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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전국일반

청산리전투 중대장 참전 ‘독립투사’ 강근호 기념사업회 뜬다

등록 2005-04-13 23:41수정 2005-04-13 23:41

육군 소령으로 재직할 때인 1951년 4월에 촬영한 강근호 선생의 모습.  ‘애국지사 강근호 선생 기념사업회’ 제공
육군 소령으로 재직할 때인 1951년 4월에 촬영한 강근호 선생의 모습. ‘애국지사 강근호 선생 기념사업회’ 제공
부산 해운대구 좌동 장산 기슭의 폭포사를 지나 오른쪽으로 비탈길을 30분 정도 걸어가다 보면 ‘애국지사 강근호님의 집’이라는 팻말과 함께 허름한 집 한채가 나온다. 울타리도 대문도 없는 이 집 앞에는 3m 남짓한 국기게양대에 태극기가 걸려 있고, ‘모정원-이정희 농장’이라고 쓴 세로간판이 벽에 붙어 있다.

이 곳 모정원에서 17일 낮 12시 ‘애국지사 강근호 선생 기념사업회’ 창립식이 열린다. 강근호(1898년~1960년) 선생은 함경남도 정평군 출신으로 일제시대 만주에서 항일 무장독립운동을 벌였던 북로군정서 사관연성소의 제1학도대 제3구대장을 지냈고, 1920년 10월 청산리전투에 제1중대장으로 출전한 독립투사다.

그는 해방이 되자 47년 초 귀국해 49년 2월 육군사관학교에 8기로 들어가 소위로 임관한 뒤 56년 5월 중령으로 전역했으며, 이후 부산 영도에 정착해 부인 이정희(73)씨와 사이에 1남1녀를 두고 살다 60년 2월24일 숨졌다. 그의 주검은 대전국립묘지 현충원 애국지사 묘역에 안장돼 있으며, 대한민국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됐다.

부인 이정희씨는 한국전쟁 때 피난지 대구에서 학도의용군으로 참전하다, 53년 3월 강원도 양구에서 103사단 113연대장으로 근무하던 강근호 선생을 만나 결혼했다. 그는 63년부터 장산으로 옮겨와 살고 있다.

기념사업회는 강근호 선생 기념관 건립과 함께 “청산리전투에서 산화한 독립군을 위해 작은 돌비석이라도 하나 세워주기 바란다”는 선생의 유언에 따라 추모비를 세우고 청산리전투에 참전했던 독립투사들의 이름을 새겨넣기로 했다. 이를 위해 청산리전투에 참전했던 650여명 가운데 이름이 확인된 독립투사가 100여명에 불과해, 참전자 찾기 운동도 펼칠 계획이다. 또 학술교양강좌 ‘장산 아카데미’ 개설과 항일 무장독립운동 사료수집 등도 계획하고 있다.

기념사업회 관계자는 “최근까지 부인이 혼자 사는 모정원에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등 정부와 우리 사회의 독립투사와 유가족에 대한 관심과 배려가 너무 부족해 안타까웠다”며 “독도와 교과서 문제 등 최근 일본 쪽의 망언에 감정적으로 대응하기에 앞서 우리 스스로 반성할 것은 없는지 살펴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052)227-0061.

부산/최상원 기자 csw@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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