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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여성

‘교제폭력 처벌법’ 발의만 빗발…소 잃고 외양간도 안 고치는 국회

등록 2023-05-30 08:00수정 2023-05-30 09:20

과거 교제했던 피해자가 자신을 경찰에 신고했다는 이유로 살해한 혐의를 받고 있는 30대 남성(가운데) ㄱ(33)씨가 서울남부지법에서 진행되는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을 받기 위해 지난 28일 서울 금천경찰서를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과거 교제했던 피해자가 자신을 경찰에 신고했다는 이유로 살해한 혐의를 받고 있는 30대 남성(가운데) ㄱ(33)씨가 서울남부지법에서 진행되는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을 받기 위해 지난 28일 서울 금천경찰서를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과거 만났던 여성의 폭력 신고에 불만을 품은 30대 남성이 경찰 조사 직후 상대 여성을 보복 살해하는 사건이 발생하며, 사각지대에 놓인 ‘교제폭력’ 피해자 보호 문제가 다시 도마에 오르고 있다. 특히 교제폭력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국회에선 앞다퉈 관련 법안들이 발의됐지만, 대다수가 국회 상임위원회에서 제대로 논의되지 못한 채 임기 만료로 폐기된 것으로 드러났다. 친밀한 관계 안에서 발생하는 교제폭력이 일회성에 그치지 않고, 살인 등 강력범죄로 이어질 수 있는 만큼, ‘가해자 처벌 및 피해자 보호 사각지대’를 메울 수 있는 보완 입법이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 19대 이후 ‘교제폭력’ 관련법 10개 발의…6개는 논의도 못해보고 ‘폐기’

<한겨레>가 29일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을 확인해 보니, 19대 국회 때인 2016년 2월부터 이날까지 교제폭력을 처벌하고 피해자를 보호하는 내용을 담은 법률 제·개정안이 총 10개 발의됐던 것으로 나타났다. 연인 관계에서 발생한 교제폭력을 가정폭력 안에 포함시켜 폭넓게 규율하는 영국이나 미국 일부 주와 달리, 우리나라에선 ‘법률혼’이나 ‘사실혼’으로 구성되지 않은 ‘가족 밖 친밀한 관계’에서 발생하는 교제폭력은 가정폭력·아동학대·스토킹과 달리 접근금지나 가해자 구치소 유치 등 조기에 피해자를 보호하는 조치가 마련돼 있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 데 따른 것이다.

이런 교제폭력 피해의 사각지대를 메우기 위해 지난 7년 간 발의된 10개의 법안들은 크게 두 가지 부류로 추진돼왔다. 기존의 가정폭력 처벌법의 적용 범위를 교제폭력까지 확대하거나, ‘교제폭력 처벌법’이나 ‘교제폭력 피해자 보호법’ 등의 법안을 새로 만들어 교제폭력을 별도로 다루는 방식이다. 법안마다 다소 차이가 있지만, 교제폭력 가해자를 △피해자(그의 가족 포함) 주거지로부터 퇴거시키거나 △피해자 주거·학교 등으로부터 100m 이내 접근 금지 및 연락 금지 △경찰관서 유치장 또는 구치소 유치 등의 임시조치를 할 수 있는 조항을 뼈대로 하고 있다.

문제는, 해당 법안들이 제대로 논의조차 되지 못한 채 대부분 폐기됐다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 7년간 발의된 법안 10개 가운데, 6개는 19~20대 국회 임기가 만료되며 사장됐다. 특히 폐기된 법안 가운데 4개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에 회부된 이후 단 한차례 심의도 이뤄지지 않았다. 21대 국회 들어 발의된 4건의 법안 역시, 법사위와 여성가족위원회에 회부된 상태에서 멈춰 있다.

■ 전문가들 ‘교제폭력, 기존 가정폭력 처벌법에 추가’ 논의에 무게…다만 “기존 법도 고쳐야”

전문가들은 관련 입법 추진이 이뤄진다면, 국회 통과까지 시간이 오래 걸리는 제정법 추진보다 현행 법 개정에 무게를 싣는 분위기다. 송란희 한국여성의전화 상임대표는 “교제폭력과 가정폭력이 발생하는 원인(상대방에 대한 통제)과 결과(폭력 피해)가 크게 다르지 않다”며 “친밀한 관계에서 발생하는 폭력을 포괄하는 방향으로 입법이 이뤄진다면 폭력 피해가 발생한 관계를 연인 관계, 혼인 관계, 가족 관계 등으로 세부적으로 나눌 필요가 없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그는 “가정폭력 처벌법 전면 개정 없이 교제폭력을 이 법 규율 대상에 추가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가정폭력 피의자 기소율이 지난해 기준 10.2%에 불과하다. 현행법으로도, 가해자를 제대로 처벌하지 못하고 있는 만큼 현행법의 문제점부터 함께 고쳐가야 한다는 취지다.

허민숙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도 “제정안을 새로 만드는 것은 국회 통과까지 시간이 워낙 많이 걸린다”며 “입법 속도를 내기 위해서는 가정폭력 처벌법 보호 대상을 넓히는 것이 더 낫다”고 말했다. 그는 이 과정에서 “가정폭력 가해자에게 면죄부를 주고 있는 상담조건부 기소유예 제도(가해자가 가정폭력상담소에서 성실히 상담받는 것을 조건으로 기소유예 처분)와 반의사 불벌죄를 폐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허 조사관은 “지금처럼 법에 가정의 평화와 안정을 유지한다는 목적 조항이 유지된다면 연인 관계 회복 관점에서 법이 집행돼 피해자를 더 큰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고 덧붙였다.

■ 나흘간 집 근처 배회·현관문 비밀번호도 바꿨는데…‘스토킹’이 아니라고?

이번 ‘시흥동 살인 사건’에서 가해 남성은 지난 21일 사귀던 여성으로부터 이별통보를 받고도 나흘 동안 주변에 머물렀다. 범행 하루 전인 지난 25일엔 피해 여성에게 ‘너희 집 티브이(TV)를 부쉈다’, ‘집에 와서 대화하지 않으면 현관문 비밀번호를 바꾸겠다’고 메시지를 보냈다. 그는 실제로 현관문 비밀번호를 바꿨다. 또 범행 직전엔 피해자를 집 근처 피시(PC)방으로 불러 여성의 팔을 잡아당기는 등 ‘폭력’까지 행사했다. 하지만 경찰은 가해자의 행동을 ‘스토킹’으로 보지 않았다.

서혜진 변호사(더라이트하우스 법률사무소 대표)는 29일 “(이별을 통보한) 피해자에게 가해자가 문자를 보내고 실제로 피해자 집 현관문 비밀번호를 바꾼 행위는 피해자 주거의 물건을 훼손한 행위이고, 이는 스토킹 처벌법에서 정한 ‘스토킹 행위’ 유형 중 하나”라며 “피해자가 가해자의 폭행 때문에 무서워서 경찰에 신고한 사정을 모두 종합했을 때 스토킹으로 판단하고 응급조치를 하거나, 또는 (경찰청 훈령인 피해자 보호 및 지원에 관한 규칙에 근거해) 경찰이 직권으로 안전조치(신변보호)를 했어야 할 사안”이라고 말했다.

현장에서 스토킹 처벌법 적용이 적극적으로 이뤄지지 않은 것과는 별개로, 국회에선 스토킹 처벌법 개정안에 대한 논의가 진도를 빼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9월 ‘신당역 스토킹 살인사건’ 발생 이후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제출된 스토킹 처벌법 개정안은 정부안과 의원안을 합해 총 33개다. 법무부가 낸 개정안은 반의사 불벌죄 조항 폐지, ‘온라인 스토킹’ 처벌 규정 신설, 잠정조치로 스토킹 가해자에 대한 위치추적 전자장치 부착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나머지 의원안 32개 상당수도 정부안과 비슷하다.

지난해 10월과 올해 2월, 그리고 지난 22일 열린 법사위 법안심사제1소위원회에서 해당 법안들이 논의가 이뤄졌지만, 본회의는커녕 법사위 전체회의 문턱도 밟지 못했다.

‘온라인 스토킹’을 스토킹 처벌법에 추가하고 가해자에 대한 잠정조치로 위치추적 전자장치를 부착하는 조항에 대해 법무부와 법원행정처가 이견을 좁히지 못하고 있어서다. 법원행정처는 “개인정보, 위치정보, 신용정보 등의 제3자 제공 또는 배포, 게시 행위는 각 법에 규정되어 있고 해당 법의 법정형이 더욱 높게 되어 있다”며 온라인 스토킹 도입에 반대하고 있다. 또 위치추적 전자장치 부착에 대해서는 “법원 판결이 있기 전 또는 구속도 되기 전에 (가해자가 잠정조치로) 전자장치 부착 명령을 받는 것은 과도한 기본권 침해 우려가 있다”는 입장이다.

오세진 기자 5sjin@hani.co.kr 이주빈 기자 ye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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