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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C] 박박 닦아 반짝…봄맞이 청소 대작전

등록 2020-03-19 09:29수정 2020-03-19 09:35

“난 욕조가 있는 집에 살고 싶어”
정작 욕조엔 분홍 꽃만 피었는데
‘청소’ 유튜브 채널 ‘클린어벤져스’ 보니
나도 괜히 지난 세월 억울한 기분
주말엔 욕조에 베이킹소다 한 컵 뿌려야지
사진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사진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정확히 13년 전이다. 2007년 어느 날 대학 친구들과 다소 낯간지러운 대화를 나눴다. 주제는 ‘10년 뒤 나의 모습’. “난 욕조가 있는 집에 살고 싶어.” 애초 취지와 동떨어져 보이는 내 발언에 친구들은 웃음을 참지 못했다. 세면대조차 없는 옥탑방에서 아르바이트로 번 돈으로 생활하던 난 꽤 비장했다. 욕조는 풍요롭고 안온한 삶의 상징만은 아니었다. 그때의 나는 단지 좀 더 몸과 마음가짐을 깨끗이 하고 싶었던 것 같다. 정작 자신은 더러운데 깨끗한 걸 탐하는 ‘아재’가 되지 않겠다는 다짐이기도 했다. 그런 탐욕이야말로 자학의 뒷면이라고 그땐 사뭇 진지하게 생각했다. 욕조가 생기면 매일매일 몸을 푹 담그고 깨끗해지리라 마음먹었다.

어느덧 내게도 욕조가 있는 집이 생겼다. 그 기쁨도 잠시, 욕조는 오래도록 버려졌다. 바쁘고 귀찮다는 핑계로 살던 대로 살았다. 물 한번 가득 받아보지 못한 욕조엔 ‘분홍 꽃’이 피었다. 사람의 피지를 잡아먹는 잡균이 번식한 흔적이었다. 난 노란 백열등 아래서 그 자국을 애써 모른척하며 ‘꽃’이 저절로 시들기만 기다릴 뿐이었다. 종종 부인이 “집 청소 좀 하자”고 하면 “나 또한 집 안의 한 물질이니 내 몸부터 씻겠다”며 샤워하러 들어가 꼬리를 감췄다. 그렇게 나는 점점 깨끗함과 멀어졌다.

최근 우연히 유튜브에서 괴상한 청소 영상을 봤다. 젊은 청소인들의 모임 ‘클린어벤져스’가 운영하는 채널이었다. 주로 ‘쓰레기 집’ 청소 현장 영상을 올리는 채널인데 구독자가 6만3500명에 달했다. ‘쓰레기 집’들은 발 디딜 틈 없이 쓰레기가 넘쳐나 방에서 숨 쉴 수조차 없을 것 같았다. 영상 속 베테랑 청소인들도 청소하다 말고 종종 비명을 질렀다. 지난달 24일엔 ‘헬프미 프로젝트, 그녀가 쓰레기 집에서 살았던 이유’라는 제목으로 청소 의뢰인 인터뷰 영상이 올라왔다. 의뢰인의 고백에서 내 모습을 봤다. “그동안 계속 세상이 나를 넘어뜨리는 기분이었는데 (청소 도움을 받고) 누군가가 (나를) 일으켜주는 기분을 느꼈다. 하루면 끝나는 건데 지난 시간이 좀 억울하다.” 한 시간이면 욕조도 닦고 목욕도 끝나는 건데 멍하니 흘려보낸 지난 세월만 안타까웠다.

이번 주 ESC는 움츠린 일상의 공기를 환기하는 청소의 세계로 안내한다. ‘지금까지 이런 극한 청소는 없었다’고 말하는 ‘클린어벤져스’가 몸소 겪은 ‘쓰레기 집’ 청소 이야기를 전한다. 대청소가 엄두 나지 않는다면 ‘소청소’부터 해보자는 취지로 집 안 구석구석을 청소하는 소박한 기술들을 소개한다. 오는 주말엔 욕조를 닦고 물을 채워야겠다. 물에 베이킹소다 한 컵과 에센셜 오일 다섯 방울을 뿌리고 풍덩 들어갈 생각이다. 피부와 욕조에 남은 피지 찌꺼기를 없애는 ‘일석이조’ 목욕법이자 청소법이다. 봄도 자연도 빼앗긴 하 수상한 계절, 이만한 호사도 없을 것이다.

김선식 기자 ks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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