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동정치학원 출신으로 최후의 빨치산 활동을 한 육철식, 김형식, 류금수씨의 과거와 현재 사진. 충북역사문화연대 제공.
14일 좌담회 여는 강동정치학원 출신 빨치산 3인
유격요원 등으로 키워져 한국전쟁 때 남파
자살기도·후처살이·20년 복역…충북에 둥지 강동정치학원을 아십니까? 강동정치학원은 1947년 9월 미군정의 단속을 피해 월북한 남로당 간부들이 평안남도 강동군에 세웠던 군사정치 학교로 대남 공작원과 유격 전문 요원을 양성했던 곳이다. 강동정치학원은 남한 빨치산 남부군 총사령관 이현상, 한국 최초의 현대음악 작곡가로 불리는 월북 음악인 김순남, 만담가 신불출 등을 배출했다. 한국전쟁 때 남으로 파견된 이들은 빨치산 활동으로, 북에 남은 이들은 전쟁 패배 책임 멍에를 지는 등 남북 모두에서 비판의 대상이 됐다. 강동정치학원 출신들은 대부분 숨지거나 연락이 끊겨 명맥을 알 수 없었지만 최근 충북역사문화연대가 충북지역에 살고 있는 강동정치학원 출신 3명의 빨치산을 찾아냈다. 17살 때 최연소로 강동정치학원에 들어가 ‘꼬마혁명가’로 불린 육철식(76), 강동정치학원을 거쳐 1948년 4월 남북제정당사회단체연석회의에 남조선여성동맹 대표로 참가했던 류금수(81·여), 신불산 등에서 빨치산 활동을 했던 김형식(82)씨 등이 그들이다. 육씨는 1988년 한국전쟁 앞뒤의 한국 사회와 강동정치학원을 거쳐 52년 백운산에서 체포돼 권총자살을 시도하는 등 파란만장한 빨치산 활동을 담은 자전적 수기 <강동정치학원-빨치산>을 낸 데 이어 91년 시집 <봄을 기다리는 낙엽>을 내기도 했다.
육씨는 “너무 힘겹고, 아픈 기억을 달래는 유일한 처방약이 통일”이라며 “정부가 전향적 태도로 북한을 통일의 길로 이끌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류씨도 빨치산 활동 등을 숨기려고 전쟁 때 월북한 고종 사촌 언니 이름으로 18년을 산 데 이어 주변의 눈을 피해 후처로 들어가는 등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다. 류씨는 “통일하나만 바라보고 60년을 참으며 살아오다 보니 나이가 꽉 차 버렸다”며 “지금 정부의 모습을 보면 통일이 어렵겠다는 마음이 들어 안타깝지만 후손들이라도 통일된 땅에서 자랐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말했다. 강동정치학교, 회령군관학교, 빨치산 부대장 전력 등으로 20년 장기수로 살았던 김씨는 출소 뒤 복역기간 익혔던 그림으로 1999년과 2002년 두 차례 개인전을 열기도 했다. 충북역사문화연대는 14일 오후 6시30분 천주교 수동성당에서 ‘강동정치학원 동문들아 모여라-60년 만의 이야기’를 주제로 열린 좌담회를 열 계획이다. 박만순 운영위원장은 “민족에게 총부리를 겨눴던 나쁜 빨치산 이야기가 아니라 시대의 아픔을 안고 살아온 사람 이야기를 나누려 한다”고 말했다. 오윤주 기자 sting@hani.co.kr
자살기도·후처살이·20년 복역…충북에 둥지 강동정치학원을 아십니까? 강동정치학원은 1947년 9월 미군정의 단속을 피해 월북한 남로당 간부들이 평안남도 강동군에 세웠던 군사정치 학교로 대남 공작원과 유격 전문 요원을 양성했던 곳이다. 강동정치학원은 남한 빨치산 남부군 총사령관 이현상, 한국 최초의 현대음악 작곡가로 불리는 월북 음악인 김순남, 만담가 신불출 등을 배출했다. 한국전쟁 때 남으로 파견된 이들은 빨치산 활동으로, 북에 남은 이들은 전쟁 패배 책임 멍에를 지는 등 남북 모두에서 비판의 대상이 됐다. 강동정치학원 출신들은 대부분 숨지거나 연락이 끊겨 명맥을 알 수 없었지만 최근 충북역사문화연대가 충북지역에 살고 있는 강동정치학원 출신 3명의 빨치산을 찾아냈다. 17살 때 최연소로 강동정치학원에 들어가 ‘꼬마혁명가’로 불린 육철식(76), 강동정치학원을 거쳐 1948년 4월 남북제정당사회단체연석회의에 남조선여성동맹 대표로 참가했던 류금수(81·여), 신불산 등에서 빨치산 활동을 했던 김형식(82)씨 등이 그들이다. 육씨는 1988년 한국전쟁 앞뒤의 한국 사회와 강동정치학원을 거쳐 52년 백운산에서 체포돼 권총자살을 시도하는 등 파란만장한 빨치산 활동을 담은 자전적 수기 <강동정치학원-빨치산>을 낸 데 이어 91년 시집 <봄을 기다리는 낙엽>을 내기도 했다.
육씨는 “너무 힘겹고, 아픈 기억을 달래는 유일한 처방약이 통일”이라며 “정부가 전향적 태도로 북한을 통일의 길로 이끌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류씨도 빨치산 활동 등을 숨기려고 전쟁 때 월북한 고종 사촌 언니 이름으로 18년을 산 데 이어 주변의 눈을 피해 후처로 들어가는 등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다. 류씨는 “통일하나만 바라보고 60년을 참으며 살아오다 보니 나이가 꽉 차 버렸다”며 “지금 정부의 모습을 보면 통일이 어렵겠다는 마음이 들어 안타깝지만 후손들이라도 통일된 땅에서 자랐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말했다. 강동정치학교, 회령군관학교, 빨치산 부대장 전력 등으로 20년 장기수로 살았던 김씨는 출소 뒤 복역기간 익혔던 그림으로 1999년과 2002년 두 차례 개인전을 열기도 했다. 충북역사문화연대는 14일 오후 6시30분 천주교 수동성당에서 ‘강동정치학원 동문들아 모여라-60년 만의 이야기’를 주제로 열린 좌담회를 열 계획이다. 박만순 운영위원장은 “민족에게 총부리를 겨눴던 나쁜 빨치산 이야기가 아니라 시대의 아픔을 안고 살아온 사람 이야기를 나누려 한다”고 말했다. 오윤주 기자 sti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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