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6일 문학기행을 떠난 울산공단문학회 회원들이 국보 34호인 술정리 삼층석탑을 찾았다. 울산공단문학회 제공
[사람과 풍경] 울산공단문학회 12년
47명 중 18명 생산직·21명 등단
“문학이 영혼의 상처를 치유해” ‘나는 지금 편도 4차선 도로를 질주한다/속도는 이미 한계를 넘어섰다/빛으로 하얗게 퍼진 동공 속에 길이 있다/질주는 빛의 성을 지키기 위한 수단이다/…/ 삶은 박제가 아닌 뒤섞인 울음이다/빛 속으로 머리를 박는 저 막막한 행위들/하루를 애써 지키고 간 거역 못할 굴레이다.’ 현대자동차 생산직 노동자 이화우(42)씨는 출근길 통근버스를 타고 가다 공장과 집을 20여년째 오가는 자신의 모습을 돌어보며 생계를 위해 일탈할 수 없는 노동자들의 심경을 〈하루살이〉란 시에 담았다. 이 시는 지난해 10월 울산공단문학회가 펴낸 〈공단문예> 4집에 실려 있다. 이 문학회는 1995년 울산상공회의소가 주최한 울산산업문화축제 공단문학상 입상자 가운데 25명이 “삭막한 개인 정서와 공단문화를 바꿔 보자”며 만들었다. 이후 울산공단문학회는 여러 차례 어려운 고비를 맞기도 했으나 끈끈한 유대감으로 12년째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총무 고은희씨는 “공단문학상 응시 자격이 노동자와 노동자 가족이다보니 공단문학회 가입 회원 사이에 자연스럽게 노동자라는 공감대가 형성됐다”며 “이질감이 없는 사람들이 모였으니 모임이 장수할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고 되물었다. 실제 이달 현재 전체 회원은 47명인데 18명이 생산직 노동자다. 사무직 5명을 포함하면 노동자는 23명으로 절반 가량 된다. 나머지는 대부분 남편이 노동자인 주부들이다. 대기업 홍보팀 과장과 중소기업 대표도 있다. 중소기업 대표는 올 3월 자신의 목도리를 노숙자한테 벗어 주는 장면이 인터넷으로 알려져 누리꾼 사이에 화제가 됐던 서울 목도리녀의 아버지이기도 하다. 울산공단문학회는 순수 문학동호인 모임이지만 회원들의 수준은 아마추어를 넘어선다. 울산과 전국의 각종 문학상을 휩쓰는 것은 물론 지금까지 21명이 각종 문예지 등에 입상하며 정식 등단을 했다. 시집을 낸 이도 4명이나 된다. 신인작가를 길러내는 사관학교의 구실을 톡톡히 하고 있는 셈이다. 다달이 갖는 정기모임은 일상에 빠져 자칫 글쓰기를 게을리 하기 쉬운 서로를 경계하는 공간의 성격을 띠고 있다. 간단한 저녁식사 뒤 미리 정한 회원이 시·시조·수필 등 평소 관심이 많은 분야의 주제 발표를 하고 서로 토론하는 문학 강의 시간엔 회원들의 얼굴에 진지함이 묻어난다. 올 1월 월간 시 전문지〈심상>의 신인상 공모에 당선된 정병각(45)씨는 “직장 일에 쫓겨 글쓰기에 나태해졌는데 공단문학회 회원들을 보면서 더 열심히 글을 쓰게 됐다”며 등단의 영광을 회원들한테 돌렸다. 이 모임의 백미는 해마다 한차례 떠나는 문학기행이다. 올해는 15명의 회원들이 26일 옛 6가야의 하나인 경남 창녕을 다녀왔다. 이 곳에서 참석자들은 가야문화 유적을 소장하고 있는 창녕박물관과 국보 34호인 술정리 삼층석탑 등을 둘러본 뒤 버스 안 등에서 시낭송회를 가졌다.
허진년(49) 회장은 “등단을 해 유명세를 타면 어깨에 힘이 들어가는 일이 많은데, 문학으로 도시인의 메마른 영혼의 상처를 치유하는데 일조하자는 초창기 정신을 잃지 않겠다”고 말했다. 김광수 기자 ks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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