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속학자 나경수 전남대 명예교수는 “땅속의 감자를 캐며 씨알을 살피듯, 민속현장에 묻혀 있던 민속을 캐내면서 반평생 이상을 살았다”고 말했다.
“진도 풍속은 죽음과 관련한 상장례 문화를 부각합니다. 독특한 문화가 나온 배경에 주목해 보고 싶었습니다.”
<진도지역의 지정학적 배경과 민속문화적 대응>(민속원)이라는 책을 펴낸 나경수(65) 전남대 명예교수(국어교육과)는 8일 이렇게 말했다. 그는 책에서 진도 민속문화와 예술의 의미와 역사를 ‘진도의 문화적 전경과 민속문화의 역사적 배경’, ‘굿과 사장의례’, ‘마을신앙’, ‘예능민속’ 등 네 갈래로 나눠 다뤘다.
진도의 상장례 문화는 다른 지역보다 절차가 다양하고 독특하다.
진도에는 씻김굿, 다시래기, 만가 등이 상장례와 관련된 민속이 많다. 진도 동제는 거의 거릿제(거리제사)로 불린다.
거릿제는 길거리에 떠도는 잡귀잡신이 많다는 진도 주민들의 생각이 담긴 의식이다. 나 교수는 “해난사고가 지극히 잦았고 역사적으로 큰 전란을 여러 차례 겪었던 역사와 무관하지 않다”고 했다. 그는 “예를 들면 역사에선 이순신 장군의 명량대첩만 기억할 뿐, 당시 왜구들의 공격으로 쑥대밭이 됐던 진도 민중의 아픔은 도외시됐다”며 “이런 아픔이 진도의 독특한 민속문화, 예술의 바탕이 됐다”고 말했다.
진도 7곳 읍·면을 두개의 문화권으로 나눠 조명한 점도 눈길을 끈다.
나 교수는 “고군·의신·군내면과 진도읍 등 동부권은 유교문화권으로 볼 수 있다. 임회·지산·조도면은 서부권으로, 민속음악이 더 발달했다. 한문 중심으로 이뤄진 동부권은 서화·미술 등이 발달했다”고 말했다.
현대서화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소전 손재형과 남종화 대가인 의재 허백련은 동부권 출신이다. 그런데 민속예술인 고 박병천, 명창 신영희, 씻김굿 명인 송순단씨 등은 서부권에 뿌리를 두고 있다. 나 교수는 “동부권은 육지문화의 영향을 받기가 쉬웠고, 서부는 순수한 도서지역의 문화를 간직할 수 있는 곳이었다”고 했다.
나 교수는 진도 문화에는 보수성, 개방성, 창조성이 집약되어 있다고 했다. 그는 보수적 특징을 보여주는 민속으로 ‘다시래기’를 꼽았다. 다시래기는 출상하기 전날 초상집에서 상두꾼들이 상주와 유족의 슬픔을 덜어주려 벌이는 장례 놀이다. 그는 “상갓집 놀이인 다시래기는 전통 규범논리로 보자면 야만적 문화로 보이지만, 다른 지역에서는 자취를 감춘 민속문화가 여전히 진도에서는 전승되어 오고 있다는 점에서 ‘보수적’”이라고 했다.
다른 지역과 달리 두 손에 북채를 들고 연행하는 진도북춤은 진도의 개방성을 보여준다고 했다. 그는 “전문적인 유랑연예집단이었던 남사당패의 영향을 받아들인 것으로, 예능적 감수성이 예민한 진도인들의 수용능력과 직결된다”고 말했다. 창조성의 사례로는 서화적 전통을 꼽았다.
이번 책은 나 명예교수의 100번째 저서다. 진도학회 회장이기도 한 그는 “늘 애달픈 느낌을 받는다”는 고향의 민속과 예술을 100번째 책에 담았다. “눈에 보이는 ‘전경’으로 나타난 진도 민속이나 예술의 연원을 (독자와) 함께 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정대하 기자
daeha@hani.co.kr, 사진 민속원 제공
민속학자 나경수 교수가 낸 <진도지역의 지정학적 배경과 민속문화적 대응>이라는 책의 표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