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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전국일반

“나무 뜻 잘 따라야 고로쇠물 마실 수 있죠”

등록 2006-02-20 22:32

겨우내 산속서 파이프 설치 등 매달려야 채취
가평군에만 작목반 9개…“나무 건강보호 노력”
17일 찾아간 경기 가평군 상면 서리산 기슭, 계곡을 따라 내려온 플라스틱 파이프가 고로쇠 수액을 담는 파란색 물탱크에 꽂혀있다. 등산로도 나 있지 않은 계곡을 파이프를 따라 올라갔다. 산 아래에는 봄볕에 땅이 녹아 질척였지만, 계곡에 들어서니 눈이 아직도 쌓여있다. 앞을 가로막는 나뭇가지에 긁히고 눈길에 미끄러지며 1㎞ 가량 올라가니 나무에 매달려 일하고 있는 유광열(50)씨의 모습이 보였다.

두툼한 솜바지와 웃옷, 털장화로 중무장한 유씨가 전기드릴로 고로쇠나무에 0.5㎝ 깊이의 구멍을 뚫었다. 구멍에 가느다란 대롱을 꽂아 산 아래까지 이어진 파이프에 연결하자 나무에서 수액이 한 방울씩 흘러내렸다. 유씨는 “이 물을 받으려고 겨우내 휴일도 없이 산에서 지냈다”며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유씨 등 축령산고로쇠작목반원 10명은 지난해 11월부터 축령산과 서리산, 주금산, 대금산에서 살다시피 했다. 수액은 2월 중순에나 나오지만, 수액을 받을 파이프를 미리 설치해둬야 하기 때문이다. 이날 유씨가 일하는 계곡에 놓인 파이프의 길이는 3㎞. 유씨네 작목반은 산 곳곳에 이런 파이프 20개를 설치했다. 수액이 나오기 시작하면 작목반원들은 고로쇠나무 1천여그루에 대롱을 꽂아 파이프에 연결한다. 그러면 수액은 파이프를 따라 흘러내려와 산기슭의 물탱크에 모인다. 그렇다고 이제 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도중에 날씨가 추워지면 나무에 뚫은 구멍이 오그라들면서 대롱이 빠지기 때문에 매일같이 산을 오르내리며 대롱을 손봐야 한다.

수액 채취가 고로쇠나무를 괴롭히고 자연을 순리에 어긋나는 행위라는 환경운동가들의 지적에 대해 작목반은 “나무의 건강을 보호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나무의 생장에 악영향을 줄이기 위해 반드시 해를 걸러 수액을 받으며, 산림청의 규정도 잊지 않고 있다. 또 뿌리가 상하지 않도록 땅에서 30㎝ 이상 떨어진 높이에 구멍을 뚫고, 나무 몸통의 지름이 10㎝보다 작으면 수액을 받지지 않는다. 나무 크기에 따라 뚫을 수 있는 구멍의 개수도 제한하고 있다. 수액채취를 하지 않는 철에는 작목반원들이 번갈아가며 산림훼손을 감시하며, 나무를 타고 올라가 말라죽이는 덩굴도 잘라낸다.

고로쇠물은 18ℓ들이 1통에 5만원을 받고 판다. 겨우내 고된 노동의 댓가로 작목반원들한테 돌아오는 수입은 700~800만원 수준이다. 유씨는 “겨울에는 시골에 할 일이 없어 술이나 마시고 노름판이나 벌였는데, 10년 전 고로쇠물을 채취해 내다팔기 시작했다”며 “고되지만 제법 큰 돈을 벌 수 있어서 일을 하겠다는 사람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 가평군에만 고로쇠물을 채취하는 작목반이 9개나 된다.

고로쇠물이 위장병, 신경통, 고혈압 등에 좋다고 해서 봄마다 이를 찾는 사람이 늘고 있지만, 공급은 원활하지 않다. 변덕스런 봄날씨에 따라 고로쇠물도 나오다 말다 하기 때문에 주문이 들어와도 재고가 없어 팔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또 초봄에 1달 정도만 나오고, 유통기한이 보름 정도로 짧기 때문에 때맞춰 주문이 들어오지 않으면 고로쇠물을 고스란히 버려야 한다.

축령산고로쇠작목반 안병락 대표는 “구름이 끼고 바람이 조금만 불어도 수액이 나오지 않는다“며 “사람 뜻이 아니라 나무 뜻대로 되는 일이기 때문에 고로쇠물을 마시려면 인내심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문의 축령산고로쇠작목반 (031)585-8959, 가평군농협 (031)581-2391.

유신재 기자 ohor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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