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지마을 택배 배송 사업을 하는 양구지역자활센터 직원들이 산골 마을을 찾아가 주민들에게 택배를 전달하고 있다. 양구군 제공
“평생 처음 택배를 집 앞에서 받아 본 날이 지금도 잊히지 않네요. 홈쇼핑도 마음껏 할 수 있게 됐습니다.”
강원도 양구군 방산면 천미리에 사는 주민 박인순(74)씨는 “택배를 시켰더니 어느 날 집 앞에까지 택배차가 와서 깜짝 놀랐다. 택배 오는 날에 맞춰 읍내라도 한번 가려면 택시를 불러야 하는데 택시가 오는 데 50분, 가는 데 50분이나 걸려 편도로만 2시간 가까이 걸려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다. 너무 고맙다”며 반겼다.
로켓배송과 당일배송을 넘어 1시간 배송, 10분 배송 등 ‘초고속 배송’ 시대지만, 택배 사각지대 주민과 지방자치단체들이 여러 아이디어로 불편 해소에 나서고 있다.
대표적인 곳이 1944년 화천댐 준공으로 파로호가 만들어지며 ‘육지 속 섬’이 된 강원도 양구군이다. 군청에서 조사한 결과 집 앞까지 택배가 배달되지 않아 불편을 겪는 주민이 양구군에만 7개 마을에 554명(360가구)에 달했다.
오지마을 택배 배송 사업을 하는 양구지역자활센터 직원들이 산골 마을을 찾아가 주민들에게 택배를 전달하고 있다. 양구군 제공
주민과 지자체는 택배 사각지대에서 벗어나려 머리를 맞댔다. 시행착오 끝에 양구지역자활센터를 활용하자고 생각을 모았다. 지난해 2월 문을 연 양구지역자활센터는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들을 위해 각 지역 경로당에 쌀 배달 서비스를 하고 있다. 지자체와 주민들은 이 서비스를 조금만 확장하면 오지마을 주민을 위한 택배 서비스도 가능하다는 데 착안했다.
그리고 지난 2월. 양구군 중재로 양구지역자활센터는 민간 택배업체 영업소들과 ‘택배 미배달 지역 해소를 위한 배달업무 위·수탁 협약’을 하고, 3월부터 본격적인 업무를 시작했다.
오지마을 배송을 자활센터가 대신 맡되, 배송에 따른 이익은 택배업체와 자활센터가 일정 비율대로 나눴다. 택배업체로선 적자 노선을 넘겨 민원도 해결해 수수료를 챙기고, 자활센터는 새로운 사업영역을 개척하게 됐다. 서로에게 ‘윈윈’이었던 셈이다.
양구군은 원활한 사업 추진을 위해 냉동탑차 구매비 3천만원을 내놨다. 여기에 기름값 등 명목으로 연간 500만원씩 지원하기로 했다. 결국 일회성 경비(차량 구매비)를 빼면 연간 500만원 정도 예산으로 오지마을 택배 민원을 해결하게 된 것이다.
지역자활센터 활용 아이디어가 나오기 전까지 택배 문제는 지역의 숙원이자 난제였다.
주민들은 “왜 우리는 남들처럼 집 앞에서 택배를 받아 볼 수 없느냐”며 민원을 제기하지만, 택배업체들로서는 교통이 불편한 오지마을은 배달할수록 손해라고 난색을 표했다.
양구군은 마을 대표와 택배영업소장이 참여하는 간담회를 두차례나 열었지만 접점을 찾지 못했다. 무인택배함이나 마을회관 일괄 배송 등 대안도 나왔지만, 아이디어에 그쳤다. 물품 관리와 분실 때 책임 문제 등으로 양쪽 모두 반대했기 때문이다.
군청이 택배업체가 손해를 보는 금액만큼 직접 예산을 지원하는 방안도 검토했다. 그러나 이 방안은 선거법에 발목이 잡혔다. 선거관리위원회는 “법령에 근거하지 않은 금품이나 서비스 제공은 선거법의 기부행위 등에 해당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고민 끝에 찾은 방안이 지역자활센터를 활용하는 것이었다.
정종우 양구군 교통행정담당은 “양구뿐 아니라 전국 오지마을 상당수가 비슷한 문제를 겪고 있을 것이다. 지방자치단체나 정부에서 지원하지 않으면 오지마을 택배는 해결 방안이 없다”고 말했다.
오지마을 택배 배송 사업을 하는 양구지역자활센터 직원들이 산골 마을 택배를 분류하고 있다. 양구군 제공
숙원이 해결되자 주민들은 만족감을 표시했다. 말 그대로 집 앞까지 물건이 오는 ‘택배’ 서비스를 받을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상무룡리에 사는 조성호(64)씨는 “코로나19 시대에는 택배가 가장 기본적인 복지다. ‘쿠세권’(쿠팡의 로켓배송 가능 지역을 일컫는 말)까지는 바라지도 않는다. 오지마을 주민들의 가장 가려운 부분을 긁어줘서 속이 다 시원하다”고 말했다. 조씨는 오지마을 택배 지원 사업 이전에는 택배를 찾으러 차를 타고 양구읍까지 꼬불꼬불한 길을 따라 36㎞를 가야 했다. 왕복 2시간이 꼬박 걸렸다.
양구읍 수인리에 사는 허은혜(28)씨도 “그동안 또래들에게 ‘집 앞까지 택배가 오지 않는다’고 말하면 다들 깜짝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도서·산간 지역에 붙는 추가 요금을 낼 테니 보내달라고 해도 택배를 받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주민들의 호응 속에 ‘물동량’도 늘고 있다. 7개 마을 30여건에 불과했던 하루 택배 물량이 서비스를 가동한 뒤인 지난 4월에는 하루 40여건으로 늘어났다. 6월 들어서는 하루 50여건에 이른다. 이경우 양구지역자활센터장은 “처음엔 홍보가 덜 되다 보니 물량이 별로 없어 차량 1대에 2명이 배송을 시작했다. 그러나 최근에는 물량이 많아져 차 2대에 6명이 배송하고 있다”고 말했다.
택배 노동자 입장에서도 적자인 걸 알면서도 택배 하나 배달에 수십㎞를 달려가지 않아도 되고, 주민 민원에 시달리지 않아도 되니 도움이 됐다. 국민기초생활보장 수급자와 차상위계층 등 어려운 형편이지만 노동을 통한 자립을 꿈꾸는 자활센터 직원들에게도 새로운 일거리와 수입원이 생겼다.
김형묵 자활센터 배송사업반장은 “수도권 아파트처럼 지상 출입 금지를 둘러싼 주민과 택배 배송업체의 갈등은 남의 나라 이야기다”라며 “택배를 들고 가면 ‘고생한다’거나 ‘커피 한잔 하고 가라’며 감사하다는 말을 많이 듣는다. 말 한마디라도 너무 고맙고 보람되다”고 말했다.
충남과 전남은 섬마을 주민들을 위해 ‘주소 기반 드론 배송’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다. 완도군 제공
양구가 복지전달 체계를 활용해 택배 문제를 해결했다면, 섬이 많은 전남과 충남 지역에서는 신기술로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
섬이라는 또 다른 택배 사각지대를 끼고 있는 전남과 충남은 ‘주소 기반 드론 배송’ 시스템 구축에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2018년 행정안전부 공모사업에 선정된 전남과 충남은 주요 지점에 드론배달점을 설치한 뒤 드론 전파장애와 비행 장애물 등을 체크하면서 시험비행을 진행 중이다. 충남에서는 지난해 11월 서산 웅도선착장에서 이륙한 드론이 3.3㎞ 떨어진 대우도에 물품을 배송하고, 이후 2.0㎞ 떨어진 고파도에 또다시 물품을 전달한 뒤 3.2㎞를 날아 웅도선착장에 되돌아오는 시험비행을 성공적으로 마쳤다. 걸린 시간은 30분에 불과했다.
김훈곤 충남도청 토지관리과 주무관은 “현재는 드론택배 시대 개막을 위한 운영 매뉴얼과 시스템을 구축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2024년께 섬마을 드론택배 서비스를 시범적으로 제공하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국민권익위원회가 6월15일 제주공항 회의실에서 도서 지역 택배비 부담 완화를 위한 간담회를 개최했다. 국민권익위 제공
제주도에서는 육지에 견줘 비싼 택배비 문제를 풀려 한다. 지난해 제주도가 진행한 ‘도서 지역 추가 배송비 부담 실태조사’를 보면 제주지역 평균 배송비는 건당 2528원으로 육지의 평균 417원에 견줘 6배 이상 높다. 더불어민주당 위성곤 의원(제주 서귀포시)이 지난 4월 공개한 자료를 봐도, 제주도민은 1명당 해마다 10만원, 제주도 전체로는 600억원 이상을 육지보다 더 택배비로 내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승철 제주연구원 자치경제사회연구부장은 “이전에도 그랬지만 코로나19 이후 택배는 더 일상화된, 보편적 서비스가 됐다. 물류서비스 격차 해소를 위한 국가나 지방자치단체의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박수혁 기자
ps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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