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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C] 소주 오픈런 해봤나요? 마실 땐 우아하게

등록 2022-05-20 05:00수정 2022-05-20 10:22

시장 규모 키우던 증류식 소주
박재범 ‘원소주’ 열풍에 정점
젊은층 잡으려 맛·품질 올리기
작은 잔 ‘원샷’보다는
향 즐기며 위스키처럼 마실 것
은은한 향이 좋아 온더록스로 마셔도 좋은 전통 소주. 스튜디오어댑터 강현욱
은은한 향이 좋아 온더록스로 마셔도 좋은 전통 소주. 스튜디오어댑터 강현욱

요즘 유통업계에서 가장 핫한 단어라면 단연코 ‘오픈런’이 아닐까? 오픈런은 원하는 물건을 사기 위해 매장의 개점 시간을 기다려 문이 열리자마자 달려가 사는 행위를 의미한다. 명품 패션 브랜드의 플래그십 스토어부터 각종 백화점과 럭셔리 부티크까지. 상품의 종류와 가격대를 가리지 않는다는 데에서, 오픈런 현장에 20~30대가 주축을 이루고 있다는 점에서도 눈여겨볼 만한 사회현상이다.

그런데 전통 소주를 사기 위해서 이렇게 오픈런을 하는 이들이 있다면 믿을 수 있을까? ‘원소주’가 그 주인공이다. 원소주 출시 직후 2월25일부터 일주일간 운영된 원소주 팝업스토어에는 총 3만명이라는 놀라운 규모의 인원이 다녀갔다. 2만병이 일주일 만에 완판됐고, 팝업스토어를 찾은 대부분의 사람은 엠제트(MZ)세대를 포함한 20대 초반의 젊은층이었다. 현재 원소주는 시중에서 동난 상태. 한병 1만4900원인 원소주는 당근마켓, 중고나라 등 중고 물품 거래 커뮤니티에서 빈 병만 3000~5000원에 거래되고 있다.
증류식 소주와 먹기 좋은 다양한 안주들. 사진 스튜디오어댑터 강현욱, 장소 협찬 삼씨오화
증류식 소주와 먹기 좋은 다양한 안주들. 사진 스튜디오어댑터 강현욱, 장소 협찬 삼씨오화

원소주 마셔본 사람?

최근 원소주를 제조하는 원스피리츠는 공식 누리집에서 5월16일부터 20일까지 원소주 2병과 온더락잔 2개가 들어간 선물 세트를 한정 판매했다. 매일 500세트씩 오전 11시부터 1인 1개씩만 살 수 있도록 했는데, 순식간에 품절됐다. 원소주는 7월이나 되어야 구하기 쉬워질 듯하다. 원스피리츠는 기존 원소주 오리지널보다 가격은 낮추고 도수는 2도 높인 ‘원소주 스피릿’(알코올 함량 24%)을 올해 7월부터 ‘지에스(GS)25’에서 판매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오픈런 대란을 일으킨 박재범의 원소주. 원스피리츠 제공
오픈런 대란을 일으킨 박재범의 원소주. 원스피리츠 제공

젊은이들이 소주를 이렇게나 좋아했던 적이 있었나? 원소주를 만든 이는 가수 박재범으로, 젊은층에게 가장 어필하는 래퍼 중 한명이다. 단순히 셀레브리티가 만든 술이라서 높은 인기를 끄는 것일까? 원소주 팝업스토어에 방문했던 박소라(23)씨의 반응은 예상과 달랐다. “유명 가수가 만든 술이라는 점이 눈길을 끈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만으로 긴 대기 시간을 기다리고 예약 전쟁을 치른 것은 아니”라는 것. 그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상에서 워낙 핫한 술인데다, 이 술을 마셔본 사람은 ‘힙스터’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고 말했다. 인기 있는 유명한 술을 마셔본 경험 자체가 스스로를 ‘힙’하게 만든다는 것.

우리 술 관련 콘텐츠를 제작하는 이지민 대동여주도 대표는 이 같은 현상에 대해 “유명인이 만든 술을 마셔보고 싶다는 호기심과 독특한 패키지, 한정판에 대한 소장 욕구, 나도 경험해봤다는 일종의 인증 욕구가 담긴 복합적 사례”라고 분석했다.

원소주 구매 대란은 증류식 소주 시장을 젊은층에게 알렸다는 점에서도 주목할 만하다. 원소주는 국내산 쌀을 주재료로 한 전통 증류식 소주다. 증류식 소주는 이른바 ‘고급 소주’로 통한다. 참이슬, 처음처럼 등 시중에서 우리가 쉽게 접하는 소주는 희석식 소주다. 희석식 소주는 주정을 물에 타서 만들고, 증류식 소주는 양조장에서 곡류를 발효시켜 만든 술을 한 차례 더 증류해 만든 술이다. 증류식 소주는 술을 빚는 과정이 더 복잡하고, 원재료가 되는 곡물의 종류나 숙성 방식에 따라 고유한 맛과 향을 가진다. 이대형 경기도농업기술원 농업연구사는 “현재 증류식 소주 소비층이 점차 젊어지고 있는데, 이런 경향에 원소주가 아주 잘 타 올랐다”고 설명했다. 앞으로 증류식 소주 시장이 더 커지고 젊어질 것이라는 전망이다.

은은한 향이 좋아 온더록스로 마셔도 좋은 전통 소주. 스튜디오어댑터 강현욱
은은한 향이 좋아 온더록스로 마셔도 좋은 전통 소주. 스튜디오어댑터 강현욱

국세청 국세통계연보를 살펴보면 증류식 소주 시장은 2011년 100억원대에서 2020년 기준 450억원까지 빠르게 팽창했다. 한국가양주연구소 류인수 소장은 “상온에서 장기간 보관해도 변질되지 않는 보관의 용이성, 내가 원하는 대로 알코올 도수를 조절해서 마실 수 있는 확장성, 전통주라는 장르의 희소성이 성장 기반이 되어 증류식 소주 시장이 꾸준히 성장할 것”이라고 분석한다. “젊은 세대가 증류식 소주에 빠진 이유는 오히려 전통주이기 때문”이라는 해석도 흥미롭다. 해외의 다양한 술을 비교적 쉽고 빠르게 받아들인 세대이다 보니 오히려 잘 알려지지 않은 우리 전통술이 ‘힙’하게 느껴진다는 것이다.

우리 술 전문 판매 주점 ‘삼씨오화’(3C5 花) 오화진 대표의 설명도 비슷하다. 오 대표는 “매장을 처음 열었던 2017년에 비해 최근 증류식 소주를 주문하는 이가 50% 이상 늘고, 매장을 방문하는 손님의 연령대도 현저히 낮아졌다”고 했다.

우아하게 마시는 소주 한잔

그렇다면 최근 증류주 시장의 트렌드는 뭘까? 이지민 대동여주도 대표는 “쌀, 밀, 보리, 고구마 등의 곡류에 인삼, 홍삼 같은 각종 한약재를 비롯한 다양한 부재료를 더한 소주부터 사과, 오미자, 포도, 귤 등 과실주를 증류해 만든 브랜디까지 향도 맛도 다양한 증류주를 내는 것이 대세”라고 설명한다. 한국적인 부재료를 넣어 풍미와 맛의 특징을 살려 젊은층의 흥미를 유도한다는 것이다. 류인수 한국가양주연구소장은 “알코올 도수가 점점 낮아지는 것 역시 하나의 트렌드”라고 했다. 과거에는 알코올 도수 40%가량의 증류주가 대세였다면, 현재는 알코올 도수 20%의 증류주가 대세다.

깔끔한 맛의 쌀소주 ‘여유40’. 양촌양조 제공
깔끔한 맛의 쌀소주 ‘여유40’. 양촌양조 제공

고구마 베이스의 증류식 소주 ‘필’. 술아원 제공
고구마 베이스의 증류식 소주 ‘필’. 술아원 제공

소주라고 작은 잔에 담아 ‘원샷’만 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전통 소주는 곡물 특유의 맛과 향이 풍부한 만큼 마시는 방법도 다양하다. 젊은층은 전통 소주를 서양의 증류주인 위스키처럼 마신다. 천수현 전통주 소믈리에는 “향이 풍부한 술인 만큼 무조건 차갑게 마실 필요가 없고, 위스키를 마시는 글렌캐런 ( 글렌케언) 글라스처럼 향기를 맡기 좋은, 입구 폭이 작은 잔에 마실 것”을 추천했다. 천 소믈리에는 얼음을 넣고 온더록스로 천천히 즐기는 것도 권했다. 얼음이 녹으면서 알코올의 기운이 사라지고 깔끔하고 청량감 있게 마실 수 있다. 높은 도수가 부담스럽다면 칵테일을 만들어 먹는 것도 좋단다. 시중에서 파는 과일주스나 토닉워터, 탄산수만 섞어도 소주 칵테일이 완성된다.

원소주 외에도 지금 가장 핫한 증류식 소주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장안의 내로라하는 술꾼들에게 물었다. 오화진 삼씨오화 대표는 경기도 여주의 술아원에서 생산하는 ‘필’을 꼽았다. 필은 여주산 고구마를 100% 사용해 만든 술을 증류해 만들었다. 고구마 특유의 달큰한 향은 음식과 함께 먹었을 때 가장 빛을 발한다고 한다. “잘 숙성한 생선회나 숯불에 구운 이베리코 돼지고기 구이와도 무척 잘 어울린다”는 것이 오 대표의 페어링 팁이다.

이지민 대동여주도 대표는 양촌양조의 ‘여유40’을 추천했다. 여유40은 100년 역사를 지닌 양촌양조장에서 1956년 출시한 ‘술춘’ 소주를 재해석한 버전이다. 8개월간의 숙성 과정을 거친 쌀소주로 깔끔함과 탄탄한 구조감이 돋보인다. 여유40은 간이 센 안주보다는 술 자체의 맛과 향을 해치지 않는 담백한 음식이 어울리는데, 소금 간만 해서 구운 돼지고기 목살구이나 육전 등과 함께 먹으면 술의 향미와 여운을 충분히 즐기면서 마실 수 있다.

사과 향이 좋은 ‘추사백25’. 예산사과와인 제공
사과 향이 좋은 ‘추사백25’. 예산사과와인 제공

담백한 음식과 어울리는 깔끔한 맛

천수현 전통주 소믈리에는 예산사과와인에서 만든 ‘추사백25’를 권한다.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과일 중 하나인 사과로 만든 소주로, 깔끔하면서 사과의 새콤달콤한 향이 은은하게 잘 살아 있다. 알코올 함량도 25%로 비교적 부담 없이 음식에 곁들이기 좋다. 풍부한 사과 향을 즐기고 싶다면 스트레이트나 온더록스로, 가볍게 즐기고 싶다면 토닉워터를 섞어 ‘애플 토닉’으로 마셔도 좋다.

우리 것이 무조건 좋다는 정신적 호소의 시대는 지났다. 최근 전통주들은 다양한 맛과 뛰어난 품질 그 자체로 인정받고 있다. 특히 증류식 소주는 가장 대중적이면서 한국 음식과 무난하게 잘 어울린다. 증류식 소주의 ‘핫’한 열풍을 넘어 미래가 기대되는 이유다.

백문영 객원기자 moonyoungbaik@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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