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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애들인데 왜 안 주냐!”
지난해 11월29일 오전 10시 충남 논산시 시청 안 학대신고대응센터. 한 50대 남성이 고함을 질렀다. 보호시설로 데려간 자녀들을 내놓으라는 얘기였다.
“아버님, 아이들이 다시 집에 돌아가고 싶지 않아 해요.”
아동학대 전담공무원이 나서서 달래고 상황을 설명했지만, 술 취한 이 남성의 ‘내 아이 내놓으라’는 주장은 계속됐다.
“아버님, 아이들이 본인 것이라고 생각하세요?”
“그럼, 내 것이지.”
한참을 실랑이한 끝에 겨우 남성을 되돌려보낸 직원이 말했다.
“센터로 찾아와 아이를 달라고 우기는 경우가 제법 있어요. 저 아버지는 이달에만 벌써 네번째인데, 또 오실 거예요.”
센터를 찾은 이 남성은 기초생활수급 대상자였다. 하지만 심각한 알코올중독으로 정부지원금도 술값으로 모두 써버릴 정도여서, 이웃이 아동학대가 의심된다고 신고했다고 한다. 대응센터는 실태를 조사해 방임으로 인한 학대로 판단하고, 아이들을 보호시설로 옮겼다.
보건복지부가 지난해 8월 내놓은 ‘2020년 아동학대 연차보고서’를 보면, 2020년 아동학대 신고 건수는 총 4만2251건이다. 이 가운데 73%인 3만905건이 실제 아동학대로 판단됐다. 우리나라에서 하루에 아동학대가 85건가량 일어나고 있는 셈이다. 학대 행위자 82%는 부모였고, 절반 가까이(48%)는 신체·정서·방임 등이 결합된 복합적 학대였다. 성학대가 더해지는 경우(2.7%)도 있다. 아동학대 조사 업무는 2020년 10월부터 민간기관인 아동보호전문기관에서 시·군·구로 이관됐다. 이런 가운데 충남 논산시가 학대 대응과 관련한 새로운 시도를 시작해 주목을 받고 있다.
시작은 지난해 5월 학대신고대응센터를 만들고, 학대 전담공무원 인력을 대폭 증원하면서다. 기초단체 아동학대 전담공무원의 수는 전년도 신고 건수를 기준으로 보건복지부와 행정안전부가 협의해 정하는데, 지난해 194건이 접수된 논산시의 전담공무원 수는 3명이다. 하지만 황명선 논산시장(18일 퇴임)은 센터를 발족시키며 담당 공무원 수를 팀장 포함 9명으로 늘렸다. 학대예방 경찰관 1명까지 더해 10명이 학대신고대응센터에서 일한다.
대신 센터에서 일하는 전담공무원들은 아동학대뿐 아니라 노인·여성·장애인 학대 신고가 접수되면 현장에 출동해 초동 대처한다. 논산에서 일어나는 모든 학대 사건을 다루는 셈이다. 이를 위해 경찰과 아동보호전문기관뿐 아니라, 아산에 있는 노인보호전문기관, 공주에 있는 장애인권익옹호기관, 논산 가정폭력상담소 등과도 협력체계를 유지하고 있다. 학대 신고 대응이 전부가 아니다. 보통의 지방자치단체들과 달리 사건을 아동보호전문기관에 넘긴 뒤에도 사례를 지속해서 관리한다. 센터 출범 뒤 지난해 11월까지 6개월 동안 접수된 신고 건수는 △아동학대 66건 △가정폭력 7건 △노인학대 9건 △장애인학대 3건 등이다.
우철호 논산시 온가정지킴팀장은 “신고가 접수되면 조사 뒤 보호관리계획을 세우고 아동보호전문기관에 사례를 넘긴다. 주거환경 개선이 필요하거나 기초수급 대상 등록이 필요하면 행정기관과 협력해 돕는다”며 “아동보호전문기관 별개로 한달에 한두번씩 확인·점검도 한다. 재발을 막기 위해 더 관리하는 차원”이라고 말했다.
‘내 아이 돌려달라’는 남성과 실랑이가 있었던 지난해 11월29일 오후, 한기석 주무관이 센터 사무실을 나섰다. 10월에 이웃으로부터 신고가 접수돼 관리 중인 학대 피해자를 살피기 위해서였다.
“아버지가 아들 손을 묶어 움직이지 못하게 한다”는 게 신고 내용이었다. 현장에 출동해 보니, 아버지가 중학생 아들을 결박한 것은 사실이었다. 그런데 사정이 있었다. 아버지는 “아들이 할머니를 계속 때려 어쩔 수 없이 아들을 묶어놨다”고 말했다. 할머니는 중학생 손자를 “감당할 수 없다”고 했다. 지적장애를 가진 아이는 수시로 주변 사람을 때리고, 소리를 질렀다. 한 주무관은 “할머니 또한 피해자”라고 안타까워했다. 학대 사건은 가해자와 피해자가 명확히 나뉠 것 같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센터는 이 가정을 아동학대·노인학대 사례로 보고 관리 중이다. 아이는 이날 한 주무관을 만난 자리에서도 가만있지 못하고 주변 사람들을 계속 때리고 꼬집었다. 한 주무관은 “한 가정 안에 아동학대와 노인학대가 복잡하게 얽혀 있는 사례다. 중학생 아들은 시설 입소가 필요하지만, 높은 폭력성 때문에 어느 곳에서도 받아주지 않아 애를 먹는 중이다. 방법을 찾으려고 노력 중”이라고 말했다.
같은 날 오후 이형주·명상필 주무관도 “10월에 만난 6살 아이를 보러” 가기 위해 발길을 재촉했다.
“아이가 자지러지게 운다”는 이웃의 신고로 관리를 시작한 사례였다. 간질을 앓는 엄마는 아이를 혼자 키우고 있는데, 엄마는 아이가 먹고 싶어 한다는 이유로 아침마다 아이에게 아이스크림을 먹여 아이는 자주 배탈이 났다. 엄마는 육아에 서툴렀고, 또래보다 언어발달이 늦은 아이는 자주 떼를 쓰고 울었다.
센터는 신체·정서 학대와 방임이 복합적으로 일어난 사례로 보고 조사 결과를 아동보호전문기관에 넘겼지만, 사례관리를 이어가고 있다. 이 주무관은 “집에서 담배 냄새가 여전해 ‘아이 옆에서 담배를 피우면 안 된다’고 다시 주의를 시켰다”며 “언제든 재학대가 일어날 수 있는 상황이라 아동보호전문기관에 사례관리를 넘긴 뒤로도 정기적으로 찾아가 살펴보고 있다. (다른 시·군보다) 인력이 상대적으로 많아 자기가 맡은 건을 좀 더 책임감 있게 챙길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학대사건 특성상 야근이 필수여서 센터에서는 4조 4교대 근무가 기본이다. 먼저 하루는 8시간 일한 뒤 다음날엔 24시간을 일하고, 다음 이틀은 쉬는 방식으로 철야 근무를 이어간다.
센터 개소 전에는 주중 매일 아침 9시부터 저녁 6시까지 근무했지만, 언제 신고 전화가 올지 몰라 전담공무원들은 퇴근 뒤에도 대기 상태였다고 한다. 한 주무관은 “한밤에 몇번 출동해 보니, 앞으로 어떻게 살지 막막했다”며 “그런데 과감하게 인력을 늘려준 결과 4개 조 시스템이 만들어졌다. 그러지 않았으면 정말 힘들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가정 안에서 일어난 모든 학대를 통합 관리하는 논산시의 시도는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긍정적인 평가를 받는다. 장하나 ‘정치하는엄마들’ 활동가는 “시민단체도 아동학대나 가정폭력에 제대로 대응하기 위해선 통합관리가 필요하다는 주장을 계속해왔다”며 “사례관리를 할 때도 각각의 사람으로 접근하는 것보단 한 가정으로 접근하는 게 필요하다. 그런 측면에서 논산시의 시도는 의미가 크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영주 변호사(전 법무부 여성아동인권과장)는 “가정 내 폭력과 학대는 복잡하게 섞여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가정을 단위로 접근하는 것이 맞다”며 “이를 위해 논산시가 인력을 늘리는 등 투자하고 노력한 부분은 매우 높게 평가할 만하다”고 했다.
글·사진 최예린 기자 floy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