찜통더위로 손님의 발길이 뚝 끊긴 서울 아현시장에서 10일 오후 한 상인이 흘러내리는 땀을 수건으로 닦고 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손님들 할인매장으로만 발길
무더위에 야채는 버리기 일쑤
그래도 장사 하다보면
내일은 좀 나아지겠지…
무더위에 야채는 버리기 일쑤
그래도 장사 하다보면
내일은 좀 나아지겠지…
폭염에 치이는 재래시장, 상인들 ‘비명’
춥다. 찜통더위로 연방 땀을 훔쳐내면서도 재래시장 상인들은 “춥다”고 말한다. 손님의 발길이 뚝 끊긴 탓이다. 불황으로 가뜩이나 움츠린 그들을 보름 이상 몰아치는 폭염이 한번 더 짓밟고 있다.
지난 10일 오후 2시께 찾은 서울 마포구 아현시장. 50m 가량의 중심 시장통에서 눈에 띄는 손님은 10여명에 불과하다. 이곳에서 10년째 화장품 가게를 운영해온 윤영식(38)씨는 “폭염이 시작된 7월 말부터 따지면 지난해보다 30~40% 정도 매출이 줄었다”며 “손님들이 시원하고 편한 곳만 찾으니 이젠 정말 어찌해볼 도리가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2년째 매출이 곤두박칠쳐 왔는데 무더위로 지난달 평균치보다 30%가 또 줄었다. 윤씨는 “가게마다 냉방시설이 있지만, ‘텅 빈 운동장’으로 변한 시장 통에서 무슨 소용이 있겠냐”고 말했다.
서울 중구 중부시장에서 20년째 멸치 가게를 운영하는 이강분(62)씨는 9일 하루, 멸치 세 상자를 판 게 전부다. 지난달만 해도 20~30상자는 거래됐다. 그는 “지난해 여름에 비해선 매출이 3분의 1로 줄었다. 날씨가 이러니, 정말 손님도 힘들고 나도 힘들다”며 말꼬리를 끊었다. 손님도, 날씨도 원망만 할 순 없다는 눈치다.
폭염이 계속되자, 중부시장에는 애초 계획 없던 휴가를 떠나거나 아예 임시휴업한 점포들도 적잖이 생겨났다. 11일엔 두세 집 건너 한 집씩 문을 닫았다. 20년째 채소를 팔아온 김영례(65)씨는 날마다 20ℓ 봉지 서넛 분량의 채소를 내다버린다. 당일 팔리지 않은 야채는 더위에 익은 건초일 뿐이다. “돈이 없어 휴가는 엄두도 못낸다. 단골 때문에 자리를 지키는 셈”이라는 김씨는 새벽마다 어김없이 채소를 떼오는 남편에게 미안할 따름이다.
반면 대형마트는 ‘찜통 특수’를 누린다. 한 대형마트는 7월 말부터 저녁 8시 이후의 매출이 하루치의 9%를 차지한다. 6월은 4%였다. 열대야 때문이다. 사정이 이러니 일부 마트는 새벽 시간까지 연장 영업에 들어갔다. 롯데마트는 지난해 여름에 견줘 매출이 10% 증가했다.
박수범 이마트 홍보과장은 “지난해도 열대야가 있었지만 올해 유독 매출 증가가 두드러진다”며 “8월 첫주 매출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7%나 늘었다”고 말했다. 재래시장의 손맛 좋은 음식은 없어도, 에어컨이 쉬지 않고 도는 대형마트는 그 자체로 피서지가 된 셈이다.
꿈이나 희망도 더위를 먹을까. 한 시장 상인은 “나 같아도 이 더위라면 대형마트를 찾겠다”면서도 “하지만 내일도 손님이 모두 그곳으로 가란 법은 없지 않으냐”고 반문한다. 반세기 동안 공덕시장(서울 마포)에서 일해온 김영자(63)씨는 “우리 가게의 주종인 떡볶이, 김밥은 여름에 안되지만 새로 개시한 냉면은 인기다”라며 “죽으란 법은 없는 게 장사하는 맛인 것 같다”고 말했다. 남편이 몇년째 중풍으로 쓰러져 휠체어 생활을 한다는 한영선(60)씨도 “가게가 전세라서 안 나오면 손해지만, 내일은 좀더 나아지지 않겠느냐는 생각 없으면 그도 못한다”고 말했다. 살짝 웃으면서 인 주름 사이로 굵은 땀방울이 타고 내린다.
임인택 기자, 선지혜 인턴기자(한국외대 스페인어 3) imi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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