 곳일까

아버지는 “멜로드라마에서 타락하거나 명예롭지 못한 결혼을 한 여자에게 쓰는 말”들을 써가며 “유럽에 혼자 가서 미술 공부를 하는 꼴을 보느니 차라리 네가 죽어버리는 게 낫겠다”라고 딸에게 화를 내곤 했다. 하지만 커샛은 “어쨌든, 나에게 프랑스를 달라”고 선언하며 1872년에 아버지의 반대를 뚫고 프랑스 파리에 정착했다. 또한 화가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공고히 하기 위해 비혼으로 살았다. 보통 여성의 행동반경을 제한하는 집안의 문지기 역할은 아버지와 남편이 맡는다. 커샛은 아버지를 거스름으로써, 또 비혼을 선택함으로써 스스로 자물쇠를 풀고 거리로 나온 것이다.

그랬던 그녀였기에, 19세기 후반 당시 프랑스에서 유일하게 여성이 운전하는 모습을 묘사한 그림 <마차를 모는 여인과 소녀>를 그릴 수 있었으리라. 지붕이 없는 2인용 마차 운전석에 여성이 앉아 있다. 마부는 이 여성에게 고삐를 양보하고 뒤로 돌아앉은 모습이다. 채찍을 들고 고삐를 팽팽하게 당긴 채 마차를 몰고 있는 이 여성은 메리 커샛의 언니 리디아. 무거운 모자를 쓰고, 하이힐을 신고, 폭 넓은 스커트 차림이긴 하지만 이 모든 방해를 뚫고 당당하게 운전에 몰두하고 있다.

커샛은 리디아에게 자신의 모습을 투영한 것 같다. 실제 커샛은 마차 운전에 능숙했을 뿐만 아니라, 당시 갓 개발된 자동차 운전에도 뛰어든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한편 커샛은 리디아 옆에서 팔걸이에 손을 댄 채 차분히 앞을 응시하는 소녀도 일부러 그려 넣었다. 아마 여성도 거리에 나와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다는 것을 후세대에게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은 아닐까. 그녀 자신이 인생의 운전대를 남성에게 넘겨주는 일 없이, 자신의 삶을 능숙하게 운전한 당사자였으니 말이다.

메리 커샛, &lt;마차를 모는 여인과 소녀&gt;, 1881년, 캔버스에 유채, 미국 필라델피아 미술관
메리 커샛, <마차를 모는 여인과 소녀>, 1881년, 캔버스에 유채, 미국 필라델피아 미술관

요즘 거리에는 커샛의 후예들이 많다. 그도 그럴 것이, 적어도 집 밖으로 나가지 못하도록 막는 제도적 장벽은 없다. 하지만 남성들만큼 여성들에게 길거리는 편안한 공간일까. 여성들이 남성만큼 한적한 둘레길을 안심하고 혼자 걸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여성들이 모임을 마친 다음 서로의 귀갓길을 염려하며 “집에 도착하면 문자 해”라고 인사하는 것을 알고 있는가. 운전하는 여성은 종종 남성들로부터 ‘김여사’, ‘솥뚜껑이나 운전하라’고 조롱받는다는 것을 들었는가.

거리를 걷는 여성들은 ‘캣콜링’을 당하기도 한다. 캣콜링은 남성이 길거리를 지나가는 불특정 여성을 향해 휘파람 소리를 내거나 성희롱적인 발언을 하는 행위를 뜻한다. 이 모든 게 거리가 여전히 남성이 주도하는 공간이며, 여성인 당신은 지금 ‘잘못된’ 장소에 있다는 가부장 사회의 신호인 셈이다.

인류학자 김현경은 책 <사람, 장소, 환대>에서 “‘된장녀’에 대한 비난과 조롱, 그리고 ‘개똥녀’를 비롯하여 공공장소에서 부적절한 행동을 한 여성들에게 가해지는 마녀사냥은 여성은 도로나 카페 혹은 지하철 같은 공공장소를 이용할 자격이 부족하다는 메시지를 일관되게 전달한다”라고 적었다. 김현경에 따르면 ‘사람’이 된다는 것은 ‘장소’를 갖는다는 것이고, 그 자리를 주는 행위가 바로 ‘환대’다. 과연 여성들은 거리에서 ‘환대’받고 있는가. 아니 그 전에 남성과 동등한 ‘사람’으로 대우받고 있는가.

▶ 이유리 작가. <화가의 출세작> <화가의 마지막 그림> 등 예술 분야의 책을 썼고, <한겨레> 토요판에 연재한 ‘이유리의 그림 속 여성’을 묶어 <캔버스를 찢고 나온 여자들>을 냈다. 이번엔 그림을 매개로 인간 사회에 작동하는 다양한 층위의 권력관계를 드러내고, 여기서 발생하는 부조리를 3주에 한번 다룬다.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사회 많이 보는 기사

퇴근길엔 버스 타세요…서울 시내버스 파업 11시간 만에 종료 1.

퇴근길엔 버스 타세요…서울 시내버스 파업 11시간 만에 종료

[3월27일 뉴스뷰리핑] 여야 판세 전망, ‘국민의힘 위기론’ 어느 정도인가? 2.

[3월27일 뉴스뷰리핑] 여야 판세 전망, ‘국민의힘 위기론’ 어느 정도인가?

입 닫은 이종섭, 질문하는 취재진 쳐다도 안 본 채 회의장으로 3.

입 닫은 이종섭, 질문하는 취재진 쳐다도 안 본 채 회의장으로

[단독] ‘윤석열 검증보도’ 수사 검찰, 기자 휴대전화 ‘통째 촬영’ 논란 4.

[단독] ‘윤석열 검증보도’ 수사 검찰, 기자 휴대전화 ‘통째 촬영’ 논란

정류장 와서야 옆사람이 “버스 파업이래요”…서울시민 대혼란 5.

정류장 와서야 옆사람이 “버스 파업이래요”…서울시민 대혼란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