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 전 충북으로 시간 여행을 안내하는 자료집 <100년 전 충북의 옛 모습>을 내고 있는 충북학연구소 정삼철 연구위원. 청주/오윤주 기자 sting@hani.co.kr
충북 옛모습 책 펴낸 정삼철씨
제천등 8곳 이어 음성편 발간
일제 상권장악·수탈과정 등
교통-물류 변화 생활상 엮어 100년 전에도 경제, 물가 때문에 어려웠을까? 100년 전 충북의 사회·경제 상황과 생활 모습을 연구해 온 충북개발원 부설 충북학연구소 정삼철(47사진) 연구위원이 <100년 전 충북의 옛 모습: 음성군편>을 냈다. 정 연구원은 1909년 일본 강점기 때 충청북도 관찰도가 펴낸 <한국 충청북도 일반>을 토대로 100년 전 충북의 생활을 재연하고 있다. 2000년 제천시편을 낸 데 이어 지금까지 청주·충주·진천 등 충북지역 시·군 8곳의 생활을 표현했으며, 내년 영동·옥천편까지 펴내 완간할 참이다. 500여권씩 펴내는 책은 도서관·기관 등으로 보내져 교육 자료 등으로 쓰이고 있다. 정 연구원은 “시대별 지역명 변천사, 산악·하천 등 지리, 관할 구역, 인구, 교통, 산업, 교육, 행정 등 100년 전 모습을 그대로 담고 있어 당시의 생활을 가늠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100년 전 충북에는 11만 9350가구에서 50만 4885명이 살고 있었으며, 농업 인구가 94.3%로 대부분 농사를 짓고 살았다. 지난달 말 기준으로 충북은 58만 3134가구에서 151만 328명이 살고 있어 100년 사이 인구는 세배 늘었다. 그러나 농업 인구는 23만 7333명으로 농업 종사율은 15.6%로 줄었다. 당시 충북에는 일본인 1769명이 살고 있었지만 이들은 일본 청주·맥주, 설탕 등 소비재 등을 중심으로 충북 상권을 장악해 나갔다. 정 연구원은 “일제는 지역 사찰에 있는 불상 등 문화재의 숫자까지 파악할 정도로 치밀하게 수탈을 준비했다”며 “일본의 산업재가 농경 중심의 한국 산업을 서서히 장악해 나가면서 지역 경제와 물가도 요동쳤을 것”이라고 말했다. 교통·물류에 따른 자치단체의 성격 변화도 재미있다. 남한강 물길과 조령·죽령 등 산길 중심이던 충주는 조치원·청주역 등 철길과 국도 등 신작로가 등장하면서 청주에 지역 중심 상권을 내줬다. 물류 거래가 활발했던 장호원·이천 등과 인접한 음성은 충북에서 유일하게 농업 비율이 80% 선에 머물렀다. 정 연구원은 “100년전 충북의 생활을 통해 역사의 씨줄과 날줄을 촘촘하게 엮고 싶었다”고 말했다.
오윤주 기자 sting@hani.co.kr
일제 상권장악·수탈과정 등
교통-물류 변화 생활상 엮어 100년 전에도 경제, 물가 때문에 어려웠을까? 100년 전 충북의 사회·경제 상황과 생활 모습을 연구해 온 충북개발원 부설 충북학연구소 정삼철(47사진) 연구위원이 <100년 전 충북의 옛 모습: 음성군편>을 냈다. 정 연구원은 1909년 일본 강점기 때 충청북도 관찰도가 펴낸 <한국 충청북도 일반>을 토대로 100년 전 충북의 생활을 재연하고 있다. 2000년 제천시편을 낸 데 이어 지금까지 청주·충주·진천 등 충북지역 시·군 8곳의 생활을 표현했으며, 내년 영동·옥천편까지 펴내 완간할 참이다. 500여권씩 펴내는 책은 도서관·기관 등으로 보내져 교육 자료 등으로 쓰이고 있다. 정 연구원은 “시대별 지역명 변천사, 산악·하천 등 지리, 관할 구역, 인구, 교통, 산업, 교육, 행정 등 100년 전 모습을 그대로 담고 있어 당시의 생활을 가늠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100년 전 충북에는 11만 9350가구에서 50만 4885명이 살고 있었으며, 농업 인구가 94.3%로 대부분 농사를 짓고 살았다. 지난달 말 기준으로 충북은 58만 3134가구에서 151만 328명이 살고 있어 100년 사이 인구는 세배 늘었다. 그러나 농업 인구는 23만 7333명으로 농업 종사율은 15.6%로 줄었다. 당시 충북에는 일본인 1769명이 살고 있었지만 이들은 일본 청주·맥주, 설탕 등 소비재 등을 중심으로 충북 상권을 장악해 나갔다. 정 연구원은 “일제는 지역 사찰에 있는 불상 등 문화재의 숫자까지 파악할 정도로 치밀하게 수탈을 준비했다”며 “일본의 산업재가 농경 중심의 한국 산업을 서서히 장악해 나가면서 지역 경제와 물가도 요동쳤을 것”이라고 말했다. 교통·물류에 따른 자치단체의 성격 변화도 재미있다. 남한강 물길과 조령·죽령 등 산길 중심이던 충주는 조치원·청주역 등 철길과 국도 등 신작로가 등장하면서 청주에 지역 중심 상권을 내줬다. 물류 거래가 활발했던 장호원·이천 등과 인접한 음성은 충북에서 유일하게 농업 비율이 80% 선에 머물렀다. 정 연구원은 “100년전 충북의 생활을 통해 역사의 씨줄과 날줄을 촘촘하게 엮고 싶었다”고 말했다.
오윤주 기자 sti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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