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방학이 시작된 지 20여일 지났지만 경북대 도서관은 밤늦도록 훤하게 불이 켜져 있다. 취업준비에 바쁜 재학생과 졸업생들이 도서관 열람실을 꽉 메운 채 공부하고 있다.
‘취업전쟁’에 방학 잊은 경북대 도서관을 가다
지난 7일 밤 10시. 이미 20여일 전에 학기말 시험이 끝나고 여름방학이 시작됐지만 대구 북구 산격동 경북대 도서관에는 밤늦은 시간까지 불이 환하게 켜져 있었다. 졸업을 앞둔 학생들 대부분이 공무원 시험 준비에 여념이 없었고, 이미 2~3년전에 학교를 떠난 졸업생들도 적잖게 도서관을 찾았다.
김영민(26·생명공학3)씨는 “군대에서 제대하자마자 공무원 시험을 보기 위해 도서관을 찾았다”며 “졸업과 동시에 취직을 하려다보니 학과공부는 솔직히 신경을 덜 쓰는 편”이라고 털어놨다. 오아무개(26·여)씨는 오전 8시부터 밤 11시까지 하루 15시간씩 도서관에서 공부한다. 2005년 2월에 졸업한 그는 9급 공무원 시험을 준비 중이다. 2년 전에 졸업한 정아무개(26·여·수성구 범어동)씨도 교사 임용시험을 준비하느라 도서관에서 비지땀을 흘리고 있다.
경북대는 도서관을 찾는 졸업생들의 발길이 잦아지자 지난해부터 재학생들만 이용해온 사물함을 졸업생들도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곽동근(24) 도서관 학생위원장은 “요즘 도서관 신관의 사물함 17%를 졸업생들이 이용한다”고 말했다.
도서관을 찾는 여학생들은 취업현장에서 아직도 성차별이 엄연히 존재한다고 한 목소리를 냈다. 박지영(25·여)씨는 “경상대학에서 공부한 전공을 살려 무역회사 취업을 목표로 공부중”이라며 “그러나 많은 기업체에서 응시자격을 남성으로 제한하는 등 여성에 대한 차별이 존재한다”고 털어놨다. 지난 2월 졸업한 우아무개(25)씨도 영업 관련 회사에 여러차례 지원했지만 면접 때마다 여성으로서 힘들지 않겠느냐는 말을 자주 들어 상대적으로 여성에 대한 차별이 덜한 외국계 회사에 지원하기 위한 공부를 하려고 도서관을 찾았다.
이미 취직을 했지만 더 나은 직장을 찾기 위해 도서관을 찾는 졸업생들도 더러 눈에 띄었다. 이세민(28·평리동)씨는 지난 2월 졸업한 뒤 7개월 동안 광고회사에 다녔지만 잦은 야근과 박봉에 시달리다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는 다른 직장을 찾기 위해 공부를 다시 시작했다. 20년 전에 졸업한 박아무개(43)씨도 창업에 필요한 자격증을 따기 위해 6년째 공부 중이다. 그는 “후배들이 제때 취업하지 못해 도서관을 찾는 걸 보면 안타까운 마음뿐”이라고 말했다.
경북대는 중앙도서관에만 신관 2500석에다 구관 1000여석을 합쳐 3500여석의 열람실을 갖추고 있으며, 단과대 열람실과 고시원 6곳 등을 합치면 열람실이 6400여석을 넘는다. 이들 자리가 방학 중에도 거의 만원을 이뤄 지방대학가에 불어닥친 취업난을 실감케 한다.
정희석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80~90년대는 취업경쟁이 그렇게 치열하지 않아 학생들이 공부를 해도 대학의 낭만을 알고 여유가 있었다”며 “요즘은 공동체 생활까지 포기한 채 도서관에서 시험공부에 매달리는 학생들을 흔하게 본다”고 안쓰러워 했다.
글·사진 구대선 기자, 이은지 인턴기자 sunny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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