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시 남구 대명9동의 연립주택에 사는 구본준씨와 이웃집 2채가 지난 10월 나란히 담장을 허물었다. 구씨는 “담장을 뜯어낸 뒤 집이 훨씬 예뻐졌고, 이웃과도 가까워졌다”고 말했다. 대구시 제공
12년간 대구 공공기관·가정집 ‘담장허물기’ 진행돼
“이웃 자주 만나 친밀해져”…시민 참여 갈수록 늘어
“이웃 자주 만나 친밀해져”…시민 참여 갈수록 늘어
“담장을 뜯어내고 보니 이렇게 좋을 수가 없어요. 집이 훨씬 예뻐졌고, 예전보다 이웃들과 더 친하게 지내고 있습니다.” 대구시 남구 대명동 남양초등학교 부근 연립주택에 사는 구본준(70)씨는 지난 10월 이웃의 세 집과 함께 담장을 뜯어냈다. 대구시 중구 삼덕동에 살다가 5년 전 이곳으로 이사온 구씨는 오랜 고민 끝에 담장을 허물자고 이웃들에게 제안했고, 이들의 흔쾌한 동의를 얻어 담장을 뜯었다. 그는 “요즘은 세 집의 가족들이 김치를 서로 나눠먹고 자주 만나 살아가는 얘기를 나누는 등 더없이 친해졌다”며 “‘어떻게 담장을 뜯어냈느냐’며 배우러 오는 사람들이 많다”고 말했다. 12년 동안 대구에서 구씨처럼 담장을 뜯어낸 가정집은 320채가 넘는다. 대구시가 담장 허무는 비용 400만원을 지원해주면서 해가 갈수록 참여자들이 늘고 있다. 대구시는 “시민들의 신청이 많아 올해엔 전체 신청자의 절반인 40여곳만 지원했다”고 밝혔다. 공공기관도 담장 허물기에 적극 참여해 경북대 병원, <대구 문화방송>, 두류 정수장, 대구경북본부 세관 등 170여곳에서 담장이 사라졌다. 애초 청사 경비가 힘들다며 난색을 보였던 경찰도 차례로 담장을 뜯어내 대구 남부, 서부, 북부, 수성 경찰서에서 담장이 사라졌다. 지난 7월 담장을 뜯어낸 수성 경찰서는 “보안 때문에 걱정했지만 막상 담장을 헐고 보니, 시민들이 오가면서 쉬고, 경찰에 친밀감도 느끼는 것 같다”며 “국민에게 다가가는 경찰상을 세우는 데 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담장 허물기 사업은 1996년 10월, 대구 서구청이 담장을 뜯어내면서 시작됐다. 그동안 공공기관과 가정집에서 뜯어낸 담장 길이는 21.7㎞를 넘는다. 1998년부터는 ‘대구사랑운동 시민회의’(공동의장 김범일 대구시장, 전호영 대구 사회복지 공동모금회장)가 주축이 돼 시민운동으로 번졌다. 삭막한 대도시에서 이웃들끼리 터놓고 지내고 도시에 부족한 쉼터를 늘리겠다는 취지로 시작된 이 운동은 이젠 서울과 부산, 울산, 광주, 경기도 하남·부천, 경남 창원의 공공기관과 시민단체들도 배워가 시행하고 있다. 대구의 담장 허물기는 2002년 법문사에서 발행한 고교 교과서 ‘인간 사회와 환경’에 소개되기도 했다. 대구시는 내년에도 예산 13억원을 마련해 서부 교육청과 계산성당 등 6곳의 담장을 허물 계획이다. 또 내년 1∼2월께 시민들의 신청을 받아 가정집 40여곳의 담장도 뜯어내기로 했다. 대구사랑운동 시민회의 전호영 공동의장은 “담장 허물기 사업이 삭막한 도시를 열린 사회로 변화시키는 데 일정한 역할을 했다”면서도 “아직 헐어낸 집보다 헐지 않은 집들이 훨씬 많아 앞으로 더 늘려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구대선 기자 sunnyk@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