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 9월 한국전쟁 당시 미군의 폭격으로 고향을 떠난 월미도 원주민들이 24일 오후 월미도에서 ‘천막농성 1000일’ 기자회견을 연 뒤 진실규명과 귀향대책을 요구하고 있다. ‘월미도 원주민 귀향 대책위원회’ 제공.
[클릭!현장속으로] 월미도 원주민 ‘고향찾기 천막농성’ 1000일
유엔군 폭격 진상규명 호소…“청와대·국회·인천시 모두 외면”
“60년 맺힌 한을 풀어 주세요.”
한국전쟁이 일어난 지 57년이 됐다. 한국전쟁 중에 고향에서 쫓겨난 인천 월미도 주민들은 전쟁이 끝난 지 반세기가 훨씬 지난 지금도 고향에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주민들이 자신들이 살던 곳으로 돌아가 살 수 있게 해달라며 월미도에 천막농성을 시작한 지도 23일로 1000일에 이르렀고, 인천시청 현관 앞 릴레이 1인시위도 240일을 넘겼다. 또 청와대, 행자부, 국회, 인천시 등을 찾아다니며 진실규명을 눈물로 호소했다. 하지만 이뤄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
월미도에서 떠날 당시 소년, 소녀에서 70, 80대 노인으로 바뀐 주민들은 지난 24일 ‘귀향촉구 농성 1000일’ 기자회견을 열어 “남은 여생을 고향에서 살 수 있게 해달라”고 호소했다. 주민들은 또 월미도 원주민에 대한 미군의 네이탐탄 폭격과 기총소사에 의한 민간인 학살사건의 전면 조사를 요구했다.
한인덕(64) ‘월미도 원주민 귀향 대책위원회’ 위원장은 “당시 표양문 시장이 전쟁이 끝나면 고향에 돌아가 살 수 있게 해주겠다고 약속했지만, 지금은 토지 문서가 없다는 이유로 국방부 등 관련 기관들이 서로 미루고 있다”며 “미 대사관 앞 시위 등 빼앗긴 권리를 되찾는 날까지 계속 투쟁할 것”이라고 말했다.
주민들의 말에 따르면, 1950년 9월13일 새벽 유엔군의 공군기 1개 편대(4대)가 월미도 상공에 굉음과 함께 모습을 드러냈고, 기름통과 네이팜탄이 비오듯 쏟아져 월미도 일대는 불바다로 변했다. 잠을 자던 일부 주민들은 불에 타 숨졌고, 일부는 속옷만 입고 뛰쳐나와 육지를 향해 필사적으로 탈출해 목숨을 건졌다. 당시 월미도 어촌마을에는 80여가구 300명이 살고 있었으며, 한국전쟁 때 절반이 숨지고, 나머지 주민들은 미군이 점령하고 있는 바람에 월미도 맞은편 대한제분 앞에 판자집을 짓고 귀향을 기다렸으나 이 곳 마저 재개발로 쫒겨났다.
주민들이 살던 월미도는 1971년 미군이 철수한 뒤 해군이 주둔했고, 2001년 8월 인천시가 이를 매입해 현재 공원을 조성 중이다.
김영환 기자 yw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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