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모산 정상 부근에 설치돼 있는 국정원 철책은 능선을 따라 구룡산 정상까지 이어진다. 김경욱 기자 dash@hani.co.kr
내곡동 이전때 설치 ‘원형 철조망’ 철거 약속 안지켜
주민들 “경관 훼손” 반발…국정원 “보안위해 불가피”
주민들 “경관 훼손” 반발…국정원 “보안위해 불가피”
“휴전선이 따로 없어요. 산을 온통 철책으로 둘러쳐놨어요.”
13일 오전 11시, 서울 강남구 대모산 정상에서 만난 정경숙(58·서울 강남구 일원동)씨가 철책을 가리키며 말했다. 정씨는 대모산 자락을 끼고 있는 일원동에서 나고 자라 지금까지 살고 있다. 그는 “대모산은 내게 할머니 같은 존재”라고 했다. 친구들, 가족들과 함께 보낸 지난 세월의 기억이 산 곳곳에 남아 있다. 그러나 그 기억은 1994년부터 산의 반쪽으로 작아져 버렸다. 강남구와 서초구를 가르는 철책이 들어섰기 때문이다.
대모산은 높이가 293m로 산이 낮아 어린이들과 여성, 노인들이 많이 찾는다. 약수터가 16개에 이를 정도로 샘이 많아 주변 시민들이 등산뿐만 아니라 샘물을 뜨기 위해서도 즐겨 찾는다. 일원터널 들머리에서 산을 따라 40~50여분 오르다 보면 정상을 만나는데, 탁 트인 풍경을 가로막는 대형 철책이 눈 앞을 가린다.
이 철책은 1994년 국가정보원(당시 국가안전기획부)이 내곡동으로 이전하기 위해 공사를 하면서 쳐 놓은 것이다. 대모산 능선을 따라 구룡산 정상을 잇는 3km 능선을 따라 설치돼 있다. 정씨는 “철책이 들어서면서 산이 예전의 푸근함을 잃어버렸다. 할머니 무덤을 쇠 울타리로 막아놓은 기분이 든다”고 말했다.
국정원 철책은 공사 당시 주민들에게 위화감을 조성한다는 지적(<한겨레> 1994년 5월11일치 19면)을 받고 철책 윗부분의 원형 철조망을 철거하고, 철책 바깥에 꽃나무 등을 심어 주변을 꾸미기로 했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14년이 지난 지금도 일부 구간에서는 여전히 철책 위로 원형 철조망이 쳐져 있다. 나머지 구간에서도 와이(Y)자형 철조망이 원형 철조망을 대신하고 있다. 주변을 꾸미기로 한 꽃나무는 찾아 볼 수 없다.
시민들은 보안을 위해 철책이 들어선 것에 대해 이해하면서도 철책을 친 범위가 지나치게 넓다고 지적하고 있다. 배아무개(61·대치동)씨는 “청와대 뒷산인 북악산도 개방하는 시대에 국정원이 과도한 철조망이 남아있다”며 “필요하면 건물 주변에만 치면 될 것인데, 산의 능선을 따라 둘러쳐 산의 풍경을 해치고 있다”고 말했다. 강남구 대치동에 살고 있는 신재형(62)씨도 “우리나라 사정상 보안시설을 보호할 필요는 있다”면서도 “자연속에서 휴식을 취하기 위해 산을 찾아온 시민들의 편의를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국정원 대변인실 관계자는 “주민들이 산행하는 데 지장이 적게 일으키도록 고려했다”면서도 “국정원은 법률에 따라 국가보안 목적 시설로 규정돼 있어 전경이 노출되지 않도록 방어시설을 설치한 것”고 밝혔다.
글·사진 김경욱 기자 dash@hani.co.kr
글·사진 김경욱 기자 dash@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