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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심정 벗님글방

삶은 쓴머위를 싸먹으며 견뎌내는 것이다

등록 2020-07-28 18:44수정 2020-07-28 18:46

<엠비시> 티브이 드라마 ’전원일기’ 갈무리
<엠비시> 티브이 드라마 ’전원일기’ 갈무리

올 봄 유난히 머위 나물을 많이 해 먹었다. 해마다 봄이면 집 주변에 널린 게 머위였지만 특유의 쓴 맛 때문에 어린 잎이 올라올 때 두어 번 뜯어 고기 먹을 때 생잎을 쌈으로 먹거나 살짝 데쳐 된장 양념에 무쳐 먹으면 그만이었다. 그것 말고도 봄이 가기 전 한번은 먹어야 할 나물들 또한 지천이니 굳이 쓰디쓴 머위를 고집할 이유는 없었다. 그런데 올해 머윗대를 삶아 볶아 먹으면서 머위의 또 다른 맛을 알게 되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봄나물은 향긋한 돌미나리다. 어린 시절 햇살은 따뜻하고 바람은 쌀쌀한 봄날, 시냇가 고운 모래밭에서 파릇파릇 올라온 미나리를 작은 칼로 잘라낼 때 훅 코로 들어오던 상큼하고도 달큰한 미나리 향이 아직도 코 끝에 남아 있는 듯하다. 미나리를 뜯고 있을 때마다 그 시냇가 모래밭이 떠오르는 걸 보면 한 순간 각인된 기억이 평생을 이끌어 가는 건가 싶은 생각이 든다.

사월 초에 동생들이 놀러 왔다가 집 주변의 쑥과 머위를 싹쓸이 해 간 이후로 번갈아 가며 시누이도 오고 부산에 사는 형님까지 주말이면 손님들이 끊이지 않고 와서 머위 잎을 뜯어 가는 일이 있었다. 덕분에 별 관심이 없던 머위가 뜯어도 뜯어도 끝없이 올라오는 무서운 생명력을 가진 식물이란 걸 알게 되었다. 머위는 그늘에서 잘 자라는 습성이 있어 크게 자란 머위 잎도 살짝 데치면 생각보다 질기지 않아 쌈으로도 먹고 물기를 짜서 간장과 매실액을 반반씩 부어 장아찌를 만들기도 해 봤다. 이른 봄부터 올라오기 시작한 머위를 지난 주까지 베어 먹었으니 한 서너 달 동안 머위나물을 먹을 수가 있었다. 올해는 키가 많이 자란 머윗대를 서너 번 베어다 반찬도 하고 장아찌도 담아 먹었다.

어린 잎과 달리 머윗대를 먹으려면 손이 많이 간다. 풀과 함께 키가 커 버린 머윗대를 자르려면 목이 긴 장화를 신고 낫을 들고 가야 한다. 뱀이 나오는 계절이 왔기 때문이다. 풀을 헤치며 베어 온 머윗대는 억센 잎사귀를 잘라 버리고 끓는 물에 소금을 넣고 몇 분간 데쳐낸다. 찬물에 헹군 머윗대는 껍질을 벗겨야 먹을 수가 있다. 껍질을 벗기면 연한 초록색의 속살이 드러난다. 그러나 맨손으로 껍질을 벗기다 보면 연초록 줄기 어느 깊은 곳에 검은 상처가 숨어 있었던 것인가 싶게 금세 손톱 밑이 까맣게 물이 든다.

머윗대
머윗대

머위쌈
머위쌈

머위무침
머위무침

삶은 머윗대 껍질을 벗기는 걸 옆에서 돕던 어머님이 수북이 쌓여 가는 껍질을 보면서 혼잣말처럼 “옛날에는 이 껍질도 하나도 안 버리고 된장에 박았다가 다 먹었는디..., 지긋지긋하게 먹을 것도 없으니께 이런 것도 안 버리고 다 먹었지.” 하시기에 설마 하며 벗긴 껍질 하나를 입에 넣고 씹어 보았다. 이 질긴 걸 어떻게 먹었다는 말인지 싶을 만큼 잘 씹어지지도 않아 이내 뱉어 버렸다. 어머니가 껍질을 벗긴 머윗대 중 굵은 줄기에 젓가락을 찔러 넣어 가늘게 쪼개 놓으셨다. 그래야 나물이 부드럽고 간이 잘 배인다는 것이다. 어머님이 흩어진 껍질들을 모아 밭가에 만들어 놓은 두엄탕에 버리러 들고 나가신다. 오랜 세월 채소를 길러 다듬고 씻고 껍질을 벗겨 바로 조리할 수 있는 단계까지 손질해 주는 건 어머니의 몫이었다. 직장 생활을 하면서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일들이 올해 처음으로 내 손으로 머윗대를 베어 삶고 껍질을 벗겨 머윗대 나물을 만들면서 얼마나 많은 손이 가야 비로소 가족들의 입에 들어오는 음식이 되는지를 새삼 생각하게 되었다.

팬에 기름을 넣고 다진 마늘을 볶다가 솔솔 마늘 향이 올라오면 먹기 좋은 크기로 자른 머윗대를 국간장과 들기름을 넣고 볶는다. 머위가 연하고 투명한 초록색이 되면 멸치와 다시마를 우려낸 육수를 자박하게 붓고 들깨가루를 넣어 보글보글 조리면 마늘과 어우러진 고소한 들깨향이 밴 머위나물이 완성된다. 투명한 연두빛의 아삭아삭한 나물을 담은 뽀얀 국물을 어머님이 국처럼 떠 드시며 맛있다고 칭찬을 하신다. 웬일로 머위나물을 다 했느냐며 좋아하던 남편이 예전에 모내기 철이 되면 머위 나물이 최고의 반찬이었다는 말을 들려준다. 모내기를 하는 논에 나오는 들밥 반찬이 늘 정해져 있었다고 한다. 이맘 때 나오는 머위나물과 고춧잎 무침, 그리고 콩을 볶아 들기름을 넣고 소금에 비빈 콩자반과 열무김치가 전부였다는 것이다. 거기다 닭을 키울 땐 계란찜이 곁들여 졌다는데 듣다 보니

“와, 그거 영양 균형이 맞춰진 최고의 건강한 밥상인데 뭐가 반찬이 없다는 거야?”

“모내기 하는 날이니까 여러 가지 마련한 거지. 열무 김치하고 보리밥만 먹다가 엄마가 이 머위나물 하면 최고로 맛있는 음식이었지.”

결혼 후 외지에서 살다가 시댁으로 들어와 합가를 하고 가장 당황스러웠던 것이 시어머니가 담배를 피우는 모습이었다. 그때만 해도 나이 든 여자들이 담배를 피우는 것에 대해 허용적인 분위기가 있던 때여서 시골에 사는 할머니들이 담배를 피우는 것이 흉은 아니었다. 명절이나 가끔 어머니를 뵈러 오는 손님들도 자연스럽게 담배를 한 보루씩 선물로 들고 오던 때였다. 어느 날 어머니께 건강에도 좋지 않은 담배를 왜 피우시느냐고 조심스럽게 물었더니 기다렸다는 듯 말씀하셨다.

전원일기 갈무리
전원일기 갈무리

“인제 끊을라고 하던 참이여. 담배 값도 비싸고 늙은이가 뭐 좋은 거라고 담배를 태우고 있는 것도 보기 안 좋지.” 하시며 묻지도 않은 담배를 피우게 된 사연을 이야기하셨다.

“승우 애비가 죽고 나서 잠도 못 자것고 가슴에 돌덩어리가 얹혀서 밥도 안 넘어가고 죽겄으니께 둘째 아줌니가 담배를 태워보라고 하더라. 첨에는 눈물나게 맵더니만 좀 지나니께 그걸 태우면 속이 좀 뚫리는 거 같애서 태우게 된 겨.”

삼남오녀의 자식들 중 부모와 함께 농사를 짓던 둘째 아들이었다. 모내기가 끝나고 재 너머 개간한 참깨밭에 트랙터에 물을 싣고 간 아들이 저녁 때가 다 되어도 돌아오지 않자 아들을 찾아 나선 어머니는 뒤집힌 트랙터 밑에 깔려 있는 아들을 보았다. 혼자 힘으로는 꿈쩍도 않는 트랙터를 밀다가 미친 듯이 산을 뛰어 내려가 사람들을 불러 왔지만 이미 숨이 끊어진 뒤였다고 한다. 아버님은 그 일 이후로 밥 대신 술로 끼니를 삼다가 한 쪽 눈의 시력을 잃으셨고, 어머니는 돌덩이가 얹혀진 가슴을 두드리며 밤잠을 잊으셨다. 집 주위에 머위가 무성하던 초여름이었다고 한다.

자식을 앞세우고 밥을 먹고 잠을 자는 일이 차라리 함께 따라 죽는 일보다 더 어려운 일이었을 거라는 걸 아이를 키워보니 이제는 조금 알 것 같기도 하다. 가슴에 돌덩이를 매달고 다음날도 꾸역꾸역 일어나 쌀을 씻어 밥을 안치고 손톱 밑이 시커멓도록 머위 껍질을 벗겨 식구들의 밥상을 차렸을 어머니.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쓴 머위를 씹으며 삶의 한 겨울을 지나고 올해 아흔세 해를 넘긴 어머닌 담배도 날짜가 가는 것도 시나브로 잊고 먼저 흙으로 돌아간 아들을 만날 날이 가까워지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머지않은 어느 봄날, 머위 껍질을 벗기다 손톱 밑이 새까매지면 나는 가슴 속도 손톱 밑처럼 새까맣게 쪼그라들었을 머리 하얀 시어머니가 문득 그리워질지도 모르겠다.

글 원미연

***이 시리즈는 순천사랑어린학교 김민해 목사가 펴낸 <월간 풍경소리>와 함께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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