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단체 문화우리가 진행한 아현동 답사 프로그램에 참가한 시민들이 각자 사진기와 필기구 등을 들고 철거를 앞둔 감골길 주변을 둘러보고 있다. 해설을 만은 이건욱 연구사(앞줄 맨 왼쪽)이 뒤를 돌아보며 무선 마이크로 마을의 내력을 설명하고 있다.
재개발 앞두고 시민들 ‘민속 기록’ 답사
사라질 ‘근·현대 건축 보고’ 사진에 담아
사라질 ‘근·현대 건축 보고’ 사진에 담아
70년대식 2층 건물 대문에 스프레이로 갈겨쓴 ‘철거’, 깨진 보도블록 사이로 허리 높이만큼 올라온 잡초, 굳게 닫힌 나무 대문 앞에서 뱃속의 솜을 풀어헤친 곰인형….
재개발을 앞두고 주민들이 상당수 떠난 아현동 3구역의 풍경은 황량했다. 구불구불한 골목길 곳곳에 깨진 유리창과 구석마다 쌓인 쓰레기는 ‘근·현대 건축물의 보고’라는 아현동의 명성을 무색케 했다. 시민단체 ‘문화우리’는 이 지역의 생활사적 가치를 곱씹어보자는 취지로 지난 6일 시민들과 함께 답사했다. 이곳의 민속기록을 공부한 이건욱 국립민속박물관 학예연구사가 해설을 맡았고, 시민 20여명이 무선 이어폰을 귀에 꽂고 뒤를 따랐다.
아현시장을 지나 감골길을 접어들자 오래된 풍경들이 펼쳐졌다. 작은 창문에 쇠창살이 붙은, 희 타일로 덮인 2층짜리 일본식 건물 옆에는 2층 베란다가 넓은 70년대식 붉은색 벽돌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같은 길을 면한 한옥 건물을 지나면서 이 연구사는 “아현동은 서울 안에서도 다양한 시대적 배경을 가진 주택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는, 살아있는 주택사 박물관”이라고 설명했다.
3구역 모퉁이의 ‘행화탕’ 대중목욕탕은 40여년 전 모습을 간직하고 있었다. 5평 남짓한 남자 탈의실에는 ‘고물’ 이발 의자와 41개의 목제 사물함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한쪽 벽에는 개관일인 65년 1월 10일에 내건 ‘입욕자 주의사항’이 길게 씌여 있고 그 옆에는 “이러한 사항을 지키지 않은 분에 대하여는 서로 돕고 충고하여서 명랑한 분위기를 이룩합시다”라는 문구가 눈길을 끌었다. 이 액자를 걸었다는 박두희 사장(69)씨는 “옆 동네에 대형 찜질방이 생기면서 손님이 뚝 끊겨 최근 문을 닫았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언덕의 정상 개바우로 올라가는 길 한편에 있던 이발소 자리는 미로와 같은 내부 구획으로 답사자들의 탄성을 사기도 했다. ‘입구→이발소→복도→1평 마당→방→현관’으로 이어지는 배치는 독특한 공간미를 선사했다. 동행한 김인수 그륀바우 환경조형연구소 소장은 “서민들은 생활 속에서 건축가가 설계한 공간보다 더 아름다운 공간을 만들어낸다”고 거들었다.
마을 사람들이 드나들었을 비탈길가의 ‘맘보슈퍼’와 ‘비디오시티’도 문을 닫고 주변에는 쓰레기 더미가 널려있었다. 맞은 편 충북부동산중개업사무소에서 바둑을 두고 있던 김기술 사장(67)은 “이 마을에서 20년간 살았는데 하나둘씩 사람들이 떠나니 아쉽다”고 말했다.
2시간을 넘게 이 곳을 답사를 진행한 이 연구사는 “오늘 여기서 사진으로 담은 마을의 풍경이 모두 사라지는 민속이고 역사”라며 “그 기록을 소중히 간직해 미래의 역사책에 실어주시길 바란다”라고 말했다. 이중재 문화우리 사무국장은 “앞으로는 일부 지역의 원형 보존을 요구하는 행동에도 들어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글·사진 김기태 기자 kk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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