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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전국일반

개발바람에 새도 달도 ‘울고 넘는다’

등록 2008-01-13 21:18

박달재 터널이 뚫리면서 명성이 바랬으나 조각 공원 등 관광 명소로 부활하고 있는 박달재. 그러나 제천시가 휴양 시설을 추진하면서 주민들과 마찰을 빚어 울고 있는 박달재가 되고 있다. 제천시 제공
박달재 터널이 뚫리면서 명성이 바랬으나 조각 공원 등 관광 명소로 부활하고 있는 박달재. 그러나 제천시가 휴양 시설을 추진하면서 주민들과 마찰을 빚어 울고 있는 박달재가 되고 있다. 제천시 제공
[지금이곳은] 제천 박달재
박달·금봉 애틋한 사랑 200여점 조각에 오롯
구비구비 옛길 찾는 사람들에 ‘관광지’ 재탄생
제천시, 휴양시설 개발강행…주민들 반대운동

고개는 쉼의 상징이다.

박달재 역시 쉬는 곳이었다.

주변에 천등산, 지등산, 인등산 등 천·지·인을 두루 갖춘 박달재(453m)에서는 구름도, 달도, 새도, 사람도 쉬어갔다.

청운의 꿈을 지닌 선비, 봇짐을 진 상인들도 가파른 숨을 몰아 쉬며 고개를 오른 뒤 으레 곤한 몸을 추스렸다.

상인들이 푼 짐은 현장에서 거래가 이뤄지기도 했다.

목적지인 한양(서울)까지 골이 깊고, 험해 쉬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갓끈과 멜빵을 새로 매고 마음까지 다잡는 곳이었다.

이처럼 박달재는 조선시대 때부터 물류·교통의 요지로 사람, 물품, 차로 붐볐다.

그러나 2001년 충주~제천을 잇는 박달재 터널이 뚫려 사실상 교통 기능을 상실하면서 뒷방신세가 됐다.

5분도 채 안걸려 지날 수 있는 편리를 두고 꼬불꼬불 고갯길까지 올라 쉬어갈 여유도 없어지면서 사람들의 발길이 끊겼다.

고개너머 봉양~백운을 오가거나 박달재 주변 마을 주민 정도만 이용하는 한적한 곳으로 변했다.

잊혀져 가던 박달재가 차츰 생기를 찾아가고 있다.

11일 오후 함박눈 속에 박달재를 찾았다.

산 아랫 마을보다 평균 2~3도가 낮은 이곳은 11~3월까지 많은 눈이 내린다.

‘천등산 박달재를 울고 넘는~’으로 시작하는 대중가요 <울고 넘는 박달재>가 끊이지 않고 계속된다.

20여년째 휴게소를 운영하는 이승세(58)씨는 “교통 수요는 사라졌지만 박달재를 추억하는 관광객들이 하나 둘 발걸음을 하고 있다”며 “박달재의 옛 모습과 전설이 사람을 모으고 있다”고 했다.

시가 물레방아·분수·옛길을 만드는 등 신경을 쓴데다 박달재를 상징하는 200여점의 조각 작품으로 조각 공원을 조성하면서 구비구비 옛길을 따라 사람들이 찾는다는 것이다.

조각 작품은 8년째 박달재를 절 삼아 수행하고 있는 성각 스님의 솜씨다. 스님은 전설속 박달과 금봉의 이야기를 조각으로 승화시키고 있다.

박달재의 전설은 경상도 선비 박달과 제천 평동 박달재에 살던 금봉 낭자와 이루지 못한 사랑이야기다.

과거를 보러 가던 박달은 박달재의 한 농가에서 금봉을 보고 첫눈에 반하고, 둘은 장래를 약속하고 헤어진다.

그러나 금의환향을 약속한 박달이 과거에서 낙방한 뒤 미안한 마음에 금봉을 찾지 못한 사이 석달열흘 날마다 박달을 그리던 금봉은 숨을 그둔다.

금봉이 그리워 뒤늦게 마을을 찾은 박달도 넋을 잃고 산속을 헤매다 숨지고 만다.

스님은 목을 길게 빼고 서로를 그리는 모습, 박달의 남근, 잉태한 금봉, 젖물리는 금봉, 아기를 목마태운 박달 등 박달·금봉 가족을 표현하고 있다. 제천에서 온 이영숙(54·여)씨는 “남근, 여성의 가슴 등을 도드라지게 표현한 몇몇 작품은 낮뜨겁기도 하지만 해학적이고 재미있다”고 했다.

성각 스님은 “둘이 못다 이룬 사랑의 한을 극복하라는 기원과 음양의 조화를 주제로 조각했는데 사람들이 좋아 한다”고 말했다.

차츰 생기를 찾아가던 박달재가 요즘 개발 바람으로 시끄럽다.

시가 2006년 휴양시설 개발업체 (주)엠캐슬을 끌어 들여 박달재 주변 19만3784㎡에 8층짜리 407실 규모의 휴양형 숙박시설 건립을 추진하자 주민들이 지하수 고갈, 수질 오염, 환경 파괴 등의 이유를 들어 반대 운동을 펴면서 ‘울고 있는 박달재’가 되고 있다.

박달재 아랫마을 평동 2리에는 ‘숲에 깃들어 새처럼 구름처럼 살고 싶어요’, ‘엠캐슬 유치에 반대합니다’ 등의 펼침막이 붙었다.

주민들은 11년째 이곳에서 사는 판화가 이철수(54)씨를 중심으로 시와 업체의 개발 논리에 맞서는가 하면 환경단체, 전문가 등 뜻있는 이들에게 힘을 구하고 있다.

지난해 7월 도종환·오탁번 시인, 정태춘·박은옥씨 부부 등이 음악회를 열고, 박창근 관동대 교수 등 전문가와 환경관련 단체들도 개발의 위험을 알리고 있다.

녹색연합 등 9곳의 시민단체와 주민들은 지난 4일 공동 성명을 내어 “생태계의 보고이자 청정지역인 박달재 주변을 훼손하는 반생태 막개발 사업을 중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시는 10일 보도자료를 내어 “평동리 일부 주민과 환경단체 등이 지속적으로 환경 문제를 지적하고 있지만 원주지방환경청과 사전 환경성 협의를 통해 지속가능하고 환경 친화적인 사업을 추진하겠다”며 “주민들이 우려하는 환경 문제를 보완한만큼 4월께 공사를 하겠다”고 뜻을 굽히지 않아 마찰이 계속 될 것으로 보인다.

제천/오윤주 기자 sti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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