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자호란 때 청나라로 끌려가다 자살한 의순공주의 족두리묘 바로 앞에서 택시 차고지 설치 공사가 이뤄져 주민·시민단체에서 공사반대 운동에 나섰다.
\\
코앞서 택시 차고지 공사 병자호란 때 조선인들의 고통과 애환을 고스란히 담은 족두리묘와 금림군묘가 방치되고 있다. 특히 이 무덤들은 문화재로도 지정되지 못한 채 최근 코 앞에 택시 차고지까지 들어서려 해 훼손될 위기에 놓였다. 경기도 의정부시 금오동 천보산 기슭에 있는 족두리묘와 금림군묘는 병자호란 때 조선 왕실과 백성들의 아픈 상처를 담고 있다. 병자호란에서 승리한 청나라는 조선에 처녀들을 조공으로 바칠 것을 요구했다. 특히 효종 원년(1650년)에는 청나라 구왕의 첩으로 조선의 공주를 보내라고 요구했다. 이 문제로 조정이 고민에 빠져있을 때 종실의 금림군이 나섰고, 조정은 금림군의 딸을 의순공주라 칭하고 청나라로 보냈으며, 의순공주는 나이가 든 뒤 조선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구전되는 이야기에 따르면, 의순공주는 청나라로 가지 않았다. 도중에 평안도 정주에서 강물로 뛰어들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이다. 강물에 빠진 시신은 끝내 떠오르지 않았고, 사람들은 그의 족두리만 묻었다. 그 뒤 나라에서는 천보산에 ‘정주당’이라는 사당을 지어 의순공주를 기렸고, 의정부 지역에는 의순공주의 넋을 달래는 ‘정주당놀이’가 전해내려왔다. 이런 이야기가 담긴 족두리묘와 금림군묘는 아무런 보호도 받지 못한 채 훼손되고 있다. 특히 지난해 8월에는 한 택시회사가 의정부시청으로부터 건축허가를 받아 묘 정면에서 10m 가량 떨어진 곳에 택시 차고지를 짓기 위해 땅을 파헤쳤다. 이곳 주민과 시민단체 회원 등 80여명은 지난해 9월부터 문화재 훼손과 환경오염 등의 이유로 택시 차고지 건설을 반대하고 있다. 의정부시청은 족두리묘와 금림군묘를 문화재로 지정해 보존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시 관계자는 “금오동 ‘족두리묘’가 의순공주의 무덤이라는 기록이 전혀 없다”며 “더욱이 실록에는 의순공주가 청나라에 끌려갔다가 돌아왔다고 돼 있어 이 무덤의 실체를 확인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시는 또 “금림군묘도 왕족의 무덤이라는 이유만으로 문화재로 지정할 수는 없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문화재 전문가들의 견해는 다르다. 경기도 문화재전문위원인 김우림 서울역사박물관장은 “금림군과 의순공주의 묘는 우리 역사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의미있는 문화재로서 교육적 가치가 크다”며 “특히 의순공주에 대한 이야기가 ‘정주당놀이’라는 민속놀이로 발전한 것은 더욱 가치가 크다”고 말했다.
김 관장은 “금림군묘와 족두리묘가 경기도 문화재로서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본다”며 “의정부시가 서둘러 경기도에 문화재 지정을 신청하고 현장이 원래대로 복구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의정부/유신재 기자 ohora@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