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호진 기자
“절 알아보냐고요? 에이, 그런 것 없어요.” 수화기 구멍으로 이강석(22·의정부시청)의 웃음이 새나왔다. “비인기 종목이잖아요.” 그는 지난 10일 스피드스케이팅 세계선수권 남자 500m에서 세계신기록으로 우승했다. 육상 남자 100m 우승에 버금가는 쾌거였다. “태극기가 올라가는데…. 와, 세계가 다 모인 곳이잖아요. 정말 찡하더라고요.” 그는 외환위기로 사업이 망했는데도 술에 빠지지 않고 꿋꿋이 버텨준 아버지의 모습이 큰 힘이 돼왔다고 떠올렸다.
고모가 버리려고 내다놓은 빨간색 낡은 스케이트가 7살 소녀의 발에 꼭 맞을 리 없었다. 김연아(17·군포 수리고 2)는 그렇게 빙판에 처음 섰다. 아이스링크가 부족해 사람들이 집으로 돌아가는 밤 10시부터 얼음판에 서는 강행군은 당연한 선택이었다. 2006년 초만 해도 김연아 어머니는 기자에게 “1년간 찾아봤는데, 피겨 인식이 부족해 스폰서를 해주지 않는다”고 하소연했다. 그는 지난 24일 한국인 최초로 피겨스케이팅 세계선수권 여자싱글에서 3위에 올랐다. 프리스케이팅에서 두 번 넘어져, 쇼트프로그램 1위 점수를 까먹었는데도 김연아는 울지 않았다.
하루 뒤인 25일. 박태환(18·경기고 3년)이 세계수영선수권 남자 자유형 400m에서 아시아 신기록으로 한국 최초 세계대회 우승의 쾌거를 달성했다. 4위로 헤엄치다 마지막 50m에서 승부를 뒤집었다. 경기 전 그는 가수 ‘아이비’의 노래가 나오는 헤드폰을 끼고 입장했다. 그 얼굴에서 상대 선수들은 2006년 초 찜질방에 딸린 수영장에서 할머니들과 섞여 훈련했던 ‘코리안 선수’의 설움을 눈치채지 못했을 것이다.
3월은 프로스포츠가 들썩이는 계절이다. 그런데 3월의 봄에 아마추어 종목 3인방이 한국인이 넘보기 힘들다는 종목에서 신명나는 ‘반란’을 일으켰고, 프로에만 매몰돼 있는 사람들에게 신선한 충격파를 던졌다.
“오호~이것 봐라 할만한데?”라고 늘 되뇐다는 김연아. 이런 자신감이 이들 아마 3인방이 세계적인 선수로 큰 힘이 아니었을까? 송호진 기자dmzsong@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