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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너무한다 한달 용돈 5만원, 10만원도 부족하긴 마찬가지

등록 2021-06-12 08:45수정 2021-06-13 09:43

[토요판] 마흔에 은퇴
⑤ 지출 줄이기

충동구매 줄이려면 백화점 대신
실내 산책 코스 개발해야 할까

피부과, 화장품 비용 아끼려
돈 들지 않는 관리법 고심
비용 줄이려 미용실 수소문
볼륨매직 대신 웨이브 파마

돈을 줄이고 시간을 들이는 일
과정 즐긴다면 생각보다 즐거워
이제는 혼자 시간을 보낼 때면 카페 대신 동네 공원을 찾는다. 김다현 제공
이제는 혼자 시간을 보낼 때면 카페 대신 동네 공원을 찾는다. 김다현 제공

은퇴 이후 우리는 지금보다 가난해진다. 매달 들어오는 월급이 사라지면, 회사에 다닐 때처럼 소비를 유지할 수는 없다. 우리는 은퇴 전 미리 지출을 줄이기 위한 준비를 하기로 했다.

5만원의 논쟁, 용돈 정하기

우리가 용돈과 생활비를 구분하는 기준이 있다. 둘이 같이 쓰는 돈은 생활비, 혼자 있을 때 쓰면 용돈이다. 처음 은퇴 생활비를 계획할 때 용돈은 5만원이었다. 난 은퇴 생활비를 연간 3000만원으로 맞추고 싶었고, 한달 250만원의 생활비는 빡빡했다. 필수로 나갈 돈을 정리하고 보니 250만원에서 딱 10만원이 남았다. 마지막으로 남은 항목이 용돈이라, 목표 예산에 그냥 맞춘 것이다.

“한달에 5만원으로 어떻게 살아!”

“회사를 안 가니 충분하지 않을까?”

은퇴 생활비를 정한 이후 남편은 꾸준히 문제제기를 했다.

“용돈을 올리지는 못해도 줄이는 건 너무하지 않아?”

“생활비로 하는 게 많으니 5만원으로도 괜찮을 거야.”

이렇게 말은 했지만, 내가 생각해도 5만원은 너무한다 싶었다. 회사를 가지 않으니 대부분 같이 쓰는 생활비로 해결되겠지만, 가끔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고, 친구도 만나려면 용돈 5만원으로는 부족하다. 하지만 용돈을 올리려면 생활비 예산을 다시 조정해야만 한다. 한달 용돈 10만원씩만 추가해도 10년이면 2400만원, 50년이면 1억2천만원이다. 앞으로 우리에게 남은 시간은 길다. 얼핏 보면 큰 비용이 아닐지 몰라도 거기다 시간을 곱하면 꽤 큰 금액이 된다. 용돈 예산 조정에 신중해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250만원의 한달 생활비 예산에는 실손보험 비용 20만원이 포함되어 있었다. 하지만 이후 직장에서 가입한 단체 실손보험을 개인 실손보험으로 전환할 수 있는 제도가 생겼다. 확인해보니 둘 다 가입해도 5만원을 넘지 않았다. 여윳돈 15만원이 생겼다.

“실손보험 비용이 생각보다 적게 드니 용돈 10만원으로 올려줄게.”

난 생색내듯 말했지만 남편은 여전히 만족하지 않았다. 그때 비자금으로 나누어 가진 돈이 떠올랐다.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다. 매달 계획에 맞게 대출을 상환하고 저축을 했다. 저축 통장은 생활비 관리 담당인 내 이름으로 되어 있었다. 내 이름으로 된 통장 잔고가 늘어나는 것을 볼 때면 괜히 뿌듯했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이 우울해하며 말했다.

“혼자 살 때보다 더 가난하게 사는 것 같아.”

“대신 자산이 늘었잖아.”

“내 돈은 없는걸. 소용없어. 이 지긋지긋한 가난.”

남편은 결혼 전까지 월급을 통장 하나로 관리했다. 적금, 펀드 등으로 돈을 모으는 것에는 관심이 없었고, 통장에 돈이 모이면 뭘 살지부터 고민했다 했다. 그러던 그가 생활비와 대출로 월급 대부분을 나에게 보내고 있으니 텅 빈 통장을 보며 우울해졌던 것이다. 난 내 이름으로 쌓이는 돈을 보며 위안할 수 있었지만, 남편은 아니었다. 안쓰러운 생각이 들어 말했다.

“그럼 각자 비자금을 좀 가질까?”

“좋다!!”

그렇게 모은 돈의 일부를 남편과 나눠 가졌다. 남편과 나는 그 돈으로 주식을 시작했다.

“얼마나 벌었어?”

“알려고 하지 마. 이 돈은 온전히 나를 위해 쓸 거야. 흐흐.”

“그냥 궁금해서 그러지.”

난 주식으로 돈을 벌 때마다 자랑했지만, 남편은 철저히 비밀로 했다. 서로가 아는 그 비밀에 남편은 숨통이 조금 트이는 것 같아 보였다. 그렇게 번 돈으로 부족한 용돈을 채우면 될 것 같았다.

“부족한 돈은, 나눠 가진 비자금을 투자해서 각자 알아서 벌자.”

그 이후 우리는 돈에 관해 철저해졌다. 생활비는 주로 카드를 쓰고, 현금을 찾아두지는 않았다. 남편과 함께 나들이를 하다 보면 간혹 현금이 필요한 순간이 있다. 그럴 때면 각자 가지고 있던 현금을 썼다.

“내가 3천원 썼으니까, 생활비에서 이체해줘.”

예전에는 만원 미만까지 챙겨서 달라고 하지는 않았는데, 은퇴 용돈을 정한 이후 달라졌다.

제주도 올레 1코스에 있는 목화휴게소. 이 날은 내 용돈으로 샀다. 사진 김다현
제주도 올레 1코스에 있는 목화휴게소. 이 날은 내 용돈으로 샀다. 사진 김다현

남편은 수시로 용돈 인상을 주장했다. 예상외의 소득이 생길 때면, 바로 “그럼 용돈 올려주나?”부터 물어본다. 은퇴 자산이 얼마가 된다고 해도 용돈은 올려주지 않을 생각이다. 남편이 용돈으로 담배를 사기 때문인데, 돈이 부족하면 담배를 줄이거나 끊지 않을까 하는 기대 때문이다. 예상외의 소득이 생기면 용돈 대신 생활비를 올리겠다 했다.

한달 용돈 10만원이 부족하긴 나도 마찬가지다. 그냥 주식 공부를 더 열심히 하기로 한다. 주식 투자를 시작한 것은 우리에게 여러모로 도움이 되었다. 아침마다 경제 기사를 챙겨 보았다. 수시로 주식 차트를 들여다보며 흐름을 공부했다. 금융에 무지하던 우리가 돈을 버는 다양한 방법에 대해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소비 습관을 바꿔야 했다

우리의 생활비 지출은 편차가 심했다. 그만큼 충동구매가 많다는 거다. 그 충동구매는 주로 겨울에 이루어진다. 겨울의 날씨는 매서워서 산책을 좋아하는 우리는 가까운 백화점 구경으로 산책을 대신했던 것이다. 갖고 싶은 물건이 눈에 보이면 유혹을 참기 어려웠다. 은퇴 후에는 백화점이 없고, 겨울도 따뜻한 동네로 이사를 가야 하나. 겨울 실내 산책 코스를 고민 좀 해봐야 할 것 같다.

남편의 쇼핑은 결혼 전으로 끝났다. 연애 시절에는 할인도 하지 않는 고가의 물건을 가격표도 보지 않고 사던 남자인데, 지금은 다르다. 물건을 사는 것에 관심이 없어졌다. 물건을 사는 눈이 좀 더 까다로워졌는지도 모른다. 쓰던 물건이 낡아서 어쩔 수 없이 새로 사야 할 때가 오면 그는 까다롭게 골라 꽤 비싼 물건을 샀다. 남편이 고른 물건은 비싼 만큼 튼튼했고, 질리지 않았다. 남편이 산 물건 중 쓰지 않는 것은 없었다. 남편은 은퇴를 위해 준비된 남자였다.

가계부를 들여다보면, 나를 위해 산 물건이 많았다. 은퇴를 위해서는 내 소비 습관을 바꿔야 했다.

난 주기적으로 피부과를 다녔다. 피부에 꽤 신경을 쓰는 편이지만 시간을 들여서 피부를 관리할 시간은 없었다. 피부과는 한번만 가도 내 피부의 변화를 느낄 수 있었다. 공들여 피부를 관리하는 것보다 훨씬 효과적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은퇴 후에도 비싼 돈을 들여 피부과를 계속 찾을 수는 없다. 난 돈을 들이지 않고도 피부를 관리하는 방법을 찾았다. 어느 날 엘이디(LED) 마스크 광고를 보았다. 엘이디 불빛으로 피부톤을 개선해주는 제품이었는데 ‘9분’만 쓰고 있으면 된다는 말에 호기심이 생겼다.

“나 엘이디 마스크 살까? 9분만 쓰고 있으면 되네.”

“플라시보 효과 같은 거 아니야?”

“아냐, 광고글 아닌 걸로 찾아봤어.”

“그럼 사든가.”

“이거 사면, 나 더 이상 피부과 안 갈 거야!”

나를 위해 비싼 물건을 산다는 것이 괜히 미안하여, 남편에게도 마스크를 씌웠다. 내가 마스크를 하고 난 뒤 남편에게 넘겨서 반강제로 하게 했다. 날마다 9분씩 남편과 함께 마스크를 썼다. 생각보다 효과는 있었다. 친정에 갔을 때다. 엄마가 남편을 보더니 “어머 피부가 환해졌네”라고 말했다. 그 뒤로 내가 시키지 않아도, 남편은 나를 따라 마스크를 썼다. 내 피부를 보고 달라졌다고 하는 사람은 없었지만, 그건 ‘난 꾸준히 관리했기 때문일 거야’라고 생각했다. 이제 피부과 비용을 아낄 수 있다!

화장품도 좋은 걸 썼다. 화장품을 고르는 것도 시간을 들여야 하는 일이니 주변에서 좋다고 말하는 유명한 브랜드의 것을 썼다. 그래도 화장을 잘하고 다니지 않으니, 그 비용이 많이 들지는 않을 거라 생각했는데 가계부를 보면 아니었다. 별생각 없이 샀던 기초화장품 비용은 꽤 많이 들었다. 화장품 비용도 줄여야 한다. 화장품 평가 앱에서 유명한 브랜드의 화장품이 아니라 후기가 좋은 저렴한 화장품으로 신중히 골랐다. 그리고 화장품 다이어트도 시작했다. 스킨, 에센스, 로션, 크림 이게 다 필요할까? 로션과 크림은 비슷해서 둘 중에 하나만 바르면 된다고 했다. 스킨과 에센스도 마찬가지였다. 기초화장품은 스킨과 크림만 쓰기로 했다. 그렇게 하나둘 습관을 바꿨다. 습관을 바꿔도 내 피부에는 큰 변화가 없었다.

술값을 아끼자며 인삼주를 담그기 시작했다. 매년 초, 우리는 인삼주를 담근다. 김다현 제공
술값을 아끼자며 인삼주를 담그기 시작했다. 매년 초, 우리는 인삼주를 담근다. 김다현 제공

내 머리로 사는 것도 쉽지 않아

난 약간 곱슬거리는 머리다. 웨이브 진 머리가 아니라 곱슬거려서 부스스해 보이는 머리다. 대학 때부터 난 꾸준히 미용실에서 볼륨매직을 했다. 내 원래 머리로 살아본 지가 오래되었다. 학생 때는 무조건 저렴한 미용실을 찾아다녔지만 이제는 머릿결도 많이 상했고, 스타일이 마음에 안 드는 것도 스트레스가 되다 보니 회사 가까운 곳에 있는 괜찮은 미용실을 다녔다. 헤어스타일에 변화도 자주 주는 편이라서 미용실에 들어가는 비용이 꽤 되었다. 저렴한 미용실과 비싼 미용실의 가격차는 크다. 이 비용을 아껴야 했다. 그래서 미용실 예약 서비스에서 비싸지 않지만 평이 좋은 동네 미용실을 찾아다녔다. 몇번의 실패 끝에 정착할 미용실을 찾을 수 있었다.

미용실 가는 횟수를 줄이려면 이제 부스스하게 곱슬거리는 내 머리로 살아야 한다. 하지만 볼륨 매직한 머리가 자라서 경계가 지는 것을 보면 맘이 쓰여서 결국 참지 못하고 미용실로 달려갔다. 어디서 웨이브 파마를 하면 새로 자란 머리와 경계가 지지 않고 자연스럽게 기를 수 있다는 말을 들었다. 미용실을 자주 가지 않기 위해서, 미용실에 가서 웨이브 파마를 했다. 이제 내 머리카락이 눈썹 정도까지 자랐다. 완전한 내 머리로 살기 위해서는 좀 더 시간이 필요하다.

은퇴 후에는 꼭 필요한 일에만 돈을 아껴 써야 한다. 하지만 하고 싶은 일들을 억눌러가면서 오랫동안 살아가기란 어려운 일이다. 나는 욕구를 참는 것 대신 비용을 줄이는 방식으로 소비 습관을 바꾸기로 했다. 그리고 은퇴 전, 내가 감당할 수 있을지를 미리 연습하기 시작했다. 피부 관리 습관과 헤어스타일을 바꾸는 것 외에도 집에서 인삼주를 담그고, 빵을 굽고, 커피를 내리면서 돈을 줄이는 연습을 하고 있다. 하고 싶다는 욕구를 돈으로 채워서 해결하기보다는 나의 시간을 들여서 채워가고 있다. 돈을 줄이고 시간을 들여서 하는 일, 결과보다는 과정을 즐기며 하는 일들은 힘들기보다는 즐거운 일이었다.

김다현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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