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전국 전국일반

[사람과풍경] 인생 참뜻 일러준 스승 ‘마지막 출근’

등록 2009-03-12 22:25

자전거를 타고 가던 퇴근길에 졸음운전 버스에 치여 사망한 고 백정선(51) 전남대 교수(수학과)의 영결식이 12일 전남대에서 열려 유족들이 백 교수의 영정 사진을 들고 연구실로 향하고 있다. 전남대 제공
자전거를 타고 가던 퇴근길에 졸음운전 버스에 치여 사망한 고 백정선(51) 전남대 교수(수학과)의 영결식이 12일 전남대에서 열려 유족들이 백 교수의 영정 사진을 들고 연구실로 향하고 있다. 전남대 제공
고 백정선 전남대 교수 영결식
11년간 자전거 출퇴근한 ‘수학 천재’
“소박하고 수수했던 교수님 그리워”

그는 떠났지만, 연구실 칠판에 휘갈긴 수학 공식들은 아직도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전남대는 12일 아침 이 학교 자연대 1호관 앞에서 ‘자전거 타는 수학 천재’로 알려졌던 고 백정선(51·수학과) 교수의 영결식을 엄숙하게 치렀다. 영결식에는 가족, 친지, 동료 등이 모여 백 교수의 영전에 꽃을 바치고 향을 사르며 이별의 아픔을 삭였다. 학생들도 평소 자전거로 출퇴근하며 연구에만 조용히 몰두했던 한 수학자의 아름다운 행로를 기렸다.

김윤수 전남대 총장은 조사에서 “학창시절 못 푸는 문제가 없어 학과 교수들마저도 감탄했다는 일화가 유명하다”며 “선생님은 세속적으로 화려해 보이는 선택은 뒤로 한 채 오직 공부하고, 가르치고, 연구하는 길을 묵묵히 걸어왔다”고 회고했다. 그는 이어 “혹한 속에서도 향기를 잃지 않는 매화처럼 기품있게 살았던 그의 삶을 영원히 잊지 않겠다”고 안타까워했다.

제자 김경미씨는 떨리는 목소리로 “수학과 수련회에서 <농부가>를 불러 흥을 돋울 정도로 소박하고 수수했던 교수님이 오늘따라 왜 이렇게 그리운지 모르겠다”며 “수학을 어떻게 만나야하고,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를 몸으로 일러줬던 참스승이었다”고 애도했다.

부인 문명희(광주 유덕중 교사)씨와 딸 민경(서울대 화학부)씨 등 가족들은 갑작스런 사고의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 듯 고개를 떨구고 내내 속울음을 지속해 보는 이들을 숙연하게 만들었다.

창밖에 영결식이 열리는 동안 백 교수가 사흘 전까지 머물던 4층 연구실에는 책상과 의자, 노트와 컴퓨터, 음악시디 등이 가지런히 남겨져 고인의 평소 성품을 보여줬다. 특히 그가 칠판에 적어두고 골몰했던 수학 공식들은 마치 주인을 기다리는 듯 선명해서 둘러보는 가족과 친지들을 가슴아프게 했다.


영결식을 마친 백교수의 주검은 조문객들의 흐느낌 속에 전남대 교정을 떠나 광주 영락공원으로 향했다.

그는 지난 10일 오후 6시50분께 광주시 북구 용봉동 전남대 치과병원 앞 도로에서 자전거를 타고 집으로 가다 어린이집 통학버스에 치여 숨졌다. 보성 벌교 출신인 그는 광주일고를 졸업하고 1977년 서울대 수학과에 입학한 뒤 서울대 대학원에서 석사·박사를 마치고 87년 전남대 수학과 교수로 임용됐다. 임용 뒤 22년 동안 질주하는 자동차가 성품에 맞지 않는다며 자전거로 출퇴근하며 수학연구에 전념해왔다.

안관옥 기자 okahn@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전국 많이 보는 기사

대전 초등생 살해 교사 “어떤 아이든 상관없이 같이 죽으려 했다” 1.

대전 초등생 살해 교사 “어떤 아이든 상관없이 같이 죽으려 했다”

HDC신라면세점 대표가 롤렉스 밀반입하다 걸려…법정구속 2.

HDC신라면세점 대표가 롤렉스 밀반입하다 걸려…법정구속

“하늘여행 떠난 하늘아 행복하렴”…교문 앞에 쌓인 작별 편지들 3.

“하늘여행 떠난 하늘아 행복하렴”…교문 앞에 쌓인 작별 편지들

대전 초교서 8살 학생 흉기에 숨져…40대 교사 “내가 그랬다” 4.

대전 초교서 8살 학생 흉기에 숨져…40대 교사 “내가 그랬다”

살해 교사 “마지막 하교하는 아이 유인…누구든 같이 죽을 생각” 5.

살해 교사 “마지막 하교하는 아이 유인…누구든 같이 죽을 생각”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