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주시청 공무원 윤여정씨가 옛 나주관아의 객사인 ‘금성관’앞에서 지방관리와 선비들이 매달 1일과 보름 이곳에 모여 임금을 향한 망궐례를 올렸다는 설명을 하고 있다.
전라도 지명 연구서 펴낸 나주시청 공무원 윤여정씨
“땅 이름을 들여다보면 지역의 특성, 권력의 부침, 말글의 변화를 두루 알 수 있어요.”
휴일도 반납하며 11년동안 1만여곳 지명변화 정리
20년 전부터 지명에 관심…“우리말 사라져 아쉬워” 11일 낮 12시 전남 나주의 천년 목사골 유적지. 객사였던 금성관 뜰에서 만난 나주시청 공무원 윤여정(54)씨가 해박한 지역사 지식을 바탕으로 백제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는 나주의 유래를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애초 발라(發羅-벌어진 고을)였으나 비단의 우리말이 ‘바라’인 까닭에 뜻이 같은 한자음을 빌려 금성(錦城)과 나주(羅州)로 바뀌었다는 땅의 족보가 술술 풀려나왔다. 윤씨는 최근 광주·전남 마을 1만여곳의 시대별 지명 변화를 집대성한 연구서 <대한민국 행정지명:광주·전남편>을 펴냈다. 이 책은 860쪽 분량에 마을 이름이 어떤 유래로 만들어져 어떻게 바뀌었는지를 도표와 연보로 세밀하게 정리했다. 마을 이름들이 조선(1759년과 1789년), 일제(1912년과 1937년), 해방이후(1949~1998년) 등으로 나뉘어 실렸고, 다른 이름, 이름 풀이, 마을 소사 등도 담겼다. 이 책은 그가 11년 동안 잠을 하루 5시간으로 줄이고 휴일도 반납한 채 매달려 빚어낸 역작이다.섭렵한 자료만도 조선 영조 때 <여지도서>(1759년), 정조 때 <호구총수>(1789년), 조선총독부의 <조선지지자료>(1911년) 등 500여편에 이른다. 그는 “이 책은 땅 이름을 앞세웠지만 내용은 고향의 숨은 역사와 문화가 오롯이 담겼다”며 “계곡·들녘·고개·나루 등지 예쁜 우리말 이름이 일제 때 억지로 만들어진 한자 이름에 자리를 내준 채 사라진 게 안타까웠다”고 말했다.
실제로 계곡과 계곡 사이 마을인 사잇골은 샛골로 변한 뒤 억센 풀을 뜻하는 초동(草洞), 새를 나타내는 봉동(鳳洞) 등으로 달라졌다. 심지어 산 뒤에 숨은 마을이라는 ‘숨은실(隱谷)’은 수무실과 스므실로 바뀐 뒤 한자어로 ‘이십곡리(二十谷里)’가 되기도 했다. 그는 80년대 중반 나주 동사무소에서 주민이 소장한 1789년판 <금성읍지>를 우연히 만나면서 지역사에 빠져들었다. 한문으로 쓰인 경관 역사 인물 등을 100쪽 이상 필사해 나름대로 해석하는 게 즐거웠다. 내친 김에 국립광주박물관의 문화강좌를 들으며 주강현 지춘상 등 선학들을 만나 ‘전혀 다른 세상’ 속으로 진로를 잡았다. 10여년 뒤인 98년 그는 자신의 문제의식과 연구성과를 모아 <한자에 빼앗긴 토박이 땅이름>를 출판했다. 이어 10년 동안 마을 사례들을 정리해 <행정지명:광주·전남편>을 내놓았다. 앞으로 5년 동안 전북 10개 시·군의 마을들을 정리해 후발 연구의 디딤돌을 놓겠다는 계획이다. 글·사진 안관옥 기자 okahn@hani.co.kr
20년 전부터 지명에 관심…“우리말 사라져 아쉬워” 11일 낮 12시 전남 나주의 천년 목사골 유적지. 객사였던 금성관 뜰에서 만난 나주시청 공무원 윤여정(54)씨가 해박한 지역사 지식을 바탕으로 백제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는 나주의 유래를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애초 발라(發羅-벌어진 고을)였으나 비단의 우리말이 ‘바라’인 까닭에 뜻이 같은 한자음을 빌려 금성(錦城)과 나주(羅州)로 바뀌었다는 땅의 족보가 술술 풀려나왔다. 윤씨는 최근 광주·전남 마을 1만여곳의 시대별 지명 변화를 집대성한 연구서 <대한민국 행정지명:광주·전남편>을 펴냈다. 이 책은 860쪽 분량에 마을 이름이 어떤 유래로 만들어져 어떻게 바뀌었는지를 도표와 연보로 세밀하게 정리했다. 마을 이름들이 조선(1759년과 1789년), 일제(1912년과 1937년), 해방이후(1949~1998년) 등으로 나뉘어 실렸고, 다른 이름, 이름 풀이, 마을 소사 등도 담겼다. 이 책은 그가 11년 동안 잠을 하루 5시간으로 줄이고 휴일도 반납한 채 매달려 빚어낸 역작이다.섭렵한 자료만도 조선 영조 때 <여지도서>(1759년), 정조 때 <호구총수>(1789년), 조선총독부의 <조선지지자료>(1911년) 등 500여편에 이른다. 그는 “이 책은 땅 이름을 앞세웠지만 내용은 고향의 숨은 역사와 문화가 오롯이 담겼다”며 “계곡·들녘·고개·나루 등지 예쁜 우리말 이름이 일제 때 억지로 만들어진 한자 이름에 자리를 내준 채 사라진 게 안타까웠다”고 말했다.
실제로 계곡과 계곡 사이 마을인 사잇골은 샛골로 변한 뒤 억센 풀을 뜻하는 초동(草洞), 새를 나타내는 봉동(鳳洞) 등으로 달라졌다. 심지어 산 뒤에 숨은 마을이라는 ‘숨은실(隱谷)’은 수무실과 스므실로 바뀐 뒤 한자어로 ‘이십곡리(二十谷里)’가 되기도 했다. 그는 80년대 중반 나주 동사무소에서 주민이 소장한 1789년판 <금성읍지>를 우연히 만나면서 지역사에 빠져들었다. 한문으로 쓰인 경관 역사 인물 등을 100쪽 이상 필사해 나름대로 해석하는 게 즐거웠다. 내친 김에 국립광주박물관의 문화강좌를 들으며 주강현 지춘상 등 선학들을 만나 ‘전혀 다른 세상’ 속으로 진로를 잡았다. 10여년 뒤인 98년 그는 자신의 문제의식과 연구성과를 모아 <한자에 빼앗긴 토박이 땅이름>를 출판했다. 이어 10년 동안 마을 사례들을 정리해 <행정지명:광주·전남편>을 내놓았다. 앞으로 5년 동안 전북 10개 시·군의 마을들을 정리해 후발 연구의 디딤돌을 놓겠다는 계획이다. 글·사진 안관옥 기자 okah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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