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친일 여부 다시 입길
원칙론-신중론 엇갈려

최근 학계에서 조병옥의 친일 주장이 나온 것은 지난해 8월 학술단체협의회가 연 ‘친일파 문제’ 토론회에서다. 강정구 동국대 사회학과 교수는 ‘해방공간 친일청산 실태와 문제점’이란 발제에서 “1946년 1월 임명된 중요정책 직무의 조선인 구성에서 친일파 편향 … 경무부장 조병옥, 수도경찰청장 장택상 … 1947년 7월 남조선과도입법의원이 ‘민족반역자·부일협력자·간상배에 대한 특별조례’를 통과시키자 조병옥은 친일파 일색인 경찰에 이 법이 적용되는 것을 막기 위해 경찰규제 조항의 수정을 공식 요청했다”고 밝혔다.

이에 앞서 문학평론가 임중빈씨는 〈한겨레〉 2001년 3월26일치에 ‘조병옥과 친일, 조순형과 조선일보 관계의 원류’라는 글에서, 그 일주일 전에 실린 신경림 시인의 칼럼 중 “개인적으로 친일행각이 별로 보이지 않는 조병옥을 범친일파로 분류하는 것은 심하지 않은가 하는 반발도 만만치 않을 것”이라는 대목에 대해 반박한 바 있다. 임씨는 기고에서 “1941년 8월25일 삼천리사 주최 임전대책협의회에서 죽음으로써 일본에 보답한다는 각계 명사 120명의 결의 아래 친일 거두들과 자리를 함께한 조병옥은 자못 비장한 어조의 소신발언으로 부민관 중강당을 제압했다”고 주장했다. 다음은 조병옥이 했다는 발언의 일부다. “우리는 오늘 제국의 신민으로서 이 마당에 모였습니다. … 조선민중은 아무 요구도 없이 무조건으로 협동하여 전승해서 동아공영권 건설에 매진함으로써 위정자에게 안심을 줄 것입니다.”

반면, 조병옥이 자신의 친일(비호) 의혹에 대해 생전에 직접 해명한 기록도 남아 있다. 그는 〈나의 회고록〉(민교사, 1959)이라는 책에서 1946년 3월6일 〈대구시보〉와의 인터뷰 내용을 술회했다.

“경찰 현 진용 쇄신에 대하여 … 민족반역자, 친일파라 운운하나 과거 36년 동안 우리들의 눈물겨운 팔자를 생각하건대 거의 ‘오십보 소백보’ 격이라고 본다. 대구폭동 원인으로 경무부장인 내가 친일경찰관들을 많이 등용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하지만, 일제 통치 하의 친일은 두 가지 종류 … 하나는 직업적인 친일파였고, 또 하나는 자기 가족과 생명을 보호하기 위한 연명책으로 택한 부류다. 많은 사람들이 ‘프로-잽’(친일)이 아니라 ‘프로-잡’(구직·생존)이라고 할 수 있다. 진짜 친일파인 ‘프로-잽’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이에 대해 친일문제 전문가인 정운현 〈오마이뉴스〉 편집국장은 “유석이 항일운동으로 고생하고 해방 후 훈장도 받았지만 일제 말기 임전대책협의회 창립 연설 등 친일행적은 결국 변절한 걸로 봐야 한다”며 “(친일 행적이) 몇 차례였느냐가 문제가 아니고, 정신사적인 면에서 한번 변절한 것을 돌이킬 수는 없는 것 아닌가”라고 되물었다.

신중론도 있다. 지난 8월 〈죽은 자들을 위한 변호-21세기의 친일문제〉라는 책을 펴낸 소설가 복거일씨는 “이번 논란은 ‘친일파 단죄’의 단순논리의 위험성을 드러낸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유석의 민족주의 운동에 대해서는 상식 수준에서 알고 있으며, 고향(충남 아산) 어르신들로부터 유석이 천안·아산 지역에 꾸린 민족운동 조직의 활동에 대한 말을 들은 적이 있으나 친일 의혹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고 밝혔다. 그는 “친일파 문제를 자기 주장에 이용하는 사람들이 많고 객관적으로 다루기도 쉽지 않다. 예컨대, 반민특위 재판에서 무죄로 나온 사람들에 대해서도 계속 친일파 명단에 올려놓고 물고 늘어지는 것은 옳지 않다”며 “이제는 역사학의 영역에 맡기고 그 연구 결과와 평가를 존중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한편, 민족문제연구소 관계자는 “친일 여부를 평가하는 엄격한 기준이 만들어진 이후 공청회 등을 거쳐 ‘친일인명사전’을 발간할 계획”이라며 “조병옥 박사의 경우도 몇가지 친일행적이 있지만 지금 단계에서 ‘친일파’ 여부에 대한 단정적 평가를 내리기는 이르다”며 조심스런 반응을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