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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전국일반

살길 막막 지하철 행상들 ‘과태료 공포’

등록 2009-03-25 21:13수정 2009-03-26 09:44

“하루벌이 3만원인데 걸리면 10만원 또 걸리면 100만원”
운영기관에 부과권한 이관뒤 처벌 대폭 강화
정아무개(47)씨는 지하철에서 하나에 3000원 하는 기능성 걸레를 판다. 아침 9시부터 저녁 6시까지 일해, 하루 3만원 정도를 번다. 이 돈으로 고등학교 2학년 딸과 중학교 2학년 아들, 그리고 방광암으로 누워있는 남편을 돌본다. 번 돈은 모두 생활비로 나가 한 푼도 모을 수 없다.

지난 달 정씨는 일명 ‘일수대출’이라는 일일상환 대출로 100만원을 빌렸다. 새 학기를 앞둔 아이들을 위해 목돈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는 매일 1만3000원씩 100일 동안 130만원을 갚아야 한다. 이를 갚지 못하면 보증인이 돼준 친구가 대신 물어야 한다.

지난 12일 정씨는 지하철 3호선 녹번역에서 물건을 팔다 단속 요원에게 적발됐다. 과태료 10만원이 부과됐다. 3일 동안 일한 것이 모두 과태료로 날아갔다. 단속 요원은 “다시 한 번 물건을 팔다 적발되면 그 때는 과태료를 100만원까지 부과할 수 있다”고 말했다. 100만원은 정씨가 하루도 쉬지 않고 한 달을 꼬박 일해도 벌 수 없는 돈이다.

지난 달까지만 해도 지하철에서 물건을 팔다 적발된 행상들은 지구대로 넘겨졌다. 서울메트로나 서울도시철도공사 등 지하철 운영기관에서는 이들을 처벌할 수 있는 권한이 없었기 때문이다. 지구대에서는 ‘인근 소란행위’로 3만원의 범칙금을 부과했다. 늘 적발당할 위험이 있는 행상에게는 이마저도 적은 액수가 아니지만, 정씨는 “그래도 견딜만 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지난해 10월 서울시가 공포한 ‘철도안전에 관한 사무위탁 규칙’이 올 3월1일부터 본격 시행되면서 지하철 행상들의 시름이 더욱 깊어지고 있다. 과태료를 부과할 수 있는 권한이 서울시장에서 지하철 운영기관 직원들에게 넘어갔기 때문이다. 과태료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올랐다. 지하철에서 물건을 팔다 적발되면 그 자리에서 10만원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더욱이 질서유지에 나서는 지하철 운영기관 직원의 “물건을 팔지 말라”는 지시를 어기고 계속 물건을 팔았다가는 과태료 100만원을 부담해야 한다.

서울메트로나 도시철도공사 등 지하철 운영기관은 무질서 행위를 줄이기 위해 효과적으로 단속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도시철도공사 홍보실의 심승무 과장은 “지난 해 무질서로 인한 7610건의 민원 가운데 잡상과 구걸 행위에 대한 민원이 4489건에 달했다”며 “지하철의 쾌적한 환경을 위해 실효성 있는 단속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당장 먹고 살 길이 막막한 행상들은 “마지막 비상구만은 제발 막지 말아 달라”고 호소하고 있다. 1997년 외환위기 때 빚더미에 앉아 지하철 행상에 뛰어든 정수택(60)씨는 “우리같은 ‘잡상인’은 언젠가 사라져야 하지만, 경제 상황이 나쁜 지금은 때가 아니지 않느냐”며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발버둥치는 사람들의 의지를 짓밟아서는 안 된다”고 호소했다.

김경욱 기자 das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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