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광역시 무형문화재 제11호 판소리 고법 보유자 감남종 명인. 이산고법동우회 제공
광주광역시 무형문화재 제11호 판소리 고법 예능 보유자인 이산 감남종 명인이 2일 오후 8시40분 별세했다. 향년 91.
전남 해남군 삼산면 출신인 감 명인은 1945년 임방울 명창의 소리에 북을 쳤던 고명진 선생에게 2년간 고법(鼓法·북을 치는 법) 기본 가락을 배웠다. 어린 시절부터 곧잘 북을 매고 다녀 해남에서 ‘애기명고’로 불리기도 했던 감 명인은 광주 동중학교(현 광주고등학교)로 진학한 뒤에도 방학때면 해남 본가로 가 북 공부에 심혈을 기울였다. 그러다가 훗날 우리나라 국악계 최초로 국가 지정 무형문화재 판소리 고법 예능 보유자로 지정(1978년)됐던 김명환 명인이 1954년 신병 치료차 대흥사 인근 마을에 머물렀던 4년여동안 고법을 전수받았다. 감 명인 호 이산은 일산이라는 호를 썼던 김명환 선생이 “내 고법을 이으라”는 의미로 지어준 것이다.
광주광역시와 광주문화재단은 지난해 전통문화관 주관으로 감남종 선생을 중심으로 한 판소리고법 보고서를 냈다. 이산고법동우회 제공
감 명인은 1984년 전국 고수대회에서 명고부 장원상을 받은 뒤 명고로 알려지기 시작했으며, 1989년 창단한 광주시립국극단에서 상임지도위원 지정 고수로 2년간 재직했다. 그는 김명환 선생 직계 수제자로 인정받아 1995년 4월 광주광역시 무형문화재 제11호 판소리 고법 예능 보유자로 지정됐다. 화려한 가락을 싫어해 “장단을 뼈대만 치라”고 강조했던 스승의 북을 기본 바탕으로 삼았던 감 명인은 일산 선생을 만나기 전 익혔던 가락 등을 보태 자신만의 담백한 고법을 창조했다. 성품이 엄격하고 꼿꼿했던 감 명인은 각종 고수대회 심사위원을 했고, 수많은 제자를 길러냈다. 이산의 제자들은 이산고법동우회를 통해 일산에서 이어져 온 이산 고법을 전승하고 있다.
2002년 감남종 판소리 고법 전수관 개업 때 감남종 명인(왼쪽). 이산고법동우회 제공
감 명인은 수많은 근현대 명창 고수로 소리판에 나섰다. 감 명인은 공대일, 장월중선, 성창순, 정순임, 이임례, 이지오 등 수많은 명창의 소리에 북 장단을 맞췄다. 장월중선 명창에게서 박동실제 <심청가>를 배웠던 아내 이지오 명창이 고인의 외길 인생을 함께 걸어온 동반자다. 감 명인은 소리를 하는 제자들에게도 장단 속을 알도록 꼭 고법을 가르쳤다. 광주시와 광주문화재단은 지난해 ‘감남종 선생을 중심으로 한 판소리 고법 보고서’(책임연구원 박종오 박사)를 냈다. 감 명인은 이 보고서에서 “고수는 판소리를 따라가야 하지만, 소리꾼이 늘어지게 할 때가 있는데, 고수는 그것을 짚어서 소리꾼이 제대로 소리할 수 있도록 이끌어가야 한다”고 말했다.
유족으로는 아내 이지오, 아들 영표·승표·행표·행석, 딸 요숙·숙현·미숙씨 등이 있다. 빈소는 광주시 광산구 광주보훈병원 장례식장이며, 발인은 4일 오전 11시30분이다. 장지는 대전 현충원이다.(062)973-9164.
광주광역시 무형문화재 제11호 판소리 고법 보유자 감남종 명인. 이산고법동우회 제공
정대하 기자
daeha@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