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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정치인·퀴어활동가…김기홍의 ‘보이기 위한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등록 2021-02-26 10:24수정 2021-02-26 13:57

24일 세상 떠난 ‘논바이너리 트랜스젠더’ 김기홍 활동가
트랜스젠더 김기홍(맨 왼쪽)씨는 녹색당 비례대표 예비후보로 나서기도 했고, 퀴어축제 활동가였다. 2020년 국회 정론관에서 성소수자 인권활동가들과 함께 국회의원 비례대표 도전을 발표하는 모습. 서울/연합뉴스
트랜스젠더 김기홍(맨 왼쪽)씨는 녹색당 비례대표 예비후보로 나서기도 했고, 퀴어축제 활동가였다. 2020년 국회 정론관에서 성소수자 인권활동가들과 함께 국회의원 비례대표 도전을 발표하는 모습. 서울/연합뉴스
제주의 성소수자운동 활동가 김기홍(38)씨는 ‘논바이너리(성별 이분법에 속하지 않는 사람) 트랜스젠더’다. 중학교 음악교사였고, 녹색당에서 두 차례 비례대표 후보로 출마한 정치인이었다. 무지개색 깃발을 들고 제주의 거리를 누비는 퀴어 퍼레이드의 가장 앞줄에는 김기홍씨가 있었다. 그런 그가 지난 24일 자신의 집에서 쓰러진 채 발견됐다. 그는 “너무 지쳤어요. 삶도, 겪는 혐오도, 나를 향한 미움도”라는 글을 남겼다.

대학에서 음악교육학을 전공한 김씨는 2015년부터 제주의 한 중학교에서 비정규직 음악 교사로 일했다. 어느날 치마를 즐겨입는 애인을 보고 ‘나도 저런 예쁜 치마를 입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부터 그는 애인과 함께 고른 치마를 입었다. 망설이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그가 “이렇게 치마 입고 다니는 것이 괜찮냐”고 묻자, 애인은 “뭐 어때? 어차피 남인데”라고 답했다. 담담한 대답이 그의 존재를 흔들었다. 그때부터 그는 페미니즘을 공부했고, 자신을 ‘논바이너리 트랜스젠더’로 정체화했다.

2017년 4월25일 대선토론회. 홍준표 당시 자유한국당 후보가 문재인 당시 더불어민주당 후보에게 동성애에 관해 거듭 물었다. 문 후보는 답했다. “반대한다”, “좋아하지 않는다”, “동성혼을 합법화할 생각은 없지만 차별에는 반대한다”. 김씨가 ‘커밍아웃’을 결심한 건 그 때였다. “내 존재에 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고 말하는지 이해가 안 되고 화가 났어요. …그리고 저는 커밍아웃을 했어요. 제 학생들에게까지요.”(허핑턴포스트 인터뷰 중)

커밍아웃 뒤 그는 제주에서 처음 열리는 퀴어문화축제의 공동조직위원장을 맡았다. 제주 곳곳에는 한 보수정당이 내건 퀴어축제 반대 현수막이 걸렸지만, 2000명(연인원)에 이르는 사람들이 퀴어 행진에 참여했다. 행사를 꾸린 이들 조차 예상하지 못한 성공이었다. 그와 친구들이 퀴어축제를 연 뒤에 제주도에는 처음으로 대학생과 청년들이 꾸린 두 개의 퀴어 커뮤니티가 생겼다.

이를 계기로 그는 조금 더 자신을 ‘드러내기’로 결심했다. 녹색당에 입당했고, 2018년 제주도의회 비례대표로 나섰다. “저희 할머니는 치마를 입는 저를 늘 걱정하셨는데, 방송 토론회를 보고나서는 저를 응원해주셨어요. 동네분들도 ‘아이고 잘하더라’고 하셨어요.”

녹색당 지지율이 5%의 벽을 넘지 못해 비례대표로 뽑히지는 못했지만, 후보 지지율보다 정당 지지율이 높게 나온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핑크 보트(성소수자 투표)’의 가능성을 확인한 지방선거 경험은 2년 뒤 총선 비례대표 출마로 이어진다. 그는 국회에 입성하면 “차별금지법을 만들고, 공무원과 교사도 정당에 가입할 수 있게 만들고, 교원노조 관련법 없이 교사들도 일반 노조법으로 할 수 있게 만들고” 난 뒤, 당적을 유지한 채 학교로 다시 돌아가고 싶다고 했다.

하지만 한국 기성정치는 그의 존재를 ‘불필요한 소모적 논쟁’이라고 불렀다. 비례연합정당을 추진하던 윤호중 당시 민주당 사무총장은 “성소수자 문제 같은 불필요한 소모적인 논쟁을 일으킬 수 있는 정당과의 연합은 어렵다”고 했다. 사실상 그를 콕 집어 지칭한 말이었다. 김씨는 윤호중 총장의 선거 사무소 앞에서 열린 정당 연설회에서 그의 발언을 되받았다. “성소수자 인권 문제가 불필요한 소모적인 논쟁이라고 말했나요? 성소수자의 인권이 ‘논쟁’이 되는 건 당연히 불필요하고 소모적인 일이 맞죠.”

그는 총선을 완주하지 못했다. 선거 기간 중 8∼9년 전 그가 에스엔에스(SNS)에 올렸던 여성혐오적 글들이 드러났다. 비판이 쏟아졌고, 김씨는 페이스북에 사과문을 올렸다. “성인지 감수성은커녕 아무 생각이 없는 수준의 글이었다. 부족했고, 옳지 않은 걸 접하고 배워왔다. 하지만 페미니즘을 접하고부터 계속 공부하며 점점 더 나은 사람이 되려 노력하고 있다. ... 제가 해야 할 일, 할 수 있는 일을 찾으면서 공부하겠다.” 그는 총선을 4일 앞두고 비례대표직에서 자진사퇴했다. 녹색당은 추도문에서 그가 “완벽하진 않은 이였지만 완벽하게 살아남아 질책도 응원도 달게 받고자 했다”고 기억했다.

총선을 앞둔 지난해 2월 그는 자신처럼 트랜스젠더 정치인인 임푸른 정의당 예비후보를 위한 찬조연설에 나섰다. 그는 그 자리에서 최근 몇달 사이 2명의 친구를 떠나보냈다고 고백했다.

“성소수자 사회에서 자살기도, 죽음 소식은 특별한 일이 못 됩니다. … 마주하는 장벽이 그만큼 거대하기 때문입니다. 그나마 알려지면 연대라도 할 수 있는데, 알려지지 않으면 연대할 수도 없습니다. 저는 그래서 드러냅니다. 임푸른 예비후보도 그래서 드러냅니다. 그리고 우리는 연대를 통해 함께 국회에 들어가고자 합니다.”

그에게 정치는 친구들의 목숨이 걸린 일이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죽음에 내몰린 이들에게 ‘너는 혼자가 아니다’라는 절박한 신호를 보내기 위한 싸움이었다.

‘퀴어축제를 보지 않을 권리가 있다’는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의 소신에 그는 일주일 전 페이스북에 이렇게 적었다. “우리는 시민이다. 시민. 보이지 않는 시민, 보고 싶지 않은 시민을 분리하는 것 그 자체가 주권자에 대한 모욕이다.” 선생님·정치인·퀴어활동가 김기홍의 싸움은 갑작스럽게 끝이 났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가 마지막까지 분투했던 ‘보이기 위한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임재우 기자 abbado@hani.co.kr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으로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한 경우 자살예방 핫라인 ☎️1577-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등에 전화하면 24시간 전문가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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