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가족재단 조사…70%가 경제적 이유 출산부담
#1. 정민석(29·가명)씨는 “결혼한 지 2년이 됐지만 아이를 가질 계획이 없다”고 잘라 말했다. 아이를 키우는 데 들 돈을 생각하면 엄두가 나지 않아서였다. 대학에서 기계공학을 전공한 정씨는 2005년 대학을 졸업한 뒤 취업 대신 친척 소유의 건물에서 식당을 열어 한달에 350~400여만원을 벌 수 있었다.
그는 2006년 11월 동갑내기 장혜란(가명)씨와 결혼을 했다. 당시만 해도 아이를 가질 생각이었다. 그러나 이들은 지난해 중순부터 아기 갖기를 포기했다. 하루가 다르게 식당 손님이 준 데다, 수입이 1년 전의 반도 안 되는 날이 많았다. 결국 지난 3월 식당 문을 닫았고, 현재 정씨는 취업을 준비 중이다. 그는 “둘이 먹고 살기도 깜깜한데 어떻게 아이를 갖겠냐”고 말했다.
#2. 결혼 5년차 직장인 이아무개(33·서울 구로동)씨는 올해 초 ‘실수’로 둘째를 가진 뒤 고민 중이다. 애초 결혼할 때는 아들 둘, 딸 둘 해서 4명은 갖고 싶었지만 2005년 첫 아이를 낳아보니 그런 생각이 싹 가셨다. 맞벌이인 이씨와 남편의 수입을 합하면 월 400여만원이지만, 생활비와 양육비, 대출금을 내고 나면 바로 마이너스 통장이다. 게다가 다음달에 둘째를 낳으면 출산비를 빼고도 1달에 30만원 추가, 어린이집에 다니는 첫째가 내년에 유치원에 가면 또 10만원이 추가된다. 이씨는 “두 아이를 키울 생각을 하면 벌써부터 막막하다”고 말했다.
서울시 여성가족재단이 지난 7~8월 25~44세 서울시민 25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결혼·가족·자녀에 대한 인식 및 정책 수요조사’ 결과를 보면 응답자의 68.8%가 경제적 이유로 출산에 부담을 느낀다고 대답했다. ‘교육비가 부담스럽기 때문’이라고 답한 사람이 28.1%로 가장 많았고, ‘경제불황으로 취업이 어렵고 직장이 불안정해서’가 23.5%, ‘양육비 부담이 크기 때문’이 17.2%로 뒤를 이었다. 자녀가 있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추가 자녀출산 계획을 묻자 77.8%가 ‘계획없다’고 답했다. 미혼자들은 55.7%가 ‘경제적 여건이 뒷받침 될 때’ 아이를 갖겠다고 답했다.
여성가족재단의 공선희 연구원은 “경제적 이유로 인한 출산 부담을 줄이기 위해서는 일과 육아를 병행할 수 있는 환경이 가장 중요하다”며 “전체 보육시설의 10% 밖에 되지 않는 공공보육 시설을 하루빨리 늘려야 한다”고 말했다.
김경욱 김소민 기자 das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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