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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전국일반

[사람과풍경] 혼이 깃든 붓, 기다리고 기다려야

등록 2008-11-13 21:12

 30여년동안 붓을 만들어 온 유필무 장인이 자신이 만든 붓을 설명하고 있다.
30여년동안 붓을 만들어 온 유필무 장인이 자신이 만든 붓을 설명하고 있다.
청주서 붓 전시회 여는 유필무씨
9번 찌고 9번 말리고 5천번 넘게 두드려야 한필
33년 외길 집념 “붓 알아주는 이 적어 안타깝다”

“붓은 자연이지요. 느리게 기다리고 또 기다려야 꽃과 열매를 얻듯이 더디게 기대려야 제대로 된 붓을 만날 수 있지요.”

붓 장인 유필무(48)씨의 말이다.

유씨는 33년 동안 붓을 만들어 왔다. 가난을 피해 상경했다가 목구멍에 풀칠을 하려고 취직했던 서울 성수동의 한 붓 공장이 인연이 돼 평생 붓을 벗하며, 업삼아 살아왔다.

좋은 붓과 재료를 구하려고 바람처럼, 구름처럼 살아온 자신처럼 붓도 자연을 닮았다.

양, 족제비 등 짐승의 털에서 얻은 붓이 대세지만 유씨의 붓은 경계가 없다.

들풀·종려나무·대나무·볏짚·칡 뿌리·닭깃에다 어린아이의 머리카락까지 그의 손을 만나면 붓이 된다.


뚝딱뚝딱 잘도 만들어 내지만 그의 붓은 간단치가 않다.

들풀·칡뿌리로 만든 초필·갈필은 미지근한 물에 아홉 번을 찌고 그늘에 아홉 번을 말리는 데만 2~3개월이 걸린다. 잘 말린 풀은 5천~1만5천번 이상 정성스레 두드려야 가지런한 붓이 된다.

“30년 넘게 조물조물과 자근자근이 친구”라며 “정성을 다해 조물조물 만지면서 풀의 힘과 앙금을 빼고, 자근자근 부드럽게 두드려야 질기면서도 곧은 붓을 만날 수 있다”고 말했다.

그가 심혈을 기울여 재연한 칡붓(갈필)을 만난 서예가 이희영씨는 “탄력과 우연성이 깃드는 거친 맛이 그만이다. 거친 숨소리가 하드 락을 연상케 한다”고 했다.

붓밖에 모르는 그는 가난하지만 부자다. 그가 사는 청원군 문의면 마동창작마을 작업장 주변이 모두 그의 붓 재료 창고이기 때문이다. 대청호 억새 창고, 뒷산 칡 창고, 들에 볏짚 창고, 풀 창고 등 자연이 그의 것이다. 일주일에 100시간, 한 달에 400시간 이상 붓과 지내는 그는 일부자 이기도 하다.

그는 “붓이 좋아 평생을 붓과 함께 살았지만 솔직히 내년에도 이 일을 계속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며 “제대로 된 우리 붓을 만드는 이도 몇 안되지만 혼이 깃든 붓을 알아주는 이는 그보다 더 작은 현실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그래서 우리 붓을 알리는 일에 열심이다. 그는 해마다 어린이들을 마동창작마을에 초청해 붓을 만들고 글을 쓰는 체험 교실을 하고 있다.

그의 땀과 혼이 깃든 붓은 23일까지 청주 한국공예관에서 열리는 ‘천 개의 붓 유필무’전에 가면 만날 수 있다.

글·사진 오윤주 기자 sti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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