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6월24일 오전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에서 유엔군 전사자 이름 앞에 한 송이 국화꽃이 놓여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70여년 동안 한국전쟁 참전 사실을 인정받지 못했던, 미국 중앙정보국(CIA) 소속 북파 첩보원을 참전유공자로 인정해야 한다는 중앙행정심판위원회(중앙행심위) 판단이 나왔다.
국민권익위 소속 중앙행심위는 1951년 1월 한국군에 입대해 미국 중앙정보국 소속으로 배치됐고, 북파 첩보원 부대에서 한국전쟁에 참전했지만 참전유공자 등록을 거부당한 ㄱ(종교음악 작곡가)씨에 대한 국가보훈처의 처분을 취소했다고 7일 밝혔다.
지금껏 참전유공자 인정을 받지 못하던 ㄱ씨 상황이 달라진 것은 2008년 미국 정부가 ‘저도 사건 보고서(Investigation of incident at Cho-do)’의 기밀분류를 해제하면서다. 이 보고서는 미국 정부 관할인 중앙정보국 북파공작원 훈련장소인 저도에서 있었던 일을 담고 있다. 1952년 8월2일 이승만 당시 대통령이 탄 배가 ‘저도’에 다가서자 중앙정보국 소속 부대원들이 경고사격을 했고, 이에 한국 정부는 해당 부대원들의 신병을 인도받았다. 이후 군법회의는 이들에 대해 2년6개월 형을 선고했다. ㄱ씨도 당시 부대원 중 하나였다.
이를 근거로 지난 2019년 ㄱ씨는 국가보훈처에 한국전쟁 참전유공자 등록을 신청했다. 하지만 국방부는 과거 군법회의 기록물 등을 분석해 “‘저도 사건 보고서’에 등장하는 부대원을 특정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ㄱ씨의 참전 사실을 인정하지 않았다. 국가보훈처도 국방부 결정에 근거해 ㄱ씨의 등록을 거부했다. 이에 ㄱ씨는 2020년 “국가보훈처 결정이 위법·부당하다”며 행정심판을 청구했다.
중앙행심위는 제출된 자료 외에 ‘저도 사건 보고서’ 기밀분류 해제 전인 지난 1996년 ㄱ씨가 한 음악잡지와 했던 인터뷰에서 “1·4 후퇴 때 월남해 군에 입대했고, 정보 계통의 첩보원이었다”, “낙하산을 타야만 하는 부대였다” 등의 말을 했던 점에 주목했다. 또 ㄱ씨는 2018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예술인 구술채록사업에서도 입대 경위를 비롯해 오인사격에 대해 구체적이면서 일관되게 진술했다고 한다.
권익위 담당 조사관은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결정문에서 청구인의 미군 소속 신분을 인정하고, 국가보훈처 처분이 위법·부당하다고 밝혔다. 국방부·국가보훈처가 이번 중앙행심위 결정을 따라 ㄱ씨의 참전유공자 등록을 받아들일 것”이라고 말했다. 민성심 권익위 행정심판국장은 “이번 사건에서 중앙행심위는 증거조사권을 활용해 국민의 입증책임 부담을 크게 덜게 한 사례”라고 평가했다.
김양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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