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확산을 맞아 송아무개씨와 대학친구들이 화상회의 프로그램 ‘줌’을 통해 비대면 송년회를 하는 모습.
“친구들! 오늘 반가웠어. 밤도 깊었고 술도 취했는데, 집에 어떻게 갈까 걱정하지 않아도 되니까 정말 좋네. 앞으로 우리 이렇게 종종 만나자.”
송아무개(55)씨는 토요일인 지난 18일 밤 대학친구들과 송년회를 했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과 웃고 떠들며 술도 꽤 마셨다. 하지만 잔을 부딪칠 수 없었다. 각자 자신의 집 컴퓨터 앞에 앉아서 온라인으로 진행된 비대면 송년회였기 때문이다.
코로나19 확산 뒤 비대면 수업과 회의가 일반화하는 가운데, 최근 연말을 맞아 비대면 송년회도 늘어나고 있다. 확진자·위중증 환자 급증으로 사적모임 인원제한 등 방역수칙이 강화되는 가운데, 비대면 송년회 만족도도 높아지는 분위기다.
애초 송씨와 그 친구들은 12월19일 저녁 서울 홍익대 근처 카페에서 송년회를 하기로 지난달 14일 결정했다. 결정 당시는 단계적 일상회복(위드 코로나)이 진행되던 때로 동창회 등 사적모임 참석인원이 수도권은 10명, 비수도권은 12명까지 허용됐다. 송년회가 예정된 12월엔 사적모임이 더욱 자유로워질 것이라는 기대도 있었다.
하지만 코로나19가 기승을 부리며 사적모임 허용인원은 지난 6일부터 수도권은 6명, 비수도권은 8명으로 제한됐고, 18일부터는 수도권과 비수도권 모두 4명으로 제한됐다. 식당과 카페도 저녁 9시면 문을 닫게 됐다. 송년회 취소가 불가피한 분위기였는데 송씨 친구인 이아무개(54)씨가 온라인 화상회의 프로그램 줌을 이용한 송년회를 제안했고, 친구들은 다들 “재미있겠다”며 이에 호응했다.
18일 저녁 열린 온라인 송년회는 인원, 지역 제약이 없었기에 서울·부산·경기·경남·제주 등 전국 곳곳의 친구들이 모였고, 외국에 사는 친구도 참석했다. 소주·맥주·포도주·전통주 등 각자 취향에 맞게 준비한 술과 안주를 먹으면서 송년회가 진행됐다. 물잔을 앞에 두거나, 늦은 저녁식사를 하는 친구도 있었다.
컴퓨터 화면을 보며 화상으로 인사하고 건배하는 게 처음엔 어색했지만, 금세 익숙해졌고 다들 새로운 경험에 즐거워했다. 오랫동안 만나지 못한 친구들을 화상으로나마 만나는 것이 무엇보다 기뻤다. 저녁 9시부터 밤 11시까지로 예정됐던 송년회는 이야기가 길어지며 자정 넘게까지 이어졌다. 마칠 때는 대부분 거나하게 취했는데, 한결같이 “집에 갈 걱정하지 않아서 좋다”며 웃으면서 헤어졌다.
줌 프로그램 사용에 익숙하지 않은 친구들은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시간 맞춰 입장하지 못하는 친구들 때문에 9시20분쯤에야 송년회는 시작할 수 있었다. 줌 프로그램을 설치하지 못해서 결국 참석하지 못한 친구도, 컴퓨터 카메라를 켜지 못해서 자신의 모습 대신 영화배우 제임스 딘 사진을 띄우고 참가한 친구도 있었다. 불안정한 통신망 때문에 입장과 퇴장을 반복하는 경우도 있었다.
온라인 송년회에 참석했던 이아무개(54)씨는 “여러 사람이 한꺼번에 말을 하면 대화를 나누기 어려울까 걱정했는데, 전혀 그렇지 않았다. 끼리끼리 별도로 이야기하는 이른바 ‘지역방송’이 발생하지 않아서, 여러 사람이 실제로 만나서 이야기하는 것보다 오히려 더 대화에 집중할 수 있었다. 다른 모임에도 온라인 송년회를 해보라고 권하고 싶다”고 말했다.
서아무개(55)씨도 “식당이나 술집 등에서 모임을 하면 방역수칙을 아무리 철저히 지키더라도 안심할 수 없다. 그런데 온라인 모임은 다른 사람을 전혀 신경 쓸 필요가 없어 좋았다. 멀리 떨어져 사는 친구를 만날 수 있었던 것도 좋았다. 코로나19 사태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시도한 것이지만, 사적모임이 자유로워지더라도 해볼 만하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글·사진 최상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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