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를 타고 가던 퇴근길에 졸음운전 버스에 치여 사망한 고 백정선(51) 전남대 교수(수학과)의 영결식이 12일 전남대에서 열려 유족들이 백 교수의 영정 사진을 들고 연구실로 향하고 있다. 전남대 제공
고 백정선 전남대 교수 영결식
11년간 자전거 출퇴근한 ‘수학 천재’
“소박하고 수수했던 교수님 그리워” 그는 떠났지만, 연구실 칠판에 휘갈긴 수학 공식들은 아직도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전남대는 12일 아침 이 학교 자연대 1호관 앞에서 ‘자전거 타는 수학 천재’로 알려졌던 고 백정선(51·수학과) 교수의 영결식을 엄숙하게 치렀다. 영결식에는 가족, 친지, 동료 등이 모여 백 교수의 영전에 꽃을 바치고 향을 사르며 이별의 아픔을 삭였다. 학생들도 평소 자전거로 출퇴근하며 연구에만 조용히 몰두했던 한 수학자의 아름다운 행로를 기렸다. 김윤수 전남대 총장은 조사에서 “학창시절 못 푸는 문제가 없어 학과 교수들마저도 감탄했다는 일화가 유명하다”며 “선생님은 세속적으로 화려해 보이는 선택은 뒤로 한 채 오직 공부하고, 가르치고, 연구하는 길을 묵묵히 걸어왔다”고 회고했다. 그는 이어 “혹한 속에서도 향기를 잃지 않는 매화처럼 기품있게 살았던 그의 삶을 영원히 잊지 않겠다”고 안타까워했다. 제자 김경미씨는 떨리는 목소리로 “수학과 수련회에서 <농부가>를 불러 흥을 돋울 정도로 소박하고 수수했던 교수님이 오늘따라 왜 이렇게 그리운지 모르겠다”며 “수학을 어떻게 만나야하고,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를 몸으로 일러줬던 참스승이었다”고 애도했다. 부인 문명희(광주 유덕중 교사)씨와 딸 민경(서울대 화학부)씨 등 가족들은 갑작스런 사고의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 듯 고개를 떨구고 내내 속울음을 지속해 보는 이들을 숙연하게 만들었다. 창밖에 영결식이 열리는 동안 백 교수가 사흘 전까지 머물던 4층 연구실에는 책상과 의자, 노트와 컴퓨터, 음악시디 등이 가지런히 남겨져 고인의 평소 성품을 보여줬다. 특히 그가 칠판에 적어두고 골몰했던 수학 공식들은 마치 주인을 기다리는 듯 선명해서 둘러보는 가족과 친지들을 가슴아프게 했다.
영결식을 마친 백교수의 주검은 조문객들의 흐느낌 속에 전남대 교정을 떠나 광주 영락공원으로 향했다. 그는 지난 10일 오후 6시50분께 광주시 북구 용봉동 전남대 치과병원 앞 도로에서 자전거를 타고 집으로 가다 어린이집 통학버스에 치여 숨졌다. 보성 벌교 출신인 그는 광주일고를 졸업하고 1977년 서울대 수학과에 입학한 뒤 서울대 대학원에서 석사·박사를 마치고 87년 전남대 수학과 교수로 임용됐다. 임용 뒤 22년 동안 질주하는 자동차가 성품에 맞지 않는다며 자전거로 출퇴근하며 수학연구에 전념해왔다. 안관옥 기자 okahn@hani.co.kr
“소박하고 수수했던 교수님 그리워” 그는 떠났지만, 연구실 칠판에 휘갈긴 수학 공식들은 아직도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전남대는 12일 아침 이 학교 자연대 1호관 앞에서 ‘자전거 타는 수학 천재’로 알려졌던 고 백정선(51·수학과) 교수의 영결식을 엄숙하게 치렀다. 영결식에는 가족, 친지, 동료 등이 모여 백 교수의 영전에 꽃을 바치고 향을 사르며 이별의 아픔을 삭였다. 학생들도 평소 자전거로 출퇴근하며 연구에만 조용히 몰두했던 한 수학자의 아름다운 행로를 기렸다. 김윤수 전남대 총장은 조사에서 “학창시절 못 푸는 문제가 없어 학과 교수들마저도 감탄했다는 일화가 유명하다”며 “선생님은 세속적으로 화려해 보이는 선택은 뒤로 한 채 오직 공부하고, 가르치고, 연구하는 길을 묵묵히 걸어왔다”고 회고했다. 그는 이어 “혹한 속에서도 향기를 잃지 않는 매화처럼 기품있게 살았던 그의 삶을 영원히 잊지 않겠다”고 안타까워했다. 제자 김경미씨는 떨리는 목소리로 “수학과 수련회에서 <농부가>를 불러 흥을 돋울 정도로 소박하고 수수했던 교수님이 오늘따라 왜 이렇게 그리운지 모르겠다”며 “수학을 어떻게 만나야하고,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를 몸으로 일러줬던 참스승이었다”고 애도했다. 부인 문명희(광주 유덕중 교사)씨와 딸 민경(서울대 화학부)씨 등 가족들은 갑작스런 사고의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 듯 고개를 떨구고 내내 속울음을 지속해 보는 이들을 숙연하게 만들었다. 창밖에 영결식이 열리는 동안 백 교수가 사흘 전까지 머물던 4층 연구실에는 책상과 의자, 노트와 컴퓨터, 음악시디 등이 가지런히 남겨져 고인의 평소 성품을 보여줬다. 특히 그가 칠판에 적어두고 골몰했던 수학 공식들은 마치 주인을 기다리는 듯 선명해서 둘러보는 가족과 친지들을 가슴아프게 했다.
영결식을 마친 백교수의 주검은 조문객들의 흐느낌 속에 전남대 교정을 떠나 광주 영락공원으로 향했다. 그는 지난 10일 오후 6시50분께 광주시 북구 용봉동 전남대 치과병원 앞 도로에서 자전거를 타고 집으로 가다 어린이집 통학버스에 치여 숨졌다. 보성 벌교 출신인 그는 광주일고를 졸업하고 1977년 서울대 수학과에 입학한 뒤 서울대 대학원에서 석사·박사를 마치고 87년 전남대 수학과 교수로 임용됐다. 임용 뒤 22년 동안 질주하는 자동차가 성품에 맞지 않는다며 자전거로 출퇴근하며 수학연구에 전념해왔다. 안관옥 기자 okah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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