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여년전 섬 가꿀 때 서울서 옮겨와…유래 주장 엇갈려
해마다 수많은 연인들이 찾는 ‘낭만의 섬’인 강원 춘천시 남이섬 한켠에 조선 후기 궁이나 관아 건물로 추정되는 목조 건물이 40여년째 자리를 지키고 있어 이 건물의 유래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남이섬 유원지 동쪽 끝에는 ‘정관루’(사진)라는 이름이 붙은 목조 건물 한 채가 있다. 정면 7칸, 측면 4칸 규모의 이 건물은 현재 국악 공연장 등으로 사용되고 있다.
남이섬 유원지 쪽은 이 건물이 1965년 이곳 땅을 사들이고 나무를 심기 시작할 무렵 서울에서 옮겨온 것이라고 밝혔다.
강우현 ㈜남이섬 사장은 “처음 남이섬을 가꾸기 시작한 민병도 선생이 서울 종로구 안국동 풍문여고 자리에 있던 건물을 이곳으로 옮겨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말했다. 당시 풍문여고 자리에는 최근 경기 고양시의 한양골프장 등에서 건물 일부가 발견된 안동별궁이 있었다. 고종 18년(1881)에 지어진 안동별궁은 명성황후의 정치적 힘을 상징하는 궁이었으나, 왕조의 몰락과 함께 1936년 여흥 민씨 후손들과 금광으로 큰 부자가 된 최창학에게 불하·매각됐다.
이 건물이 포도청에서 옮겨온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이 건물을 남이섬에 옮겨짓는 공사에 직접 참여했다는 한 목수는 “1966년부터 3년여에 걸쳐 옮겨지었는데 대목수 이광규 선생이 공사 책임자를 맡았다”며 “이 선생은 이 건물이 서울의 포도청 건물을 옮겨온 것이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조선시대의 경찰청에 해당하는 포도청은 좌포도청과 우포도청으로 나뉘어 현재 서울 종로구 단성사 일대와 동아일보사 일대에 자리하고 있었다.
최근 이 건물에 대해 조사를 벌인 황평우 문화연대 문화유산위원장은 “직각기둥이 아닌 원기둥을 사용한 것이나 주춧돌을 다듬은 방식, 목재를 짜맞춘 방식 등을 보면 조선 후기에 지어진 궁이나 관청 건물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며 “건물 가운데에 넓은 방이 있고, 방 양쪽으로 툇마루가 있는 구조로 가정집에서는 볼 수 없는 양식”이라고 말했다.
문화재 전문가들은 한국전쟁이 끝난 뒤 서울 시내가 본격적으로 개발되면서 수많은 문화재급 건물들이 해체됐고, 이 과정에서 일부 건물들이 당시 고위직 인사들에 의해 사유지로 옮겨진 것으로 보고 있다.
유신재 기자 ohora@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