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전국 전국일반

마지막 시민아파트의 ‘모진 생명력’

등록 2008-12-12 18:40수정 2008-12-13 01:27

1970년대 초반, 최초의 중앙난방식 첨단 아파트로 당시 유명인들이 살던 회현 시민아파트의 철거를 두고 서울시와 소유자들의 줄다리기가 계속되고 있다. 늦은 저녁 회현 시민아파트 뒤로 서울시내 불빛들이 보인다.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1970년대 초반, 최초의 중앙난방식 첨단 아파트로 당시 유명인들이 살던 회현 시민아파트의 철거를 두고 서울시와 소유자들의 줄다리기가 계속되고 있다. 늦은 저녁 회현 시민아파트 뒤로 서울시내 불빛들이 보인다.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박정희 시대 유물 회현아파트 2년전 철거 결정뒤 아직도…
소유주 “특별분양권 달라”
서울시 “추첨해 줄것” 맞서
합의점 못 찾아 교착 상태

안녕하세요.

제 이름은 서울 회현동 시민아파트입니다. 신문이나 방송이나 많이들 얘기하더군요. “마지막 시민아파트”, “곧 사라질 아파트”라고요. 근데 그게, 말처럼 간단하지 않습니다. 우여곡절 많은 출생 과정 만큼이나 마지막 이야기도 기구하답니다. 제 얘기를 한번 들어보실래요?

1960년대 서울의 가장 골치덩이는 도심 곳곳의 빈민촌이었습니다. 당시 서울시장이었던 원조 ‘불도저’ 김현옥은 빈민촌을 ‘밀어버리고’ 대신 아파트 단지를 짓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등장한 것이 서대문 금화아파트, 마포 와우아파트였습니다. 준비 없는 의욕 과잉은 종종 재앙을 낳죠. 70년 4월 와우아파트가 무너졌습니다. 그 다음에 제가 지어졌습니다. 당시 양택식 시장은 “모든 아파트는 이 곳을 시범삼아 튼튼히 지으라”고 지시했답니다. 그래서 제가 좀 강골입니다. 이 곳에서 30여년을 살았다는 오아무개(70)씨도 “아파트벽에 아직 금 하나 간 곳이 없다”고 칭찬합니다.

게다가 저는 최초의 중앙난방식 아파트였습니다. 온수가 콸콸 나왔죠. 무허가 판자촌 주민을 수용하기 위한 아파트로서는 안 어울리는 호사였습니다. 게다가 남산 중턱이라 교통도 편리하고, 공기도 맑았죠. 상류층들도 꽤나 드나들었습니다. 한국방송공사가 남산에 있던 시절이라서 은방울 자매, <아파트>의 윤수일씨 같은 연예인들도 와서 살았습니다. 그러나 호사는 한때였습니다. 곳곳에 승강기까지 달린 미끈한 아파트들이 들어서면서 저는 구닥다리가 돼버렸네요. 400동이 넘던 서울의 다른 시민아파트들은 지난 10여년 사이 모조리 철거됐습니다. 쓸쓸히 저만 남았죠.

뜻하지 않은 출세도 했습니다. 영화계에 진출했죠. 김명민·장진영 주연의 공포영화 <소름>에서는 거의 주연급이었구요. 박찬욱 감독의 <친절한 금자씨>, 류승완 감독의 <주먹이 운다>에도 출연했습니다. 흠, 밝은 영화는 없죠? 사연많은 저는 얼굴만 스크린에 떠도 웬만한 주연배우를 능가하는 음울하고 강력한 에너지를 품어낼 겁니다. 눈 밝은 감독들이 그냥 둘 리가 없겠죠.

몇 년 전부터 제게도 고민이 생겼습니다. 제 운명이 어찌 될지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지난 2003년 제 이웃이던 제1시범 아파트가 철거되면서, 그곳 주민들은 ‘강남’의 송파 장지지구 아파트의 분양권을 받았죠. 눈치 빠른 분들의 제 가치를 알아봤습니다. 제 가격이 몇 년만에 거의 3배가 뛰었죠. 저를 가지면 강남의 세곡지구 아파트를 분양받을 수 있다는 소문이 가격 폭등을 부채질했습니다. 10평 남짓한 아파트 가격이 2억8000만원까지 뛰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꼬입니다. 서울시는 우리 아파트 소유자들에게 독점적으로 세곡지구 아파트 분양권을 줄 수 없다네요. 다른 도시계획 사업으로 인한 도시 철거민들과의 형평성을 고려해서 추첨을 통해 세곡동 아파트 분양권을 준다는 겁니다. 주민 가운데 다수가 원래 소유자라기 보다는 개발 이익을 바라본 ’투자자’라는 것이 서울시의 판단으로 보입니다. ‘강남의 아파트’를 꿈꾸던 상당수의 소유자들은 반발하고 있네요. 이 가운데는 2억이 넘는 비싼 값에 10평짜리 아파트를 산 분들도 있으니까요. 이 교착 상태가 언제까지 갈지 알 수 없습니다. 제 운명은 어떻게 될까요?

김기태 기자 kkt@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전국 많이 보는 기사

대전 초등생 살해 교사 “어떤 아이든 상관없이 같이 죽으려 했다” 1.

대전 초등생 살해 교사 “어떤 아이든 상관없이 같이 죽으려 했다”

HDC신라면세점 대표가 롤렉스 밀반입하다 걸려…법정구속 2.

HDC신라면세점 대표가 롤렉스 밀반입하다 걸려…법정구속

“하늘여행 떠난 하늘아 행복하렴”…교문 앞에 쌓인 작별 편지들 3.

“하늘여행 떠난 하늘아 행복하렴”…교문 앞에 쌓인 작별 편지들

대전 초교서 8살 학생 흉기에 숨져…40대 교사 “내가 그랬다” 4.

대전 초교서 8살 학생 흉기에 숨져…40대 교사 “내가 그랬다”

살해 교사 “마지막 하교하는 아이 유인…누구든 같이 죽을 생각” 5.

살해 교사 “마지막 하교하는 아이 유인…누구든 같이 죽을 생각”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