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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전국일반

독립운동가 25명 키워낸 안동 하계마을 아시나요

등록 2008-08-14 22:29

경북 안동 도산서원에서 2㎞쯤 떨어진 안동시 도산면 토계리 하계마을은 독립운동가를 25명이나 배출한 곳이다. 마을 단위로 따지면 전국에서 독립운동가가 가장 많이 나왔다. 하지만 광복절을 하루 앞둔 14일 하계마을의 모습은 썰렁하다. 전국 곳곳에서 펼쳐지는 광복절 행사도, 흔한 축하 펼침막도 찾아볼 수 없다.

이원규(52) 이장은 “30여 가구 남짓한 주민들이 수박과 무, 배추 농사를 지으며 살고 있으나 독립운동가의 후손들은 대부분 마을을 떠났다”고 말했다. 1976년 원래의 하계마을이 안동댐 건설로 수몰되면서 3㎞ 떨어진 현재의 마을로 옮겨 올 때 독립운동가 후손들도 대부분 도시로 떠난 것이다.

당시 안동으로 집을 옮긴 독립운동가 이만도 선생의 후손 이동석(65·광복회 안동지회 상임부회장)씨는 “독립운동가 후손들이 대구로 집을 옮긴 사람들이 많지만 대부분 생계를 걱정하며 어렵게 살아가고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진성 이씨들이 450년 전통을 지켜온 집성촌인 하계마을은 1895년 이만도, 이중언 선생이 의병으로 나섰다가 1910년 단식으로 순국하면서 젊은이들이 앞다퉈 독립운동에 몸을 바쳤다. 3·1운동에 참여했던 이동봉, 김락, 이비호, 이기호, 이용호, 이극호, 이호준 등에 이어 유림단의거를 주도한 이중업, 군자금 모집에 앞장섰던 이동흠과 이종흠 형제, 만주에서 항일운동을 펼친 이원일, 창씨개명에 반대하며 자결한 이현구 등이 모두 이 마을 출신이다.

특히 예안에서 의병장으로 활동하다 순국한 이만도 선생과 그의 아들 이중업은 독립 청원운동을 주도했다. 또 며느리 김락은 3·1운동때 일본경찰에 붙잡혀 고문으로 실명한 여성운동가로 이름이 높고, 손자 이동흠과 이종흠도 제2차 유림단의거를 주도했다.

하계마을은 한동안 기억에서 잊혀졌다가 2004년 10월7일 마을 옛터 언저리에 ‘하계마을 독립운동 기적비’가 세워졌다. 안동독립운동기념관 강윤정 학예연구실장은 “하계마을을 찾아갈 때마다 너무 쓸쓸하고 황량한 느낌을 받는다”고 안타까워했다. 보훈처 집계를 보면, 우리나라 전체 독립운동가 1만127명 가운데 하계마을 25명을 포함해 안동 출신이 317명이다.

안동/구대선 기자 sunnyk@hani.co.kr 사진 안동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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