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홍렬 문화유산해설사(맨 왼쪽)가 10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세종로 경복궁에서 역사기행을 온 광주지역 초등학생들에게 경복궁의 역사를 설명을 하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문화유산해설사 엄홍렬씨
10일 오후 서울 경복궁. 찬바람에 볼이 발간 아이들이 마이크를 잡은 노신사를 따라 오르르 몰려다닌다. 중절모를 멋지게 눌러쓴 그는 문화유산해설사 엄홍렬(62)씨다. “미국 대통령 이름이 뭐지요?” 그의 질문에 아이들이 질새라 답을 외친다 “부시! 부시요!” 근정전 처마 밑에는 촘촘한 그물이 쳐져 있다. 새들이 둥지 짓는 것을 막는 것으로, 조선시대부터의 처방이다. 이런 용도의 그물을 ‘부시’라 하는데, 미국 대통령 이름에 빗대 아이들이 잘 기억하도록 설명해준 것이다.
엄씨는 자원봉사로 서울 사대문안 ‘뚜벅이 여행’을 돕고 있다. 1998년 보험감독원을 퇴직한 뒤 열정을 쏟을 일이 필요했다. 까맣게 잊고 있던 역사학도의 꿈을 기억해 냈고, 2005년말 2대1의 경쟁률을 뚫고 문화유산해설사 과정에 입문했다. 세달간의 교육을 거쳐 지난해 7월부터 해설사로 나섰는데, 벌써 50차례 가까운 경력이 있다. 서울시는 전통문화, 근대문화, 역사·생태복원의 세가지 주제로 7개 도보여행 코스를 잡아놨다. 인터넷(dobo.visitseoul.net)을 통해 관광 사흘 전에만 예약하면 해설사가 무료로 동행해준다.
현재 문화유산해설사는 네 차례 교육과정을 거쳐 115명이 활동한다. 한국어뿐 아니라 영어, 일어, 중국어까지 지원하고, 두명 이상이면 신청할 수 있다. 평일에는 두 차례, 공휴일에는 세 차례의 시간대가 있으며, 보통 한 코스를 도는데 두세 시간이 걸린다. 서울시는 올 2월에 5기 해설사 과정을 진행할 계획이다.
뚜벅이 여행에 나서는 사람들은 다양하다. 아이들과 함께 온 젊은 부부, 서울 관광을 온 시골 어르신, 베트남에서 온 의회 사절단 등 엄씨가 맞은 손님만도 가지각색이다. “나이나 문화적 차이를 생각해서 같은 코스를 가도 다른 얘기를 해줘야 해요. 그러다보니 역사 공부도 엄청 합니다. 네달짜리 박물관대학 코스만 두 차례 들었고, 지금도 역사 세미나가 열리면 바로 달려갑니다.” 엄씨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종묘 해설을 할 때가 가장 자랑스럽다고 했다. 중국에도 남아 있지 않은 역대 왕들의 신주가 고스란히 보존돼 있기 때문이다.
그는 안내 기회가 일주일에 두 차례 밖에 없는 것도 섭섭하다고 했다. “예순이 넘었지만 두세시간 걸어도 끄떡없을 만큼 건강합니다. 더 많은 사람이 우리 문화재를 찾고, 퇴직한 뒤에도 즐겁게 일할 기회가 충분했으면 합니다.”
정세라 기자 seraj@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