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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C] 나이키 ‘덩크’는 어떻게 신화가 되었나

등록 2022-01-20 09:33수정 2022-01-20 09:44

1972년 ‘문 슈’ 이후 실험작들 출시
나온 지 40년 넘은 덩크 여전한 인기
한정판 모델 덩크 로 ‘서울’ 눈길
덩크 로우 ‘블랙/화이트’. 나이키 제공
덩크 로우 ‘블랙/화이트’. 나이키 제공

나이키는 업계를 불문하고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브랜드 중 하나다. 지금 이 순간에도 셀 수 없이 많은 신발이 ‘스우시’(swoosh) 로고를 단 채 전세계 곳곳에서 팔려 나간다. 나이키가 신발만 만드는 것은 아니지만, 가장 잘 만드는 것은 역시나 신발이다. 그 이유는 나이키의 뿌리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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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완성하는 신발

나이키의 공동 창립자 필 나이트는 오리건 대학교의 육상 선수 출신으로, 그와 함께 나이키를 세운 빌 바워먼 역시 같은 대학교 육상팀 코치였다. 두 사람이 최초로 만든 스니커는 1972년 올림픽 예선전에 출전하는 육상 선수들을 위해 제작한 러닝화 ‘문 슈’다. 이후 나이키는 스포츠계와 긴밀한 협업을 통해 수많은 실험작을 쏟아냈고, 나이키의 대표 모델들은 대중문화계의 아이콘으로 자리매김했다. 뮤지션 빈지노는 자신의 곡 ‘나이키 슈즈’를 통해 나이키 신발이 연인 관계에 미치는 긍정적 영향에 대해 묘사한 바 있다.(‘Nikes on her feet make my love complete’, 그녀가 신은 나이키 신발은 내 사랑을 완벽하게 해)

나이키의 수많은 베스트셀러 중에서도 2020년 이후 최고의 인기작을 고르자면, 단연 ‘덩크’ 시리즈다. 약 40년 전 처음 출시된 이 신발은 어떻게 세계 스니커 시장에서 가장 주목받는 신발이 될 수 있었을까? 사실 나이키 덩크가 처음부터 덩크라 불린 것은 아니다. 1985년 덩크를 설계한 나이키 디자이너 피터 무어는 애당초 ‘칼리지 컬러 하이’라는 이름으로 해당 스니커를 명명했다. 1980년대 미국 대학 농구 리그는 미국 프로 농구 엔비에이(NBA)만큼이나 큰 인기를 끌고 있었다. 이때 나이키는 미국의 12개 농구 명문대학교와 손을 잡고 ‘나이키 칼리지 컬러’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프로젝트의 슬로건은 ‘비 트루 투 유어 스쿨’(당신의 학교에 충실하세요)이었고, 이는 첫번째 덩크 시리즈의 타이틀이 됐다. 지금까지도 가장 인기 많은 덩크 모델들의 색상은 이에 포함된 시러큐스·켄터키·조지타운 대학교의 농구 유니폼의 중요 색깔을 본뜬 것이다.

피터 무어가 디자인한 덩크 하이의 오리지널 모델. 1985년 첫 출시됐다. 나이키 제공
피터 무어가 디자인한 덩크 하이의 오리지널 모델. 1985년 첫 출시됐다. 나이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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덩크와 에어 조던의 차이

여기서 한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이 있다. ‘덩크’와 ‘에어 조던 1’은 왜 이렇게 닮았을까? 실제로 덩크 하이와 에어 조던 1 하이는 나란히 놓고 비교했을 때 서로 차이를 알아보기 힘들 만큼 그 디자인이 매우 유사하다. 그 이유는 두 신발이 같은 시기, 같은 디자이너가 디자인한 작품이기 때문이다. 피터 무어는 1985년 엔비에이의 차세대 슈퍼스타 마이클 조던을 위한 첫 시그니처 스니커 에어 조던 1을 디자인했다. 이 시기 피터 무어는 대학생들을 타깃으로 판매할, 에어 조던 1의 보급형에 해당하는 모델로 덩크를 준비했다.

여기에 또 재미있는 이야기가 하나 숨어 있다. 대부분의 나이키 대표 모델에는 ‘에어솔’(공기튜브 밑창)이 내장된다. 에어 포스, 에어 조던, 에어 맥스 시리즈가 대표적인 예다. 하지만 덩크는 비슷한 시기에 출시되었음에도 ‘에어 덩크’가 아닌 그냥 ‘덩크’로 제작됐다. 앞서 언급했듯 덩크는 프리미엄 모델이 아닌 보급형 모델에 가까웠기에 합리적인 가격을 갖춰야 했고, 당시로서 최신 기술이었던 에어솔이 생략됐다. 실제로 덩크는 땅바닥에 닿는 쿠셔닝이 좋지 않아 농구화로 적합한 신발은 아닌데,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착화감 때문에 덩크는 제2의 전성기를 맞게 된다.

나이키 덩크가 농구장 밖에서 인기를 모았던 곳은 다름 아닌 스케이트장이다. 딱딱한 미드솔과 고무 소재의 아웃솔로 마찰력이 뛰어났던 덩크는 스케이터들에게 더할 나위 없는 신발이었다. 이 점을 포착한 나이키는 2002년부터 스케이트 전용 라인업인 나이키 스케이트보딩(SB)을 통해 덩크 시리즈를 새롭게 출시하기 시작한다. 이때 나이키는 농구 선수가 아닌 유명 스케이터를 광고 모델로 내세우고, 스케이트 신을 대표하는 브랜드 ‘슈프림’과 협업을 전개하며 세계적인 성공을 거뒀다.

캑터스 플랜트 플리마켓과 나이키의 협업 모델. 신발 전체에 스와로브스키 크리스털이 박혀 있다. 나이키 제공
캑터스 플랜트 플리마켓과 나이키의 협업 모델. 신발 전체에 스와로브스키 크리스털이 박혀 있다. 나이키 제공

한국계 디자이너 윤 안이 이끄는 앰부시와 협업한 덩크 모델. 2020년 12월 출시됐다. 나이키 제공
한국계 디자이너 윤 안이 이끄는 앰부시와 협업한 덩크 모델. 2020년 12월 출시됐다. 나이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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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업으로 시장을 장악하다

유행은 돌고 돈다지만, 이유 없이 그 유행이 돌아오는 것은 아니다. 2010년대 막바지에 이르자 나이키는 다시 한번 덩크의 부흥기를 이끌 파트너를 찾았다. 그이가 바로 세계적인 패션 브랜드인 ‘오프화이트’의 수장, 버질 애블로다. 나이키는 2017년부터 오프화이트와 호흡을 맞추며 다양한 협업 스니커를 제작해왔는데, 2019년 두 브랜드는 전에 없던 실루엣의 새 덩크를 선보인다. 2중 신발 끈, 케이블 타이, 레터링 프린트 등을 앞세운 오프화이트 협업 덩크는 스니커 시장에서 덩크의 가치를 빠르게 끌어올렸다. 이후 2020년부터 나이키는 본격적으로 일반 덩크 모델들을 재출시했고, 출시되는 족족 완판됐다. 버질 애블로는 지난해 세상을 떠나기 전, 나이키와 마지막으로 덩크 로우 ‘더 피프티’ 컬렉션을 선보였다. 세계적인 패션 웹 매거진 <하입비스트>는 해당 컬렉션을 ‘2021년 베스트 스니커’로 선정했다.

2021년 나이키는 국내 열성적인 운동화 수집가들을 위해 특별한 덩크를 출시하기도 했다. 나이키가 서울 시민들에게 헌사를 바치며 제작한 한정판 모델 덩크 로우 ‘서울’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광복절을 사흘 앞두고 출시된 덩크 ‘서울’은 태극기에서 영감을 받아 디자인됐다. 신발 끈에 적힌 ‘건’ ‘곤’ ‘감’ ‘리’, 발꿈치 부분인 힐카운터에 쓰는 ‘NIKE’라는 영어 대신 한글로 새겨진 ‘나이키’가 이를 증명한다. 공식 발매를 앞두고 나이키는 텅에 부착된 태극기 라벨에 대해 “국가의 해방을 기념”하는 의미를 담았다고 설명했다.

나이키는 스니커 업계에서도 헤리티지와 업계 최고 수준의 기술력을 동시에 지닌 몇 안 되는 브랜드다. 하지만 덩크는 나이키의 최신 기술이 적용된 신발도, 가장 오래된 역사를 갖춘 제품도 아니다. 그럼에도 덩크는 세계적인 아이콘들과 협업하며 스니커 시장을 장악했다. 사실 나이키는 덩크를 부활시킨 것과 같은 방식으로 자신의 헤리티지 모델들을 조명해온 바 있다. 나이키는 새로운 신발을 만들지 않고서도, 완전히 새로운 신발을 만드는 것보다 더 큰 화제를 모을 수 있는 마법을 부린다. 2022년에도 덩크가 그 인기를 이어나갈지는 미지수지만, 그렇지 않다 해도 나이키가 올해 가장 기대되는 브랜드인 건 같은 이유에서다.

주현욱 칼럼니스트

2021년 광복절에 앞서 출시된 한정판 모델, 나이키 덩크 로우 ‘서울’.나이키 제공
2021년 광복절에 앞서 출시된 한정판 모델, 나이키 덩크 로우 ‘서울’.나이키 제공

1960년대 히피 문화를 주도하던 미국 밴드 ‘그레이트풀 데드’를 테마로 제작한 덩크. 신발 안창에는 밴드를 상징하는 ‘댄싱 베어스’ 아트워크가 새겨졌다. 나이키 제공
1960년대 히피 문화를 주도하던 미국 밴드 ‘그레이트풀 데드’를 테마로 제작한 덩크. 신발 안창에는 밴드를 상징하는 ‘댄싱 베어스’ 아트워크가 새겨졌다. 나이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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