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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청 본관 철거’ ‘보호막 헐린’ 문화재 잇단 훼손 우려

등록 2008-09-05 18:15

제정 시대에 지어진 독일의 의회 건물은 1990년 통일 뒤 영국의 건축가 노먼 포스터의 설계에 따라 옛 돔을 제거하는 등 내부를 대대적으로 리모델링해 1999년부터 사용되고 있다.  위키피디아 제공
제정 시대에 지어진 독일의 의회 건물은 1990년 통일 뒤 영국의 건축가 노먼 포스터의 설계에 따라 옛 돔을 제거하는 등 내부를 대대적으로 리모델링해 1999년부터 사용되고 있다. 위키피디아 제공
시-문화재청 갈등 격화
‘지킴이’ 공공기관이 등록문화재 제도 어긴 첫 사례
“철거 진단 받아 불가피”…“신축 건물 잣대 안돼”
문화연대 “시 논리대로면 경복궁도 새로 지어야”

서울시의 시청 본관 훼손을 둘러싼 문화재청과 서울시의 갈등이 계속되고 있다. 두 기관 모두 누리집 초기 화면에 각자의 입장을 알리는 장문의 글을 올려놓는 등 여론전까지 확산된 양상을 보이고 있다. 이 논쟁은 서울시 신청사를 두고 수년 동안 이어진 감정의 앙금이 터진 것이라 사건이 터진 지 2주일이 다 되도록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는 상황이다.

그러나 이 논쟁의 결과는 두 기관의 갈등의 수준을 넘어서, 앞으로 한국의 문화재 정책의 향방을 정할 것이라는 점에서 주목할 만한 대목들이 있다.

■ 서울시가 깬 것은? 서울시는 지난달 26일 문화재위원회의 권고를 ‘무시’하고 등록문화재 52호인 청사 본관 뒤쪽을 중장비로 헐어버렸다. 2001년에 도입된 등록문화재 제도는 소유주가 문화재를 신고 없이 철거하더라도 500만원 이하의 과태료만 내면 된다. 건축물인 지정문화재를 훼손하면 최고 10년 이하의 징역에 처할 수 있지만, 등록문화재에 대해서는 문화재위원회가 가진 무기는 강제력 없는 ‘지도·조언·권고’가 있을 뿐이다.

실제로 서울 초동의 스카라극장 건물이나 명동의 옛 대한증권거래소 건물 등이 등록예고 기간에 헐렸지만, 문화재위원회는 머리만 긁적거릴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위의 사례들은 훼손의 주체가 개인들이었다. 서울시의 본관 훼손은 공공기관으로서는 등록문화재 제도를 업신여긴 첫번째 사례라는 점에서 상징성이 크다.

서울시는 2004년 6월에 발간한 <근대문화유산자료 및 목록화 사업 보고서>에서 “근대에 건조된 건축물이 보존대책의 미흡과 관리방안의 부재로 원형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증·개축되거나 심지어는 도시 개발 압력에 밀려 철거되기도 했다”며 “원형 훼손과 소멸을 막을 수 있는 보존 대책의 수립이 절실하다”고 밝혔다.

시는 또 “(등록문화재의) 역사적인 평가와 관련자들의 역사관에 따라 사회적 이슈와 충돌이 발생할 우려가 있으므로, 대상 선정 과정에서 공공기관의 중립적인 역할과 개입이 중요하다”고 밝혔으나, 이번 훼손으로 스스로 그 원칙을 깬 모양새를 만들었다.


문화재청의 한 관계자는 “문화재등록제도는 문화재 소유자의 건전한 상식에 대한 신뢰를 기반으로, 관이 해당 문화재에 지도와 권고를 준다는 취지의, 매우 세련되고 선진적인 제도”라며 “이를 가장 보수적으로 지켜야 할 서울시가 정작 원칙을 깨서 등록문화재 제도가 우스운 꼴이 됐다”고 말했다.

신세계 백화점은 원래의 구조를 그대로 유지한 채 리모델링한 대표적인 경우에 속한다. 
 신세계, <한겨레> 자료사진
신세계 백화점은 원래의 구조를 그대로 유지한 채 리모델링한 대표적인 경우에 속한다. 신세계, <한겨레> 자료사진
■ 훼손의 도미노? 문화재청은 2004년에 <가려뽑은 등록문화재 30선>이라는 책을 냈다. 여기서 서울시청 본관 건물은 철원 노동당사, 덕수궁 정관헌 등과 함께 대표적인 근대문화재로 ‘가려’ 뽑혔다. 상징성을 가진 서울시청 건물의 훼손은 자칫 근대문화재 훼손의 도미노로 연결될 수도 있다고 전문가들은 우려하고 있다. 안창모 경기대학교 교수(건축학)는 “결과적으로 등록문화재에 손을 대고 싶은 소유자들에게 서울시는 정당한 근거를 제공한 셈”이라고 말했다. 이 제도가 도입된 2001년 3월부터 가장 최근 지정된 김제 부거리 옹기가마까지 모두 403개의 등록문화재가 등재됐다. 지금까지 등록문화재 가운데 철거된 사례는 없지만, 등록문화재 지정이 추진되는 과정에서 소유주에 의해 철거된 문화재는 7곳에 이른다.

■ 안전이냐 보존이냐? 1926년에 건설된 서울시청 본관 건물은 대규모 보강 혹은 철거가 필요한 안전진단 D·E등급을 받았다는 것이 서울시의 주장이다. 김민수 기술사회 사무차장은 “건축구조설계기준에 따르면, 본관 건물이 사무실 용도에서 도서관 용도로 바뀌면 이에 따른 건물이 받는 하중도 더 커지기 때문에 내진설계도 거쳐야 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문화재청은 “문화재는 아파트와 다르다”며 “문화재에 대한 최소한의 이해조차 없이 신축 건물처럼 취급하고자 하는 것은 매우 합당하지 못한 처사”라고 밝혔다. 황평우 문화연대 문화유산위원장은 “서울시의 논리대로라면 경복궁이나 파르테논 신전도 부수고 새로 지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기태 기자 kk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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