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싶은 할아버지, 아직도 잊을 수 없는 순간이 있어요. 할아버지의 확진 소식을 들은 날. 전국 중환자실 병상이 모자라 맘 졸이며 기다리던 새벽. 선별진료소의 긴 줄에서 2시간 넘게 펑펑 울며 기도했던 시간. 오직 할아버지를 다시 만날 생각만 했던 격리 기간.
그리고 마지막 날, 2021년 12월 24일. 크리스마스 이브 아침. 한 달 만에 마주한 그 얼굴과 내가 잡은 싸늘한 손을 아직 기억하고 있어요. 입관식에서, 마지막으로 안았던 품을 기억하고 있어요. 그래도 할아버지, 나는 그보다 할아버지가 나를 보고 웃어주던 얼굴, 나를 배웅하며 창밖으로 손 흔들던 모습, 내 얼굴을 쓰다듬던 단단한 손을 더 많이 기억하고 있어요.
14년 전 큰 수술을 이겨내고, 내내 병원을 오가며, 언어를 잃은 답답함과 고통을 견디느라 수고 많으셨어요. 우리 함께 슬퍼하며 견딘 날도 많지만, 세상에서 가장 사랑스러운 할아버지 덕에 항상 행복했어요. 할아버지는 나에게 그 누구보다 무해한 존재였어요. 내가 받은 그 절대적 사랑을 잊지 않을게요.
얼마 전 어버이날을 맞아 온 가족이 모였어요. 할아버지만 없는 식탁이 어색했어요. 봉안당에 가던 길, 영정사진을 품에 안았을 때 함께 한 약속 잊지 않았죠? 우리 할머니 꼭 지켜달라고 했던 약속. 할아버지의 영정사진을 들었던 건 제 삶에서 가장 자랑스러운 일이 될 거예요.
어느새 야외에선 마스크를 벗을 수 있는 날이 왔어요. 일상으로 돌아간다는 말이, 반갑지가 않아요. 때때로 왜 우리 가족이 이런 일을 겪어야 했는지, 이해되지 않을 때가 있었어요. 하지만 할아버지라면, 환하게 웃으면서, 다 괜찮다고, 울지 말라고 나를 안아주겠죠?
마지막 작별인사 할 수 있게, 격리해제가 되실 때까지, 20일 동안, 긴긴 시간 아픔을 참고 우릴 기다려줘서 고마웠어요. 그토록 꿈꿨던 천국에서 영원한 안식과 평안을 누리세요. 사랑해요 할아버지. 단 하루도 할아버지를 잊은 적 없어요. 지금도 우리 곁에 있고, 언젠가 다시 서로의 품을 안을 거라고 믿고 있어요. 다시 만날 땐 14년 동안 듣지 못했던 내 이름 꼭 들려주세요.
-고 이길남님 가족을 대표하여, 첫 손녀딸 올림.
※ 1944년, 고인(외할아버지) 2살 무렵일 때의 사진입니다. 고인의 사진 중 가장 오래된 사진입니다. 뒷면에는 외증조부께서 자필로 설명을 남기셨습니다. "길남이 2세다. 삼화 철산서 사과를 쥐고 찍었다. 심술이 많아서 야단이다. 엄마가 이 옷을 만들어 입혔다. 소화19년 때 대동아 전쟁(태평양 전쟁) 말기다." 라고 적혀있습니다.
134분이 헌화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