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일 오전 서울 마포구 대흥동 마포문화체육센터에서 열린 일성여자 중·고등학교 입학식에서 경제적 어려움 등의 이유로 배움의 기회를 잃었던 20~70대의 늦깎이 학생들이 신입생 선서를 하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학력 인정’일성여자중고등학교
만학도 600여명 입학식 “중학교 1학년 1반 손들어 보세요. 일년 동안 여러분을 이끌어 주실 담임은 박미영 선생님입니다.” 3일 오전 서울시 마포구 마포문화체육센터 강당에서 열린 일성여자중고등학교 입학식. 머리가 희끗하고 얼굴에 주름이 많은 늦깎이 입학생들이 교장 선생님의 말씀에 따라 손을 번쩍 들거나 박수를 치며 웃었다. 이들은 한창 공부해야 할 때 가정 형편 등에 따라 학교를 포기했던 아줌마와 할머니들이었다. 이미 40~70대에 이르렀지만 이들의 공부를 향한 열정은 10대보다 뜨거우면 뜨거웠지 못할 것이 없었다. “에구, 당시에 중학교 가려면 시골에서 돼지 한 마리는 팔아야 했는데, 계집아이가 학교 가겠다고 어떻게 졸라.” 올해 중학과정을 졸업하고 고등학교 과정에 입학한 이수자(65)씨는 가난 때문에 공부를 중단했지만, ‘공부 욕심’에 시집을 오면서부터 동네 야학을 기웃거렸다. “10남매 다 키우고, 손자·손녀까지 보고나니, 더이상 참을 수가 없었어. 그래서 이 나이에 얼굴이 쭈글쭈글한 여고생이 됐지 뭐.” 막내아들이 고3에 올라간다는 김면숙(46)씨는 아들과 함께 대학 입시를 치른다는 심정으로 공부하겠다고 말했다. “애들 과외할 때마다 몰래 방문 앞에서 귀를 대고 엿들었지. 내가 저기 앉아 공부하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도 했고.” 이 곳엔 김씨와 이씨같은 ‘만학도’ 말고 10대들도 적잖게 찾아온다. 고1때 학교를 그만뒀다는 김민아(18)양은 “다시 학교로 돌아가면 어린 후배들과 공부해야 해서 창피하지만, 여기서는 엄마나 할머니같은 분들과 함께 공부할 수 있어 용기를 난다”고 말했다. 이런 분위기 덕인지 이 학교의 입학생 졸업률은 99%에 이른다.
2000년 12월 2년제 학력인정 학교로 인가받아 설립된 일성여자 중·고등학교는 지금까지 중학과정 255명, 고등과정 194명 등 모두 449명의 졸업생을 배출했다. 이날 입학식에는 중학교 과정 375명, 고등학교 과정 232명의 신입생이 참석했다. “눈 침침하고, 허리 아픈 것이 좀 힘들 뿐이지, 공부에 나이가 어딨고 장애가 어딨어? 죽을 때까지 공부할거야.” 75살에 중학과정을 마치고 고등과정에 입학한 김일례 할머니가 책가방을 꼭 쥐며 하는 다짐이다. 유선희 기자 duc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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