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금부는 꽃집 아저씨 정영권씨가 지난해 4월 미국 워싱턴 동물 박물관 앞에서 대금 연주를 하고 있다.정영권씨 제공.
대금부는 꽃집 아저씨 정영권씨
청주대 앞 20년간 꽃집 운영
할아버지에 이끌려 30년 독학
국외 공연땐 ‘테러범’ 오해도 “지 소리에 지가 미쳐가지고 득음을 하면 부귀공명보다 좋고 황금보다 좋은 것이 이 소리속판이여. 이놈아.” 영화 <서편제>에서 아버지 유봉(김명곤)이 아들 동호(김규철)를 나무라면서 하는 소리 예찬이다. 청주대학교 앞에서 20년째 꽃집을 운영하며 우리 소리를 지키고 찾는 정영권(56)씨도 영화 속 유봉 못지 않은 소리꾼이다. 유봉이 판소리에 취했다면 정씨는 대금에 미쳐 산다. 이미 주변에서는 대금부는 꽃집 아저씨로 꽤 알려져 있다. 어려서부터 할아버지의 피리 소리에 귀를 틔운 정씨도 틈틈이 피리를 불다 30여년전부터 대금을 잡고 있다. 꽃집, 산속, 집 등 모든 곳이 그의 연습장이자 공연장이다. 정씨는 “피리가 가슴을 찌른다면 대금은 마음을 울리는 매력이 있어 대금을 곁에 두고 있다”며 “아내와는 가끔 떨어져도 대금은 한시도 떨어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30여년 대금을 가까이 하고 있지만 학원·스승을 좇아 가르침을 받은 적이 없다. 악보를 보고 혼자 대금을 익히고 있다. 그는 “내가 미쳐 내가 좋자고 하는 것이라 길들여 지거나 다듬어지지 않고 소리가 거칠다”고 말했다. 그런 그가 요즘 대금 알리는 데 힘을 쏟고 있다. 지난해 10월 청원 내수에서 열린 시조창, 11월 청주 예술의 전당에서 열린 시조 경연, 지난 7일 열린 <한겨레>청주모임 작은 음악회 무대에서 대금을 연주했다. 경로당·노인정 등 소리를 바라는 곳이면 어느 곳이나 찾아 대금을 분다. 물론 대가를 받지는 않는다. 지난해에는 대금 하나 달랑 메고 미국과 유럽 등으로 국외 소리 기행을 다녀왔다. 미국에서 캐나다 국경을 넘어갈 때 대금을 총으로 오인한 경찰들에게 붙잡혀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그는 “테러범으로 몰렸지만 대금으로 ‘아리랑’을 불자 모두 손뼉을 치며 ‘원더풀’, ‘원더풀’을 외쳤다”며 “그 인연으로 미국 워싱턴, 독일 프랑크푸르트 등에서는 거리의 악사들과 협연도 했다”고 말했다. 그는 “누구한테 보이려고 하는 게 아니라 우리 선율을 들려주고 알리고 싶어 나섰다”며 “하면 할수록 나아지는 소리의 맛과 멋을 많은 사람들이 느꼈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오윤주 기자 sting@hani.co.kr
할아버지에 이끌려 30년 독학
국외 공연땐 ‘테러범’ 오해도 “지 소리에 지가 미쳐가지고 득음을 하면 부귀공명보다 좋고 황금보다 좋은 것이 이 소리속판이여. 이놈아.” 영화 <서편제>에서 아버지 유봉(김명곤)이 아들 동호(김규철)를 나무라면서 하는 소리 예찬이다. 청주대학교 앞에서 20년째 꽃집을 운영하며 우리 소리를 지키고 찾는 정영권(56)씨도 영화 속 유봉 못지 않은 소리꾼이다. 유봉이 판소리에 취했다면 정씨는 대금에 미쳐 산다. 이미 주변에서는 대금부는 꽃집 아저씨로 꽤 알려져 있다. 어려서부터 할아버지의 피리 소리에 귀를 틔운 정씨도 틈틈이 피리를 불다 30여년전부터 대금을 잡고 있다. 꽃집, 산속, 집 등 모든 곳이 그의 연습장이자 공연장이다. 정씨는 “피리가 가슴을 찌른다면 대금은 마음을 울리는 매력이 있어 대금을 곁에 두고 있다”며 “아내와는 가끔 떨어져도 대금은 한시도 떨어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30여년 대금을 가까이 하고 있지만 학원·스승을 좇아 가르침을 받은 적이 없다. 악보를 보고 혼자 대금을 익히고 있다. 그는 “내가 미쳐 내가 좋자고 하는 것이라 길들여 지거나 다듬어지지 않고 소리가 거칠다”고 말했다. 그런 그가 요즘 대금 알리는 데 힘을 쏟고 있다. 지난해 10월 청원 내수에서 열린 시조창, 11월 청주 예술의 전당에서 열린 시조 경연, 지난 7일 열린 <한겨레>청주모임 작은 음악회 무대에서 대금을 연주했다. 경로당·노인정 등 소리를 바라는 곳이면 어느 곳이나 찾아 대금을 분다. 물론 대가를 받지는 않는다. 지난해에는 대금 하나 달랑 메고 미국과 유럽 등으로 국외 소리 기행을 다녀왔다. 미국에서 캐나다 국경을 넘어갈 때 대금을 총으로 오인한 경찰들에게 붙잡혀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그는 “테러범으로 몰렸지만 대금으로 ‘아리랑’을 불자 모두 손뼉을 치며 ‘원더풀’, ‘원더풀’을 외쳤다”며 “그 인연으로 미국 워싱턴, 독일 프랑크푸르트 등에서는 거리의 악사들과 협연도 했다”고 말했다. 그는 “누구한테 보이려고 하는 게 아니라 우리 선율을 들려주고 알리고 싶어 나섰다”며 “하면 할수록 나아지는 소리의 맛과 멋을 많은 사람들이 느꼈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오윤주 기자 sti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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