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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전국일반

일제때 기생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등록 2007-03-05 20:56

인천 용동 권번연구 논문
1년간 1천여원 수익
독립·예술학교 기금 모금도
일제 시대 인천에서 활동했던 ‘기생’들의 활동을 내용으로 한 논문이 나왔다.

이승연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연구원 등은 최근 발행한 인천학연구지 6호에 기고한 ‘일제시대 인천 권번에 대한 연구’ 논문에서 1920년대에 인천 중구 용동에 권번이 설립돼 1945년 해방 직전까지 기생 40~50명이 활동했다고 밝혔다. 이들에게는 일당 개념의 ‘화대’(놀음 값, 해웃값)가 주 수입원으로, 1년 간 1천여원 정도였다. 당시 용동에는 요릿집인 용금루, 화월관, 신흥관 등이 권번과 공생관계를 이뤄 성업을 이뤘다. 권번은 조선시대 기생을 총괄하던 기생청의 후신으로 동기(童妓)에게 서예와 춤, 소리, 예절을 가르치고, 요정 출입을 지휘하고, 화대를 받는 교육기관 겸 매니저 역할을 했다.

기생들은 유흥장에서 기생놀이만 한 것이 아니고, 연극과 공연을 통해 모금 운동을 벌여 독립협회에 전달하고, 영화보통학교 운동장 확장비용을 마련했다. 후에 배우와 가수로 활동했던 ‘복혜숙’과 나운규의 애인 배우 ‘유신방’, 민요의 여왕 가수 ‘이화자’등이 인천 용동권번 출신이다. 일본 유학까지 다녀온 인테리 여배우 복혜숙은 동료와 인천공연에 나섰다가 체류비를 못 내는 바람에 권번 생활을 시작해 3년간 인천 사교계의 여왕으로 군림했다. ‘오향선’이라는 이름으로 권번에서 활동한 유신방은 ‘아리랑’감독 나운규의 애인이 되어 ‘사나이’, ‘벙어리 삼룡’ 등의 주인공이 됐다. 이승연 연구원은 “당시 신문 등 자료와 주민들의 구술을 통해 기생들의 활동상을 조사했다”며 “지금도 인천 용동에는 권번이라고 새겨진 돌계단과 기생집이 그대로 있는 등 흔적이 남아 있다”고 말했다.

김영환 기자 yw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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