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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C] SNS 버리자 상념의 창문이 열리다

등록 2020-02-23 10:18수정 2020-02-23 10:20

아침에 눈을 뜨면 에스엔에스(SNS)부터 살폈습니다. 밤사이 달린 댓글과 누가 내 글에 ‘좋아요'를 눌렀는지를 잠이 덜 깬 상태에서 확인하는 것이 하루의 시작이었습니다. 대개의 소식도 에스엔에스로 접했습니다. 세상이 돌아가는 것은 물론 이름밖엔 아는 것이 없는 에스엔에스 친구의 개가 요즘 들어 똥을 제대로 싸지 못한다는 사실도 쉽게 알 수 있었습니다. 모든 것이 내 손바닥 안에서 훤히 보이니 관음보살이 된 기분이었습니다. 하지만 열반에 이르지 못한 자가 관음보살의 힘을 가져봤자 번뇌만 깊어질 뿐입니다. 적어도 저는 그랬습니다.

우선, 너무 많은 것들을 봐야만 했습니다. 사람들은 소소한 일상과 일반적인 관계에선 절대 드러내지 않을 개인의 속내까지, 감당하기 벅찬 것들을 낱낱이 공개했습니다. 그 바람에 저도 뭔가를 보여줘야 하는 건가 싶은 조바심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딱히 가진 게 없는 저는 금세 밑천이 바닥났고, 언제부턴가 보여주기 위한 무언가를 만들어야 한다는 위기감까지 느끼게 됐습니다.

동시에, 너무 많은 것에 관심을 가져야 했습니다. 계속 생겨나는 다양한 분야의 이슈와 갈등 속에서 사람들은 상대가 어떤 입장을 취하고 있는지 끊임없이 살폈고, 그 결과로 편을 갈랐습니다. 누구의 편이 되느냐보다는 누구의 적이 되는 것이 싫은 저는 어딘가에 있을지 모를 해답의 실마리를 찾기 위해 끊임없이 타임라인을 훑으며 시류에 편승하고자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지쳤습니다. 깨어있는 많은 시간을 핸드폰을 손에 든 채 나와 연관 없는 것들에 쏟아붓느라 정작 내가 발을 딛고 살아가는 현실엔 집중하지 못하는 것만 같았습니다. 그래서 에스엔에스에서 멀어져 봤습니다. 대단한 실행이 필요하진 않았습니다. 그냥 되도록 이용하지 않았을 뿐입니다. 행위는 단순했지만 쉽지는 않았습니다. 평소 숨 쉬듯 사용하던 것이다 보니 무의식적으로 손이 가 앱을 열었다 닫는 일이 종종 있었습니다. 마치 의도적으로 눈을 깜빡이지 않거나 재채기를 참는 것처럼 불가항력적인 일로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두 달이 지났습니다. 찔끔찔끔 살펴보긴 했지만, 이전의 사용량에 비해 90%는 준 느낌입니다. 큰 변화는 아니지만 달라진 것들이 몇 있습니다. 첫째로, 지금 사람들이 어떤 이슈로 불타오르는가에 대해 알지 못합니다. 뭔가 트렌드에 뒤처진다는 느낌이 들긴 하지만 뭐에 뒤처졌는지를 모르니 별 상관없지 않나 싶습니다. 둘째로, 언젠가부터 앓고 있던 호흡곤란이 잦아들었습니다. 매일같이 뭐라도 남들에게 보여주고 반응을 확인해야 한다는 생각에 쫓기는 기분으로 살았는데, 그것으로부터 벗어났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창밖을 보는 시간이 늘었습니다. 끊임없이 쏟아지는 이슈들을 접할 방법이 없어지니 밖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나 살필 수단이 창문이 된 것입니다. 덕분에 눈이 내리고, 구름이 끼고, 날이 개는 심심한 모습을 보며 상념에 빠질 수 있었습니다.

저는 이렇게 점점 최첨단에서 멀어지게 되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 멋진 최첨단을 따라가기 위해 애쓰느라 정신이 마모되던 것에 비하면 지금의 속도가 저에게 맞는 것 같습니다. 세상천지 삼라만상을 두루 살필 수 있는 것은 관음보살의 역할일 테니 저는 그저 제 방에 앉은 창문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제 몫의 삶을 살아가는 것에나 집중하려고 합니다.

글·그림 김보통(만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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