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량리588 철거시작 서울의 대표적 성매매 집결지 가운데 하나인 서울 동대문구 청량리역 주변 전농동 588번지 거리에서 2일 오후 오토바이를 탄 시민이 철거된 일부 업소 앞을 지나고 있다. 청량리 균형발전촉진지구 안에 포함된 이 지역은 도로 확장 공사를 위해 1일부터 단계별 철거공사가 시작되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서울 동대문구 전농2동 588번지. 청량리 역사 앞에서 답십리 길 방향으로 300m 남짓 이어진 성매매 거리이다. 유리문 너머로 흰색 드레스를 입은 아가씨들이 6만원에 손님을 부르는 이곳은 ‘청량리 588’로 불린다. 집창촌이 생겨난 것은 6·25 전쟁 이후인데, 현재는 588번지와 620번지 골목 두개에 150여개 업소가 있다. 2일 늦은 오후 588번지 골목에서는 험악한 공기가 흘렀다. 동대문구청이 전날 들머리와 중심부의 업소 6개동을 기습적으로 철거하거나 폐쇄했기 때문이다. 구는 청량리역 주변 일대를 재개발 하기 위해, 연말까지 588번지 건물을 뜯어내고 도로를 넓힐 계획이다. 답십리길∼롯데백화점 청량리점 구간 226m의 도로를 현재 폭 6m에서 8∼32m로 확장하겠다는 것이다.
구는 지난해부터 건물 주인들과 땅값 보상 협의를 진행하고 있다. 그러나 협의가 마무리 된 곳은 78개동 가운데 6개동 뿐이다. 동대문구 관계자는 “성매매 거리가 형성돼 있다 보니 민간 자본이 들어오기가 쉽지 않다”며 “구가 반드시 재개발을 한다는 의지를 보여주려고 보상이 끝난 건물을 철거·폐쇄했다”고 말했다. 구는 190여억원의 예산을 확보해 12월말을 완공 일정으로 잡고 있다. 그래서 올 가을까지 보상 협의가 안 되면 강제 철거에 나선다는 태도이다.
청량리 588번지가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데는 적지 않은 잡음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최소 5~6천만원에서 최대 1~2억원의 권리금을 내고 들어온 성매매 업소 포주들은 현재로서는 들어간 돈을 찾을 길이 없다. 2004년 9월말 성매매특별법이 시행된 이후 몰락의 길을 걸은 이 거리는 현재 150여개 업소 가운데 50여개만 영업을 한다. 한 업소에 두세 명이던 성매매 여성도 이제는 한 명 정도만 있다. 1980년대말까지 명동처럼 붐볐다는 거리가 지금은 을씨년스럽기만하다.
9년 전 네평 짜리 가게에 권리금 1억원을 주고 들어왔다는 업소 주인 ㅁ아무개(49)씨는 골목에서 홀로 욕설을 퍼부었다. 그는 “네 평 땅값은 내가 들어올 때 4500만원밖에 안 됐다”며 “땅주인만 보상해준다면 나는 여기서 못 나간다”고 말했다. ㅁ씨 같은 업주들은 밤새 구청이 걸어놓은 철거 현수막을 떼어버렸다. ‘철거’라고 써놓은 붉은 글씨는 검정색 스프레이로 뭉개버리고, 구청에 대한 욕설만 여기저기 휘갈겨져 있는 상태이다.
588번지 사람들은 성매매업이 인근의 장안동 안마시술소나 스포츠마사지 업소로 넘어갔다고 말했다. 588번지는 몰락했지만 번지 없는 성매매 업소들은 여전히 성업중이라는 것이다. 1970년대부터 30여년을 이 거리에서 장사를 했다는 권아무개(57)씨는 “80년대말 구멍가게로 하루 매상 100만원을 올린 적도 있는데 지금 식당은 하루 20만원 매상을 올리기가 어렵다”며 “성매매를 하던 사람이든 그 사람을 상대로 장사하던 사람이든 장사는 걷어치워도 아파트 딱지라도 줘야 나간다고들 한다”고 말했다. 정세라 기자 seraj@hani.co.kr
청량리 집장촌 철거 예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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